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편하게 휴식 취하는 튀르키예 고양이들
고양이 사랑의 배경엔 종교적 이유 있어
길거리 동물 규제 법안 발의되자 다수 시민 반발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선 길고양이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길고양이가 누군가에겐 보살핌의 대상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쓰레기 훼손이나 생태계 다양성 저해 등 피해를 주는 골칫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의 상황과 다르게 고양이와의 공존을 택한 나라, 튀르키예가 있다. 튀르키예에서는 고양이가 도심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며 시민들 사이 자연스레 살아간다. 이른바 ‘고양이의 천국’이라 불리는 튀르키예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까

▲시민이 준 밥을 먹는 고양이 무리 (사진=권구봉 기자.)
▲시민이 준 밥을 먹는 고양이 무리 (사진=권구봉 기자.)

이스탄불의 길거리에서 만난 고양이

튀르키예 최대 도시 중 하나, 이스탄불(İstanbul)에 도착한 취재팀은 숙소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길고양이를 만났다. 많은 고양이들이 사람의 흔적이 가득한 골목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열어둔 창문의 틈에서부터 시작해 자동차 위, 정원의 화분 아래 등 고양이는 인간의 주거 공간 속에서 당연한 듯 잠을 자고 있었다.

▲자동차 위에서 자는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자동차 위에서 자는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길고양이는 이 도시의 주인처럼 당당하게 거리를 차지했다. 사람이 가득한 탁심 광장(Taksim Square) 중심에 보란 듯이 누워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거나 문 앞을 점거하기도 했다. 난간을 타고 발코니에 올라간 고양이도 눈에 띄었다. 놀라운 것은 누구도 길고양이를 쫓아내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점 앞을 차지한 고양이
▲상점 앞을 차지한 고양이
▲탁심(Taksim) 주택가 창틀의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탁심(Taksim) 주택가 창틀의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이튿날 취재팀은 발랏(Balat) 지구를 취재하기 위해 알록달록 집들(Renkli Evler) 거리로 향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다양한 색채가 어우러진 건물과 수제 공예품, 컵 등이 전시돼 있는 ‘힙’한 관광지다. 취재팀은 이 거리에서 수많은 고양이 밥그릇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고양이가 카페에 들어와도, 아이스크림 가게의 벤치에 누워있어도 이를 말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길고양이 밥그릇을 관리하고 있던 한 도자기 가게에 들어가 튀르키예의 고양이 사랑에 대해 질문하자 “사람들은 고양이를 귀엽게 생각해 먹이 주는 것을 즐기고 고양이 돌보기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여러 시민에게 고양이 얘기를 했을 때 한 시민은 고양이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손짓으로 하트를 그렸다.

▲아이스크림 가게 의자에서 자는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아이스크림 가게 의자에서 자는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길거리서 잠에 든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길거리서 잠에 든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기념품 가게에서는 튀르키예의 상징물과 함께 고양이 장식품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파우치, 그림, 열쇠고리, 그릇과 노트 등 삽화를 넣을 수 있는 것 모두에 고양이가 새겨졌다.

고양이를 향한 튀르키예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은 비단 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동물이란 오래전부터 인간이 지배해야 할 대상보다는 어울려 살아가야 할 존재기 때문이다. 들개나 비둘기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모습에서 이스탄불 시민의 깊은 동물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갈라타(Galata) 지구 상점 위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갈라타(Galata) 지구 상점 위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튀르키예 사람들의 유별난 고양이 사랑, 그 이유는

고양이가 특별히 튀르키예에서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데는 튀르키예 인구의 99%가 따르는 이슬람의 종교적 배경이 영향을 미친다. 이슬람에는 ‘나지스’와 ‘타하라’라는 용어가 존재한다. 나지스는 종교적 의식이나 기도 전에 피해야 하는 불결한 것을 뜻하고 타하라는 청결한 것을 뜻한다. 이 분류에서 고양이는 개, 돼지 등과 달리 부정하지 않은 것인 타하라로 간주된다.

이에 더해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말과 행동 등이 기록된 ‘하디스’에는 “고양이를 학대하면 죄가 된다”라거나 “길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선한 행동이다”와 같은 가르침과 고양이를 학대한 여인이 지옥에 갔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또한 이슬람은 선행을 일컫는 ‘이흐산’이라는 개념을 통해 동물에 대한 윤리적 규범을 강조하는데, 여기엔 동물을 학대하면 죄가 되고 돌보면 보상을 받는다는 가르침이 있다. 그렇기에 고양이는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일반 동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스탄불에서 ‘soil coffee’를 운영하는 한 시민은 “고양이는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무슬림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양이는 이슬람 가치관상 부정한 존재가 아니므로, 기도나 의례에 방해가 되지 않기에 고양이가 실내외에서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과 공동체 일부로서 사랑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스탄불대 안 고양이와 교감하는 시민 (사진=양기석 기자.)
▲이스탄불대 안 고양이와 교감하는 시민 (사진=양기석 기자.)

실용적 측면에서의 이유도 존재한다. 튀르키예는 이스탄불과 이즈미르(İzmir) 등 지중해, 흑해 등과 연결된 항구도시가 많아 선박 중심의 상업 활동이 발달해 있다. 이에 따라 쥐와 같은 설치류, 곤충이 많이 서식하는데 고양이가 해충 방제 역할을 하면서 공동체 안전과 생계유지에 이바지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뷔위카다(Büyükada) 식당에 온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뷔위카다(Büyükada) 식당에 온 고양이 (사진=권구봉 기자.)

동물과 표면적 공존 이룬 튀르키예, 그 뒷이야기

범국가적인 사랑을 받는 튀르키예의 고양이들도 제도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고양이에 대한 문화적인 존중 및 사랑에 비해 법률적인 측면에선 한계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이스탄불의 한 아파트 주민이 엘리베이터에서 길고양이 에로스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에로스 사건’이 있다. 해당 사건은 튀르키예 전역에 큰 분노를 일으켰지만, 사법부는 해당 사건 범죄자에 대해 구금 없이 2년 6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또한 튀르키예 정부는 지난해 길거리 동물 개체 수 관리를 위해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했는데 일부에서는 이를 ‘학살법’이라 비판하고 있다. 들개가 이 법안의 주요 쟁점이며 처음엔 고양이도 관리 대상에 포함됐으나 종교적 가중치와 문화적 이유로 제외됐다. 이는 상점에서의 개와 고양이 판매 금지, 동물 서커스 및 돌고래 쇼 폐지 등 동물 우호국으로 거듭나던 튀르키예의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취재팀이 이스탄불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동물을 좋아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며 “튀르키예의 새로운 법은 많은 동물을 도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이 법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스탄불대에 놓여진 고양이 사료 (사진=양기석 기자.)
▲이스탄불대에 놓여진 고양이 사료 (사진=양기석 기자.)

밥그릇 하나와 따뜻한 보금자리로 고양이를 보살피면서도 2004년부터 동물보호법을 제정하는 등 법안을 세워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가득 채운 것은, 고양이를 향한 사랑과 동시에 책임감 있는 공존의 자세였다. 길고양이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한 지금, 소비적인 갈등에 머무르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진지한 논의의 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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