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힘든 건 지금 뿐이야!” 이 말은 나의 고등학교 3년을 견디게 해주었다. 대학에 가면 밤을 새서 수능 영단어를 달달 외우는 일 따윈 없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눈 앞에 고지가 있다는 생각은 힘든 수험 생활을 버티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고 있듯, 대학교에서는 더 많은 양과 더 깊은 수준의 공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꿈과 미래를 위해 각종 대회, 공모전, 서포터즈 등 대외활동이 필수가 된 요즘, 대학생은 쉴 수 없다. 이런 대학생의 현실은 주로 2학년이 되어 깨닫는다. 이를 깨닫는 과정은 어렵지 않다. 그저 주변을 둘러보면 된다. 동기는 관련 동아리에 들어가 포트폴리오를 쌓기 시작했고, 선배는 공모전에 도전한다. 그리고 나는, 그저 성실히 수업에 출석했다. 시작은 주변이지만, 마지막엔 나를 돌아본다. 결국 답이 보이지 않아 불안해지기 시작한 나만 남았다.
고등학생들의 생활기록부에는 모두 희망 진로가 적혀 있다. 나는 수시 전형을 위해 선택한 꿈이 평생의 꿈일 줄 알았다.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대학교 면접관에게 내 꿈은 무엇이고 왜 되고 싶은지를 외우듯이 말했던 게 어느새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외운’ 꿈은 단순한 질문 하나로 무너져 내렸다. “그 직업을 가지면 행복할까?” 내 대답은 ‘NO’였다. 그렇게 무너져 버린 나의 꿈은 처음부터 다시 쌓아가야 했다. 유튜브에 있는 직업별 ‘회사 Vlog’부터 직업적성검사 등 수많은 방법으로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나갔다. 명쾌한 답변이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실상은 모호했다. 정말 말 그대로 모호했다.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었고,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무능보다 불행한 게 ‘애매한 재능’이다. 고등학생에게는 ‘대입’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성적에 맞춰서 아무 학과나 가더라도 복수전공이나 전과로 진로를 수정한다는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은 내게 너무나 급했다. 하루빨리 진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했다.
내 진로 고민의 주요 쟁점은 “좋아하는 일과 돈을 잘 버는 일, 둘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였다. 좋아하는 일이 돈을 잘 버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돈을 잘 버는 일’에 조금 더 마음이 갔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의 경험이 이런 내 생각을 바꿔 놓았다. 바로 ‘동아리’였다.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들어간 ‘콘텐츠 제작’ 동아리는 너무나 재밌었다. 하루에 5시간씩 회의를 하고 매일 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지만 그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힘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통해 내린 결론은 돈을 많이 벌더라도 내가 즐기지 못하는 일은 금방 싫증이 날 것 같다는 것이다. 비록 진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인사이트라도 얻게 되어 값진 경험으로 남았다.
대학가의 술집에서 들을 수 있는 단골 대화 주제는 단연 ‘진로 고민’이다. 그만큼 우리 모두가 함께 겪는 문제이다. 나 역시 이런 얘기를 친구들과 자주 나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친구는 뭐든지 일단 도전해보는 게 좋다고 말한다. 물론 모두가 동의하고 있을 말이다. 하지만 남이 해주는 말에는 힘이 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조언은 용기를 준다. 내가 동아리에도 도전하고 진로 선택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은 것도 말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끔은 무한 칭찬을 퍼부어주는 게 필요하다. 애매한 재능을 키우는 건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그 토대가 되는 건 자신감과 자존감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무너져도 다시 쌓아갈 수 있었다. 스스로의 토대를 차근차근 쌓아보는 게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