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카메라를 세워두고 그 앞에서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거기 있는 것을 찍으려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전자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를 찍고 나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나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나무가 거기 있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식물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심을 때 그 최종 형태를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릭 로
빨간 망토라는 동화가 있다. 빨간 망토는 할머니의 집에 방문했다가 할머니와 함께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이후 사냥꾼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늑대의 배에 돌을 집어넣는 복수를 실행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과정에서 일반 시민인 사냥꾼이 빨간 망토의 유일한 조력자가 되기까지, 국가는 무엇을 했던가? 옆 마을까지 소문이 퍼졌음에도 늑대 출몰 지역을 방치한 국가의 책임은 과연 크지 않은가? 이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에 불과하지만, 무겁고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가 스스로 힘을 내어 일어서지 못하고 사적인 응징에만 그치는 상황은 단순한 옛이야기
“작은 배역들이 주연으로 살아가는 film 이곳”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위 말하는 ‘톱스타’를 좋아하지 않았다. 전국의 소녀들이 엑소 멤버의 부인이라며 스스로를 소개하고, 방탄소년단이 교복을 입고 나와 소녀들의 마음을 뒤흔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나에게도 그들의 외모와 무대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멋져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나와는 다른 세상 속 사람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화려한 옷을 입고 멋있어서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 반짝반짝한 연예인들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휴학은 해봐야지.”라는 말을 간혹 듣는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면 쉽사리 결정하기 어렵다. 학업의 흐름이 끊길 것 같고, 휴학함으로써 생기는 공백기에 대한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휴학하는 시간만큼 괜히 뒤처질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다. 휴학하는 시간을 정말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가에 확신이 부족해 망설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휴학을 고민하는가. 또, 많은 이들이 휴학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휴학의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이는 진로 탐색을 위해 휴학을 택한다. 막상
몇 개월 전, 텔레비전으로 밴드 실리카겔의 무대를 보고 있었습니다. 옆에 앉아 함께 보시던 어머니께서는 “쟤네는 너무 웅얼거린다. 무슨 소린지 하나두 모르겠어.” 하시더니“엄마가 화면 안 보고 소리만 듣고 무슨 가사인지 맞혀볼게.”라며 몸을 돌리시고는 혼자서 을 시작하셨습니다.실리카겔은 가사를 보지 않고는 알아채기 거의 불가능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밴드입니다. 당연하게도 어머니는 한 줄도 맞히시질 못했습니다. “깨끗한 곳에서 홀로 있어요”는 “계곡에, 서울에 있어요”가 되고, 다른 가사들도 줄줄이 엉뚱한 말들로 바뀌
유독 마음이 저릿했던 봄이었다. ‘정말 수고했습니다’라는 말을 곧 ‘사랑’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작품, 는 혐오의 시대에도 사랑은 존재함을 의미하는 듯, 싫증 난 사회와 일상을 잠시나마 사랑으로 굴러가게 했다.어릴 적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한 탓에 10년 가까이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이 때문에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가득한데도, 기억 속 가장 따뜻한 장면은 늘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엄마와 함께 했던 그날이 정말 나에게는 큰 기억으로 남아 있다.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도 채 안 나는 그 흐릿한 기
더 큰 세상을 향해 디딘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마음은 안녕하는지, 어떻게 지내시나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어느덧 물이 한두 방울씩 스며들던 지붕이 마르고 누그러든 햇살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무언가 쓸쓸한 마음이 조금 채워갈 무렵, 어떤 낯선 감정들이 밀려들겠지만, 마음보다 계절이 빠른 요즘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하는 말은 입에서 맴돌다 흩날리고,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출발지조차 모르는 첫 외침들은 서툰 발걸음만큼 때로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합니다.4월입니다. 겨울의 끝, 다른 이름은 봄입니다.
“이렇게 힘든 건 지금 뿐이야!” 이 말은 나의 고등학교 3년을 견디게 해주었다. 대학에 가면 밤을 새서 수능 영단어를 달달 외우는 일 따윈 없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눈 앞에 고지가 있다는 생각은 힘든 수험 생활을 버티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고 있듯, 대학교에서는 더 많은 양과 더 깊은 수준의 공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꿈과 미래를 위해 각종 대회, 공모전, 서포터즈 등 대외활동이 필수가 된 요즘, 대학생은 쉴 수 없다. 이런 대학생의 현실은 주로 2학년이 되어 깨닫는다. 이를 깨닫는 과정은 어렵지 않다.
대학생이 되면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동아리 활동이다. 나도 신입생 때 어떤 동아리를 선택할지 고민하며 동아리 박람회 부스를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다양한 동아리가 홍보하며 신입 회원을 모집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에게 맞는 동아리가 무엇일지 깊이 고민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에게 동아리는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학업에서 벗어나 숨을 돌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나를 성장시킬 기회가 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대학생활은 예상보다 녹록지 않았다. 과제, 시험, 조별 과제 등이 연속적으로 이어
교환학생을 결심한 계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반복적이고 권태로운 한국 교육시스템에서의 탈피, 하고 싶은 것들로만 가득 채우는 시기를 보내고 싶어서. 그리고 교환학생을 마친 지금, 두 목적을 온전히 이룰 수 있었기에 만족스러운 교환 시기를 보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제게 교환학생 생활은 ‘타지에서의 첫 독립’이라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것도, 혼자서 삶의 전부를 꾸려나가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습니다. 출국 전에는 타지에서 홀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덜컥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우리대학은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2024년 11월 정기선거를 치렀다. 시끌벅적한 대면투표 현장의 분위기는 볼 수 없었지만, 학생사회 건립을 위해 출마하는 후보들을 보며 다행스러우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교차한다. 2022년부터 3년째 공석인 총학생회는 이번 선거에선 후보조차 나오지 않았다. 학우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던 총학생회는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했다. 총학생회의 공석으로 그 자리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이어받고 있지만, 관례적으로 조직되는 기구인 만큼 총학생회와 동등한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학교와 학우들 사이에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정보의 바닷속에 살고 있으며, 수많은 정보를 접한다. 그러나 정보가 넘치고 스스로 탐구할 가치가 사라지면서 점차 쉽고 간단하거나 재미있는 것만을 추구하게 된다. 활자보다 그림, 그림보다 영상, 그 리고 긴 영상보다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우리는 점점 읽는 활동에서 멀어지고 있다. ‘읽는다’ 는 말을 떠올리면 대부분은 독서, 즉 책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독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사, 뉴스, 사용 설명서, 안내문, 문자 메시지, SNS에서 조차 우리는 읽고 있다. 또한
교환학생은 대학 생활 중 가장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새로운 세상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특히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꼭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네덜란드를 선택한 이유는 유럽 전역을 쉽게 여행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과 높은 영어 사용률 덕분입니다. 추가 학기임에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교환학생에 지원한 까닭입니다. 네덜란드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평균 키가 가장 큰 나라라는 사실을 체감했습니다. 모든 건문의 층고가 높아 시야가 탁 트였고,
교환학생 지원을 결심한 계기 일본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일본학과에 진학하면서부터 교환학생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일본학과라고 해서 교환학생 선정에 특별한 이점이 있진 않지만, 어문학과로서 해외 경험은 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3학년 1학기에 N2를 취득하고, 2024-1 교환학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후쿠오카를 선택한 이유 저는 후쿠오카의 ‘세이난 가쿠인’ 대학에 파견되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해 후쿠오카를 선택했으며 실제로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기숙사에서 후쿠오카 공항까지는 약 3
‘학교에 교양 수업이 없다고?’지난 상반기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간 필자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간표를 짜기 위해 교환대학 커리 큘럼을 봤을 때, 우리대학과 뚜렷한 차이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강의를 크게 교양강의와 전공강의로 나눠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우리대학과 달리, 영국대학에서는 오직 수많은 전공강의만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일반적으로 3년 과정의 학사과정을 포함하는 영국 대학들은 이처럼 학생들에게 별도의 교양 수업들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1학년 때부터 곧장 전공과목을 배우기 시작하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 본인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엔 장애를 가진 이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가 있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 내 주위에는 함께 오목을 두던 거동이 불편한 친구가 있었고, 마트에는 미소 지으며 간식하나를 더 챙겨주시던 청각 장애인 아저씨가 있었다. 등굣길 내게 학교에 잘 다녀오라고 말씀해 주시던 문방구 할아버지와 살갑게 인사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10대의 초반, 그렇게 나는 장애를 지닌 사람들과의 공존을 배워 나갔다. 그 나이 땐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깊이 공감하기 어려워서일까. 철이 없던 초등학생 친구들은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하는
이미 경험했든, 아직 경험하지 않았든 누구에게나 터닝포인트가 되는 선택이 있을 테다. 나에게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한 게 그러했다. 사실 처음부터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남들이 돈 모아 가는 유럽 여행에도, 해외 경험을 위해 떠나는 워킹홀리데이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랬던 내 생각이 바뀌었던 계기는 정말 우연적이었다. 23년도 1월, 해외 취재를 위해 열흘 동안 머물렀던 호주에서 처음으로 내 세상이 넓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마다 다른 가치관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가치관에 의문이 생
‘58, 59, 60...!’ 클릭 한 번으로 기쁨과 좌절을 넘나들게 하는 수강신청 기간이 다시 돌아왔다. 개강을 생각하며 시간표를 짜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졸업 전까지 몇 학점이 남았으며,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치밀하게 계산했다. 과거의 내가 부지런했던 덕에 다행히 졸업까지의 학점은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평소 듣고 싶었던 강의들을 내 시간표에 담아봤다. ‘작곡 실습’, ‘청년문화’ 등 관심은 있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강의들을 이번 기회에 다시 끄집어 올렸다. 하지만 수강신청이 끝난 내 시간표에는 위 수
지난 무더운 여름의 더위가 꺾일 무렵, 나는 영국으로 떠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국 남동부에 위치한 사우스햄튼이라는 도시로 떠났다.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영국으로 간다고 하면 모두 런던을 상상하는데 사우스햄튼은 런던과는 기차로 1시간 30분가량 떨어진, 남동부에 있는 작은 도시다.인천공항에서 가족들과 헤어질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영국에서의 삶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가늠조차 가질 않았다. 영국에 도착해 “Good luck with your study”라며 나의 비자 위에 도장을 쾅 찍어 준 입국심사관의 말을 들을 때까지는
3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고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올 무렵, 시험 준비 하느라 고생했다고 앞으로 남은 시험도 열심히 준비해보라고 잠시나마 공부에서 벗어나 달콤한 휴식을 주는 것만 같은 대학 축제이다.20살이 되고 맞이했던 2022년의 축제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임에도 아직까지 그날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종종 추억을 꺼내 보기도 한다. 16시에 수업이 모두 끝나자마자 동기들과 함께 대운동장으로 달려가 재학생 팔찌를 받은 후 맨 앞자리를 사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