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총리는 왕실의 시대착오적인 각종 기관을 꼬집으며 왕실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특히 12세기부터 내려오던 영국 내륙 수로의 백조 관리관에 대해 그는 “백조가 왕실의 식재료로 거의 쓰이지 않게 됐는데 오늘날 이 직책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냐”라고 말한다. 이에 엘리자베스 2세는 이젠 백조를 먹지 않을지 몰라도 누군가는 백조를 돌봐야 한다며 반박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일대기를 담은 ‘더크라운’ 속 내용이다.
무엇이 보존할 가치가 있고 어디서 선을 그을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새로운 것이 항상 답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그 전문가들의 전통적 연속성을 유지하는 매개체가 바로 군주였다.
누군가 우리에게도 물을 수 있겠다. 과거엔 저명하고 영광이었지만 이젠 서서히 추억의 무대에 올라 열독자를 손에 꼽는 학보사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요즘 같은 인터넷, 인공지능 시대에 종이 신문을, 그것도 학보를 누가 봐?”라고 말이다.
신문에도 ‘탈신문’할 수 없는 ‘신문다움’이 있다. 인터넷 추천 알고리즘 세상에서는 보이는 게 전부가 된다. 사람은 아는 만큼 생각하고, 생각하는 만큼 주관을 갖는다. 철저히 정제되고 인증된 종이신문의 가치는 조작과 허구가 가득한 인터넷 세상과 그 늪에서 한 걸음 물러서 고유의 폭넓고 객관적인 빛을 발한다. 단지 학교 구성원 및 독자들에게 통찰력 있는 정보를 제시하는 것뿐 아니라 학교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그 역사를 기록하는 매개체로서 학보는 그 이상의 중요성을 띤다.
기원전 4세기 양피지에 정보와 문자를 기록하던 시절에서 우리 기록, 언론 문화는 이제 AI라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 중이다. 신문다움이 있는 신문도 중요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미래를 그릴 필요도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네이티브를 넘어 인공지능 네이티브까지, 새로움이 거듭되는 그들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언론의 장을 펼칠지는 기한 없는 숙제일지도 모른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적인 신뢰도를 갖는 언론사들은 폭넓은 뉴스와 정보로 이어지는 관문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출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일단 해보자는 열정이 가득했던 ‘수습’ 기간을 뒤로하는 지금, ‘탈수습’의 가치를 우리 학보사 기자들이 AI 네이티브 세대 앞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백조 관리관이 되지 않기 위한 고민에 두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