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 우월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맞닿아있는 질문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이 인간의 우월의식에 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우월론자들이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해 낸 근거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이성적 능력’이다. 이는 논리적 사고를 통해 보편원리를 탐구하는 특유의 능력이니 인간을 고유한 존재로 구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성적 사고를 방법론으로 삼는 과학기술연구가 놀라운 성과를 내며 인간우월주의에 대한 지지는 더욱 강화됐다. 16세기 과학혁명을 시작으로 산업혁명, 전기혁명, 정보통신혁명 등을 거치며 인류는 대전환을 경험했고, 바이오혁명기에는 DNA엔지니어링을 통해 생명체를 합성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저명한 진화론 연구를 잠깐만 살펴봐도 이러한 주장이 지지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과 비인간 생물종이 공통조상에서 분기한 점을 강조하며 이 둘이 연결돼 있음을 설명했다.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생명개체는 프로그램된 생존기계로 유전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운반체에 불과하며, 이는 인간과 비인간 생물종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풀하우스>의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 또한 진화엔 다양성과 우연성만 존재할 뿐 일정한 방향성은 확인되지 않으며, 인류종이 진화사의 오른쪽에 위치해있다는 점을 들어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또한 인간우월주의를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초기엔 급진적 태도를 보였으나, 끝에 가서는 고도의 문화를 구축한 특유의 지적능력을 근간으로 인간이 고유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모순된 이성은 때로 괴이한 상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화성을 테라포밍하여 지구인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이 그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화성에 도달하기 위한 우주 돛을 구동하려면 1그램당 1조 달러가 넘는 반물질이 필요하다. 1,000억 년이 넘어야만 생산가능한 25조 킬로와트시의 에너지도 있어야 한다. 물리적 이론으로만 가능할 뿐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발상에 열광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쯤 되면 ‘근대적 이성’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기계적 인과법칙을 부분적으로 밝혀내기 위한 환원주의를 추구할 뿐, 행성 차원에서 체계를 제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은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인간존재를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편적 사고를 넘어 38억 년 생명의 진화사를 유기체적 관점에서 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이후 공생진화론, 가이아, 지구시스템과학 등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지구 행성은 인간/비인간 존재자들의 공생적 연결망이자 거대한 조절체계다. 그들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돼 있다. 광합성박테리아와 식물들이 대기 산소 비중을 20%로 맞추지 않고, 무기물이 태양에너지를 조금만이라도 초과하여 가둔다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비인간 존재자들이 절묘한 앙상블을 연출한 덕분에 인류는 안정된 홀로세 기후에서 짧은 기간 찬란한 전성기를 누렸을 뿐이다. 인류종의 번성을 도운 반려종들을 경계 짓고 착취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려운 오만이다. 인간이 참된 이성이 소유자라면 반려종들과의 공생관계가 붕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인간은 이성적 사유능력을 들어 우월함을 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이성적 사유를 통해 인간이 결코 자연과 구분될 수 없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인간/자연을 계속해서 구분 짓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인류종의 절멸을 재촉하는 반이성적 독단일 뿐, 달리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