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욱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조재욱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갈수록 ‘강성 정치팬덤’(이하 팬덤)만 보고 내달리고 있다. 지난 22대 총선과 21대 대선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이번에 치러진 여야 당대표 선거에서 팬덤이 위세를 과시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할 수 있었다. 팬덤정치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있었지만,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팬덤을 통제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더욱이 이제는 팬덤이 강성 당원이 되어 당내 여론전을 주도하면서 때로는 당의 몸통을 흔들기까지 한다. 전당대회와 공천 등 선거 결과 및 당내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팬덤이 패권화된 지는 오래되었고, 이들은 사실상 정치권을 이리저리 요리하고 있다.

팬덤정치의 강화는 자생력 넘치는 정당정치의 실종을 가져다준다. 당권파들은 뛰어난 협상력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혀가기보다 팬덤의 힘을 빌려 당내 경쟁자인 비당권파를 견제하려 하며, 특히 팬덤이 민심과 괴리된 목소리를 표출하더라도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려 한다. 대중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보다는 당권 유지를 위해 팬덤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행위에 대해 여론이 거센 반발을 하더라도 당내 지지층 또는 당원들의 요구를 수렴했다는 것을 명분 삼아 방패막이를 세운다. 팬덤이 정치의 주체가 되고, 정치인은 팬덤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대중정당은 이제 팬덤정당이 되고 말았다.

팬덤정치는 ‘혐오’와 ‘증오’로 먹고 산다. 자신의 리더에 대한 과도한 정서적 몰입과 무비판적 지지 속에 형성된 팬덤의 집단 정체성은 다양성을 결단코 용인하지 않는다. 반대 진영은 물론, 이 진영 내부 구성원들의 이견(異見)조차 허용치 않고 있다. 그들에게 대화와 타협은 굴복이다. 더 큰 문제는 진영 내의 반대 세력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을 씌우거나, ‘좌표 찍기’, ‘조리돌림’ 등의 집단공격을 통해 체계적인 모욕을 주는, 즉 비이성적 형태까지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팬덤이 문제시되고 사라질 존재로 부각되는 것은, 이것이 ‘훌리건(hooligan)’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팬덤정치는 우리 정치문화를 망가뜨리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팬덤정치는 현상 그 자체일 뿐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팬덤이 어떠한 정치활동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팬덤정치는 민주사회에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 성격을 보인 대표적인 팬덤으로 ‘노사모’를 꼽을 수 있다. 노사모는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았고,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공동선과 어긋난다고 판단될 때 가차 없이 비판하였다. 그리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의 정치’는 일절 일삼지 않았다. 노사모는 비판적 이성을 가지고 권력의 소유가 아닌 공동선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정치행위를 이어간 팬덤이었다.

편 가르기를 통해 상대를 경쟁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간주하고, 없어져야 할 존재로 부각시키는 것은 비민주성과 직결된다. 또한 자신들의 리더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과 믿음의 집단화 현상은 자칫 전체주의 현상으로 비칠 수 있다. 팬덤정치가 나쁜 민주주의의 동력으로 작동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권이 팬덤정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팬덤의 극단적인 선동정치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고 막아야 한다. 그리고 팬덤정치의 비민주성에 대해 용기 내어 쓴소리를 뱉는 정치인에게 동료 정치인이 총질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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