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팝으로 자리 잡은 튀르키예
한류 콘텐츠 이용에서 한국어 교육으로 흐름 확산해
“지금 필요한 것은 한류의 건강한 정착”

가깝고도 먼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이곳의 길거리에선 BTS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대학 강의실에서는 한국어 문장을 따라 읽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계를 휩쓴 K-콘텐츠, 한류가 이곳에서도 뿌리내린 것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5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한국문화콘텐츠 소비율은 22%로,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높고 전 세계에서도 4위에 올랐다.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 음악과 드라마, 언어와 생활로 확장된 이 흐름은 이제 두 나라를 잇는 새로운 다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튀르키예에서 타오르는 K-드라마 열기

튀르키예에서 한류는 2000년대 후반 K-드라마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튀르키예 국영방송 ‘TRT’에서는 <대장금>, <주몽>과 같은 사극이 현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고, 이후 민영방송으로 확대되면서 장르와 소재가 다양화됐다. 인스타그램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는 나즈미예 쿄세르 딜 씨는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를 시청하며 한국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도깨비>를 보며 한국을 직접 방문하고 싶다는 결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스터 션샤인> 속 주인공 이름을 아들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한국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한국 드라마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현지 창작의 원천으로도 작용한다. 2011년부터 2022년까지 40여 편의 달하는 한국 드라마가 튀르키예 버전으로 리메이크됐다. 2022년, 튀르키예 국영방송 ‘TRT2’는 <낭만닥터 김사부>를 리메이크해 <카사바 독토르>라는 드라마로 선보이기도 했다.

 

튀르키예를 물들이는 K-팝 열풍

튀르키예에서 한국 대중음악 K-팝이 현지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2021년 X(구 트위터)에서 K-팝 관련 트윗이 많은 국가 14위에 올랐으며 특히 여성층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즈미에 쿄세르 딜 씨는 “BTS와 스트레이키즈 등 남성 아이돌 그룹이 현지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복을 입은 나즈미예 쿄세르 딜 씨 (사진제공=나즈미예 쿄세르 딜.)
▲한복을 입은 나즈미예 쿄세르 딜 씨 (사진제공=나즈미예 쿄세르 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은 현지에서 다양한 K-팝 콘텐츠를 선보이며 한류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이 2013년부터 매년 개최해 온 ‘한국 문화의 날’이 올해도 다채롭게 열리며 전통 공연과 K-팝 댄스 무대를 선보였다. 약 1,500명이 넘는 관객이 참여한 가운데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 BTS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특히 주목받았다. 올해 5월 31일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과 튀르키예 문화관광부가 공동 주관한 ‘2025 K-팝 커버댄스 페스티벌 인 튀르키예’는 현지 팬들의 열광에 힘입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2023년에는 현지 K-팝 아카데미를 운영하기도 했다.

 

한류의 연장선, 한국어 교육과 문화 교류의 확산

튀르키예에서 한국 문화의 인기가 한국어 학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어는 꾸준한 주목을 받으며 오늘날 미래 경쟁력을 위한 외국어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이스탄불대학교, 앙카라대학교, 에르지예스대학교 등 3개 대학에는 한국어문학과가 개설돼 있으며 수백 명의 학생들이 전공 과정을 밟고 있다. 이스탄불대학교에는 한국 문화 교류를 위한 ‘코리아 코너’라는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가야금, 대금, 북, 장구 등 전통 악기와 전통 혼례복이 전시돼 있으며 이스탄불대학교 학생이라면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다.

▲이스탄불대학교 전경 (사진=고아름 기자.)

한국어 교육의 또 다른 중심지는 이스탄불 세종학당이다. 한국 세종학당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이스탄불 세종학당은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위한 한국어 수업과 한국 문화를 쉽게 접해볼 수 있는 세종문화아카데미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한글을 직접 쓰고 말하며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세종학당 수강생 나즈미예 쿄세르 딜 씨는 "한국 드라마에서 '밥 먹었어?',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말을 들으며 한글이라는 문자 자체가 멋있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어를 사용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반응을 보며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또한 이스탄불대학교 한국어문학과 학생 베리 씨는 “한국어가 튀르키예어와 문법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 신기했다”며 “배울수록 한국어가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팽이치기를 배우는 튀르키예 학생 (사진=방민우 기자.

동대신문은 한국의 매력을 발견한 튀르키예 시민들을 만나러 7월 26일 튀르키예 한인회관에서 열린 튀르키예-한국 문화 교류 행사를 찾았다. 제주대 해양스포츠센터 전통놀이 연구팀과 이스탄불 세종학당의 주도로 이뤄진 행사는, 공기놀이·제기차기·팽이치기·딱지치기 등 4개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한국 전통놀이에 관한 관심 하나로 뭉친 사람들이 서로를 응원하며 경쟁을 즐겼고, 공기놀이에서는 튀르키예 사람이 우승하는 등 훈훈한 장면이 보였다.

이날 만난 아시아학과 대학생 메이라 씨는 “베쉬 타쉬라고 튀르키예에도 공기놀이와 비슷한 놀이가 있어서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또한 행사를 진행한 한 제주대학교 스포츠과학과 4학년 학생은 “사실 힘들 거라 예상했는데 다들 재미있게 즐겨 주셔서 감사했다”며 “덕분에 같이 재미있게 논다는 생각으로 끝낼 수 있었던 거 같다”고 전했다.

▲행사에 참여한 메이라 씨와 베리 씨 (사진=방민우 기자.)
▲행사에 참여한 메이라 씨와 베리 씨 (사진=방민우 기자.)
▲K-전통 잇기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 (사진=방민우 기자.)
▲K-전통 잇기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 (사진=방민우 기자.)

 

튀르키예 한류, 지속 가능한 정착을 향해

한류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과제가 남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은경 이스탄불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2010년을 기점으로 튀르키예에서 한류 동호회가 결성되며 본격적인 위상을 갖추기 시작했다”며 “과거에는 소수 팬층이 깊게 몰입하는 성격이었다면, 이제는 대중 전반으로 폭넓게 확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지금 필요한 것은 한류의 건강한 정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류가 단발성 유행으로 소비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사회 속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현지 문화 정책에 대한 연구와 함께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튀르키예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콘텐츠에서 언어와 교육, 나아가 문화 교류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드라마와 음악으로 시작된 관심이 한국어 학습과 생활문화로 이어지면서 두 나라를 잇는 새로운 소통의 장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류가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는 현상에 만족하기보다 앞으로는 그 문화적 성취를 얼마나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튀르키예에서 한류가 얼마나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을지는 앞으로 한국과 튀르키예 양국이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고, 문화적 접점을 넓혀가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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