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석 기자
▲양기석 기자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을 받은 억울한 상황 속에서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 객관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사기』가 위대한 역사서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사기』가 통치자의 포악함으로 인해 사마천이 처하게 된 안타까운 상황으로부터 촉발된 다른 무언가를 갖는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사기』의 형식은 이전의 역사서와 다르다. 황실의 정책에 의해 편찬되던 기존의 역사 서술 방식은 통치자의 지배 논리를 사실로 정당화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사기』는 정통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났고 표면적인 부분보다 이면적이고 실제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이는 『고조본기』 다음 순서로 기재돼야 했을 『효혜본기』를 대신해 여성 중심 역사서인 『여태후본기』가 기재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유방의 후계자인 혜제의 병약함으로 그를 대신해 정치에 힘을 쓴 유방의 황후 여태후의 연대기를 서술함으로써 역사 서술의 진실성을 고려한 것이다. 또한 사마천은 황제가 되지 못한 항우의 사적을 유방의 『고조본기』보다 앞에 내세웠다.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보다 진나라 멸망과 중국 통일에 기여한 항우의 공로를 더 높게 산 것이다. 이는 진시황을 무너뜨린 인물을 치켜세움과 동시에 한 고조와 한 무제, 즉 통치자의 난폭성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객관성과 역사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객관성이 부족한 역사서는 단순히 사료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역사서도 결국 사람이 쓴 글이다. 객관성을 판단하는 정확한 기준은 무엇이 될 수 있으며 객관성의 부족함이 곧 역사서의 결점으로 직결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관해선 의문이 동반된다. 역사서도 글의 범주에 속해 있기에 글쓴이의 주관적인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보이는 대로, 가시적인 것만을 기록하기보다 이면적인 부분까지 세심히 살피고 베일에 싸인 관계를 중시해 역사서를 저술하는 것은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문서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실증주의 역사관과 상대주의 역사관이 있다. 실증주의 역사관은 오직 사실만을 인정하며 역사 서술에서 ‘객관성을 강조하는 과학적 태도’를 역설한다. 이에 반해 상대주의 역사관의 핵심은 ‘객관적인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역사적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동일한 역사적 사실이더라도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므로 객관적 사실은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때로는 객관적 사실이랍시고 늘어놓은 말이 이면을 가린 채 오히려 진실을 더 왜곡시킬 수 있다. 필자는 상대주의 역사관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 『사기』의 위대함에 공감한다.

매일의 사건 사고와 세간의 이슈를 다루는 현시대 언론, 즉 기사도 결국 하나의 역사서와 같은 맥락을 지닌다. 같은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하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는 달라진다. 『사기』가 만약 기존 사서들과 같이 황실의 입맛에 맞게 편찬됐다면 현시대 소위 공산당 산하에서 언론보도가 이뤄지는 일부 중국 관영 매체들의 행태와 흡사했을 것이다. 언론은 정해진 틀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사기』는 그 면모를 역사서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선 역사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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