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심리상담, 제주 한 달 살기 등 다양한 시도 나타나
청년 정신건강 지원, 비용·접근성·제도 측면 모두 미흡
“우울증은 일시적 전환만으로 치료할 수 없는 명백한 질병”

청년들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끊임없는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우울은 어느덧 그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청년들은 이제 우울 속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는다.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잠시 ‘멈춤’을 선택하며 스스로를 돌보려 한다. 이렇듯 감정을 드러내고 해소하는 방식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청년 정신건강을 위한 제도적 지원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고, 우울증에 대한 낙인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우울증 100만 시대, 청년들이 선택한 감정 표현의 방식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한계를 동대신문이 짚어봤다.

▲일러스트=김소현 기자.
▲일러스트=김소현 기자.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우울을 말하다

최근 청년들은 SNS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공간에서 우울을 감추기보단 스스로 마주하고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좋아’ ‘럭키비키(부정적인 상황에서 행운을 찾는 초긍정적 사고 방식)’ ‘Chill guy(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하고 느긋함을 유지하는 사람)’ 같은 유행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려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정용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전공 교수는 “이러한 표현은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부정적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스트레스에 저항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대학 생활 플랫폼 ‘에브리타임’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대학 에브리타임 커뮤니티에는 “요즘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못 하겠다” “그냥 울고 싶다”는 게시물이 하루에 수차례 올라오고, “나도 똑같다” “힘내요” 같은 공감과 응원의 댓글이 곧바로 이어진다. 정용국 교수는 “자신의 불완전한 감정을 온라인에 드러냄으로써 타인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고자 하는 행동”이라며 “청년들은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라는 인식을 통해 위로와 연대를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우울이나 무기력 같은 감정을 개인이 감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겼지만, 이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고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대학 재학생 대상 ‘AI 심리상담 사용 경험 여부’ 설문조사 결과 (일러스트=김도연 기자.)
▲우리대학 재학생 대상 ‘AI 심리상담 사용 경험 여부’ 설문조사 결과 (일러스트=김도연 기자.)

 

AI에게 마음을 털어놓다

청년들은 ChatGPT와 같은 대화형 AI를 활용해 속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나 조언을 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감정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동대신문이 우리대학 서울캠퍼스 재학생 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6%가 AI를 활용한 심리상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주요 이유로는 ▲심리상담 비용 절감(59.6%) ▲빠르고 간편한 접근성(42.3%) ▲비판 걱정 없는 자유로운 표현(36.5%) ▲익명성 보장(17.3%) 등이 꼽혔다.

‘Weobot’ ‘Youper’ 등 AI 챗봇 기반 심리상담 어플리케이션도 국내외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용국 교수는 “ChatGPT처럼 접근성이 높은 대화형 AI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감정 배출구로 작용한다”며 “AI가 전문가의 심리상담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감정 조절이나 정서적 지지 차원에서는 충분히 의미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버티기 대신 멈추기, 청년들이 선택한 ‘쉼’

일부 청년들 사이에서 ‘제주 한 달 살기’와 같은 체류형 휴식의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학업, 스펙 쌓기, 취업 준비 등으로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감정을 정리하고 재정비하려는 시도다. 제주에서 한 달간 머문 김예진 씨(21)는 “쉼 없이 달려온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며 제주 한 달 살기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제주에서의 시간은 멈춰있었지만, 결코 후퇴하는 시간은 아니었다”며 “감정을 다스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과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빛나 가천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는 “회복에 초점을 맞춘 접근은 단순히 증상 감소에 집중했던 기존의 치료 모델과는 다른 방향”이라며 “우울 증상이 남아 있더라도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아가는 전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 회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휴식과 감정 정비를 위한 시도 또한 회복의 일부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감정 표현의 시대, 그러나 우울증은 다르다

우울이라는 감정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점차 개방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유행어나 AI 등을 통해 우울을 드러내고 조절하는 방식은 감정 표현의 문턱을 낮추고 일상 속 정서적 해소 수단으로써 기능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일상적인 감정 관리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면서도, 이를 ‘우울증’이라는 질병에 대한 인식이나 치료 방식으로 확대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경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우울증은 디지털 공간에서 감정을 나눈다거나, 휴식을 위해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치료될 수 없는 명백한 질병”이라며 “반드시 의학적 진단과 과학적으로 검증된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우울감은 병적 상태로 이어질 수 있는 연속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단순히 ‘일시적인 기분 저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오히려 좋아’ ‘럭키비키’ 같은 유행어 역시 감정 전환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를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며 “감정이 힘들 때 이를 부정하지 않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 그리고 타인과 긍정적인 경험을 나누는 현실 기반의 대처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3년 사이 청년층의 우울증 환자 수가 4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우울증 환자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 가운데 20~30대 청년층은 2020년 26만 4,000여 명에서 2023년 37만 6,000여명으로 약 42.8% 증가했다. 같은 해 자살로 숨진 사람도 총 1만 3,978명으로 전년보다 8.3% 늘어났다. 하루 평균 38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이처럼 우울증 유병률과 자살률이 모두 증가하는 현실은, 각자의 자리에서 우울을 마주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자구적 노력만으로는 극복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청년 우울, 응답하지 않는 사회

청년 정신건강을 위한 제도적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 민간 심리상담은 대부분 비급여 항목으로 1회 10만 원 이상이 대부분이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정신과 상담조차도 1회 평균 3만~5만 원에 달하는 현실이다. 설령 비용을 감당하더라도 상담 대기기간이 한 달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용 구조 역시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단기 계약직 등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로 분류되는 청년들은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실업급여와 병가·휴직 제도 이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놓인 청년들에게는 실질적인 ‘회복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낙인도 높은 장벽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2024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50.7%가 ‘정신질환에 걸리면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고 답했으며, 64.6%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한 편이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우울증을 겪는 청년들이 병원을 찾는 것을 망설이게 만들고, 감정을 억누른 끝에 결국 더 큰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우울을 극복한 청년은 ‘성공 서사’로 소비되지만, 회복하지 못한 청년은 여전히 ‘나약하다’는 낙인 속에 방치되는 구조다.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청년들은 스스로 회복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질병 앞에서 여전히 제도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우울증 100만 시대, 청년 자살률 OECD 1위와 같은 꼬리표가 아직도 청년들을 따라다닌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우리 사회가 그들의 고통에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제는 사회가 응답해야 할 차례다. 회복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떠넘기는 시선을 거두고, 누구나 적시에 치료받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절실하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회를 넘어, 감정을 돌볼 수 있는 사회로. 청년들이 바라는 진정한 변화는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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