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마을 이장 김을식 씨를 만나다
지리적 한계와 인구 감소에도 공동체 화합 이어가
남해의 끝자락, 파도에 둘러싸인 진도는 수천 개의 섬이 엮여 이뤄진 삶의 터전이다. 그중에서도 ‘새의 섬’이라 불리는 조도(鳥島)는 다도해의 아름다움으로 이름나 있다. 하지만 빼어난 풍경과 달리, 조도는 점차 인구 소멸의 위기 속으로 침잠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공동체로서 연대하며 삶을 지켜내는 주민들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동대신문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상의 극치, 지구의 극치” 조도
진도 남쪽에 위치한 조도면은 조도를 중심으로 관매도, 나배도 등 크고 작은 154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조도 6군도에는 가사군도·상조군도·하조군도·성남군도·관매군도·거차군도가 속하는데, 이중 하조도와 상조도는 조도대교로 연결돼 있다. 1816~1817년 동아시아를 항해한 영국의 바실 홀 대령은 조도의 풍경을 보고 “세상의 극치, 지구의 극치”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취재진도 그가 바라본 ‘지구의 극치’에 기대를 품었다.
진도항(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약 30분 만에 조도면 창유항에 도착했다. 바닷바람에 섞인 염분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차가 없어 막막하던 상황에서, 조도면 육동마을 이장 김을식 씨가 취재진을 위해 차량을 운전해 마중 나왔다. 취재진은 그로부터 조도의 삶을 면밀히 들어볼 수 있었다.
이곳 조도는 봄이면 쑥 향이 바닷바람에 번지고, 해안가엔 톳과 미역을 거두는 손길이 분주하다. “인구수는 적지만 행정상으로는 면 단위입니다. 특산품으로 쑥, 톳, 미역이 있고, 그중 쑥은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합니다” 김 이장이 말했다. 그는 현재 조도에 국비로 어시장과 특산품 상설 매장을 짓고 있고, 얼마 전엔 한국관광공사의 ‘2025 관광두레 신규 주민 사업체’로 선정되기도 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전했다.
육동마을의 과거, 그리고 오늘은
“청년 회원, 그러니까 60세 미만 인구가 24명이고 그중 30대가 2명, 40대가 7명입니다. 마을은 50대가 주를 이루고 있죠” 김 이장은 육동마을이 조도에서 세대와 인구가 가장 많고, 특히 청년이 가장 많다며 인구 구성을 설명했다. 취재진은 그 사실에 다소 놀랐지만, 김 이장은 유쾌한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육동마을의 청년들은 조도에서 유일하게 꽃상여 장례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꽃상여 문화는 한국의 전통 장례 의식 중 하나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아름답게 장식해 저승으로 보내는 의식이다. 주로 종이 꽃이나 꼭두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 마을 공동체 전체가 함께 참여하는 마을 장으로 진행된다. “이곳은 청년들이 중심이 돼 상여를 이고 장례문화를 지켜가고 있는 거죠” 김 이장은 말했다. 그는 이어 옛날의 육동마을을 회상했다. “1970년대에는 학생 수가 천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초등학생이 55명뿐입니다. 지난해 진도군 출생신고는 87명이었지만, 사망자는 600명 가까이 됐어요” 인구 감소 및 고령화를 김 이장이 설명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가꿔낸 마을, 아쉬움도 남아
오래도록 섬에 살아온 주민, 귀어·귀촌 자금을 활용해 들어온 가구, 도시에서 생업을 정리하고 귀향한 주민, 외국인 노동자 등이 함께 섬 사회를 이루며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조도 내 산업의 경우, 내국인보다는 외국인 노동자가 더 많다. 10명 중 한국인은 3명, 외국인은 7명꼴이라 한다.
“귀촌 인구는 대부분 이곳 출신이지만, 외지에서 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함께 살아가며 육동마을 공동체에 스며들고자 하시죠. 현재 55세 이하 귀촌인에게는 최대 5억 원까지 귀촌 기여 자금이 지원됩니다” 김 이장이 전했다. 하지만 마을 평균 연령이 60세 이상이고, 치매를 앓는 어르신들은 주소만 두고 목포 요양병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조도는 공무원의 기피 근무지라고도 한다. “공무원 지역 근무 변경을 위해선 근무지를 맞바꾸는 형식으로 진행해야 하기에 타지에서 조도로 오려면 한 명을 교환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도로 오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우체국 직원도 마찬가지예요. 출퇴근이 어렵고, 일주일에 한 번 나가기도 힘드니까요” 김 이장은 말했다.
광복 기념 체육대회로 공동체 정신 도모해
“매년 8월 15일이면 광복을 기념하는 체육대회가 열려요. 그날이면 조도 주민들이 한데 모여 함께하는 시간을 갖죠” 김 이장은 타지에 살던 고향 사람들도 광복절엔 조도를 찾아 공동체 정신을 나눈다고 전했다. 체육대회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화합을 다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체육대회에 대해 얘기하던 김 이장은, 취재진도 찾아온다면 흔쾌히 받아주겠다며 웃었다.
섬의 의료·교통 인프라는 어떨까
조도의 의료 서비스는 해경 배와 헬리콥터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응급성이 비교적 낮은 환자는 해경 배로, 높은 환자는 헬리콥터로 이송한다. 헬리콥터로는 목포한국병원까지 20분 만에 갈 수 있다. 이 외에 일차적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과 보건소도 마련돼 있다. 또한 조도 각 가정엔 비상벨이 설치돼 있는데, 이는 제한된 의료 접근성을 보완하는 작은 안전망 역할을 한다. 위급 상황에서도 고령 주민이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섬에 ‘독거노인·장애인 응급안전안심서비스’가 있어서 혼자 계시는 어르신이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호출 버튼을 누르면 구급대가 바로 출동할 수 있습니다” 김 이장이 밝혔다.
조도 사람들의 주요 교통수단은 자동차다. 자동차 다음으로 버스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 어릴 적엔 도로포장도 안 돼 있었고 다니는 버스도 한 대뿐이었어요. 지금은 두 대가 다니죠. 그리고 조도의 버스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답니다. 배 시간에 맞춰 버스가 운행되고, 사실 목적지만 말하면 버스 기사님이 그냥 내려주실 때도 있어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한편 조도는 본섬인 진도와 연결될 기회가 있었지만, 더 이상 진전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에 신조도대교 건설 이야기도 돌지만 5년째 진척이 없죠” 김 이장은 아쉬움을 표했다.
끝으로 김 이장은 조도에서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취재진을 도리산전망대로 데려갔다. 도리산전망대는 조도의 섬과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해 질 무렵에 맞춰 올라가면 환상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관광 명소다. 사방이 온통 푸른 바다와 초록빛 섬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현실에서의 고단했던 일상이 시원한 풍경과 함께 싹 날아가는 듯했다.
비록 사람은 줄었지만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조도의 오늘은 소멸의 그늘과 공동체의 빛나는 연대가 공존하고 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