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일 중에서 국민 통합을 이루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물론 경제 성장을 회복하고, 피폐해진 민생을 보살피며,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일 모두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위해서라도 국민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처럼 분열하고 대립하는 국민의 마음과 태도로는 어떤 일에도 성공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라를 지키고 잘살아 보자는 일념으로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운 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 내부는 빈부격차, 세대 간 차이, 젠더 갈등, 이념 대립 등으로 심각하게 분열돼 있다. 불신과 비방, 상호 배제와 배척이 한국 민주주의의 작동을 어렵게 하고, 국가적 정책 결정을 마비시키고 있다.
오래된 인식론 논쟁 중에 보는 것을 믿는가 믿는 것을 보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인간 인식과 지식의 본질과 한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논쟁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유튜브나 블로그 등 SNS의 범람 속에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보고 듣고 믿으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어울리지도 않으려 한다. 다름과 차이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고 우기며 상대방을 부정하고 배척한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태도를 부추기고 이용하며 우리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킨다.
우리는 차기 대통령이 분열의 대통령이 아니라 통합의 대통령이 되어 주기를 갈망한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런 마음에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차기 대통령에게 간곡히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 선거 때처럼 중도 지향의 정책과 태도를 견지하라.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따라서 후보와 정당은 이른바 중위 투표자(Median Voter)를 향해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든 않든 국민 모두를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한다. 낮은 자세를 취한다.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에 취임하고서도 이런 약속과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둘째, 정치보복을 하지 말라. 우리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적대시한다. 보수에게 진보는 친북좌파세력이고, 진보에게 보수는 수구독재세력이다. 차기 정부에서도 이들은 상대방을 내란세력이나 국가전복세력으로 인식하고 척결하려 들 위험이 크다. 한국 정치가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제로섬게임의 정치, 적대적 정치가 되는 이유이다.
셋째, 헌법과 정치 관계법 등 정치제도가 내적 일관성을 갖도록 고쳐라. 주요 후보들이 모두 임기 중 개헌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민주정치가 실패하는 제도적 이유는 헌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권력구조와 선거 및 정당 관련 제도들 사이에 정합성이 없기 때문이다. 제헌의회에서 대통령제와 내각제적 요소들을 혼합해서 도입한 이후, 선진 민주국가들에서 좋아 보이는 정치제도들을 이것저것 도입할 때에도 제도적 일관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로 인해 한국 민주정치는 뚜렷한 방향성이 없이 무정형의 혼란상을 계속해서 노출하고 있다.
앞의 두 과제는 차기 대통령이 의지만 있다만 가능한 일이다. 세 번째는 국민적 합의와 정치권의 협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이 역시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성공과 더불어 차기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도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