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섭 영화영상 21
▲신윤섭 영화영상 21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카메라를 세워두고 그 앞에서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거기 있는 것을 찍으려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전자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루이 14세의 권력 쟁취>를 찍고 나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나무가 거기 있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식물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심을 때 그 최종 형태를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릭 로메르가 <클레르의 무릎>을 찍기 1년 전에 미리 개화 날짜를 계산해 장미를 심어둔 것도 그래서이다. 나 역시 비슷한 이유로 강의실 창밖으로 보이는 신라호텔 앞 나무들을 좋아한다. 경직된 사각형 붉은 벽 앞에 나란히 선 랜덤한 초록색들. 만약에 식물이 건물처럼 세워지기 전부터 밀리미터 단위까지 그 모양을 계획할 수 있다고 하면 전혀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서울아트시네마에 마르셀 아눙의 <10월의 마드리드>를 보러 갔다. 60분 길이의 짤막한 영화는 화장을 하는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감독 아눙은 보이스오버로 그가 <10월의 마드리드>라는 영화를 찍기 위해 스페인에 왔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건 솔직한 이유는 아니었다. 사실 아눙은 당시 <여덟 번째 날>의 실패 이후 심한 좌절감에 빠져있었다. 아눙은 마드리드로 ‘자의적 유배’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 망명은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당시 마드리드가 프랑코 독재 정권의 치하에서 심각한 문화 검열이 난무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고집 센 아눙은 끔찍하게 가난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한 프랑스 방송사에게서 투우와 부활절 성 주간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의뢰받은 덕에,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일 탓에 <10월의 마드리드> 작업은 뒷전이 되어 갔다. 급기야 캐스팅해 두었던 배우가 중도 하차하고, 아눙은 배우와 로케이션을 찾기 위해 마드리드 시내를 하릴없이 헤맨다. 그러면서 마드리드의 나른한 햇볕에 흠뻑 젖은 할머니와 대화하고, 공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버려진 세트장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가 망명길에 챙겨간 3,000m의 필름 위에 담는다.

결국 아눙은 영화는 정작 촬영하지도 못한 채 가져간 필름을 모두 소진해 버린다. 그리고 여태껏 찍은 다큐멘터리와 자투리 필름들을 한데 모아 편집한다. 아눙 자신과 여배우의 간단한 보이스오버를 위에 얹고 음악을 깔았다. 나는 극장에서 그것을 흥미롭게 보면서도, 대체 이 영화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의심했다. 리듬감 있게 나열된 투우와 종교 행렬과 도시 풍경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화면에 화장을 지우는 여자가 나타났다. 아눙의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장면을 <10월의 마드리드>의 마지막 장면으로 하려고 했다.” 그리고 <10월의 마드리드>라는 타이틀 롤이 뜨며 영화가 끝났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계획대로 <10월의 마드리드>라는 제목을 달게 되었으며, 계획대로 여자가 화장을 지우는 엔딩 장면으로 끝났다. 물론 그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 아눙은 어쨌든 영화를 완성해 냈다. 어떻게 영화를 이토록 ‘솔직하게’ 찍을 수 있을까. 나는 그날 영화를 찍는 방법을 새로 배웠다. 아눙은 영화를 찍기로 했으나, 찍을 수 없었으며, 그래도 찍었다. 그동안 그의 렌즈 앞을 지나간 모든 것들이 영화 안에 담겼다. 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든 자라난 것이다.

“기존의 영화가 하나의 완성된 건물이라면, <10월의 마드리드>는 건물을 짓는 인부들이 밟고 올라가는 족장 자체가 영화인 꼴이다.” - 핍 초도로프

“나에게는 어떤 계획도 없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을 뿐이다.” - 마르셀 아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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