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사진제공=명필름아트센터.)
▲영화 포스터 (사진제공=명필름아트센터.)

“고객은 왕이다, 고객 감동 서비스,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 사랑합니다” 매일 아침, ‘더 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은 이 구호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유니폼을 단정히 여미고 가장 먼저 매장의 문을 여는 그들에게 ‘고객 감동’은 사훈이자 생존의 조건이다. 그러나 그들의 헌신은 근로계약 해지 통보 단 한 장 앞에서 너무도 허망하게 무너진다.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와 존엄은 얼마나 쉽게 무시되는가. 영화 「카트」는 바로 그 부당함과, 이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투쟁을 담아낸다. 

 

제도와 현실의 간극,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근로계약 해지 통보 후 주인공 선희와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본사에 맞서고 파업을 감행하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긴 시위 끝에 중앙노동위원회는 더 마트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하며, 그들의 투쟁은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본사는 복귀를 앞둔 조합원들에게 “노조에 앞선 이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건다. 결국 현장에 돌아가지 못한 선희는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는다. “그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그 간절한 외침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카트」는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사회적 약자가 어떤 현실에 놓이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더 마트 직원들은 계약 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무기계약직’으로 일하지만, 정작 그 계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일을 이어간다. 기업은 회사의 요구에 순응해 온 이들의 태도를 악용해 해고와 착취를 당연시하며, 노동자들은 법적 권리를 주장할 최소한의 기회조차 잃는다. 이는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사회적 약자가 얼마나 쉽게 소외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결코 스크린 속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현실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노동 관련 법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일부 기업들은 이를 악용해 연장·야간근로수당 등 기본적인 임금 지급 의무를 회피한다. 법과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의 권리는 여전히 선언에 그칠 뿐이다.

 

“비정규직 해고가 윤리 경영인가요”

영화 「카트」는 2007년 대형 할인점 ‘홈에버(Homever)’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일방적 해고에 맞서 벌인 파업 투쟁을 모티브로 한다. 당시 홈에버의 모회사였던 ‘이랜드그룹’은 파업을 강경 진압하며 노조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이 기업은 한국 경영대상 시상식에서 ‘2009년 존경받는 기업대상’ 윤리 경영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노동 탄압의 주체가 ‘윤리 경영’의 상징으로 포장되는 현실은 자본 중심 사회에서 윤리라는 가치가 얼마나 손쉽게 권력자의 시선으로 정의되고 소비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가 개봉된 지 11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업들은 ESG·상생·윤리 경영 등 각양각색의 슬로건을 내걸지만, 현실의 노동 현장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동반 성장’을 내세운 SPC의 산업재해, ‘나다움’을 철학으로 삼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노동 착취 의혹은 그 화려한 슬로건 뒤에 가려진 민낯을 보여준다. 선언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기업의 이미지를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진정한 윤리 경영은 문구가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 비정규직과 계약직 노동자를 손쉽게 교체 가능한 부품이 아닌 동등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동시에 소비자와 시민의 관심과 연대 역시 중요하다. 불매운동과 같은 움직임은 기업에 책임 있는 변화를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더 이상 외면받지 않도록, 함께 살아가는 연대 의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스며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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