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탐조기』로 2025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우리대학 극문학창작입문 수업, 작가로서 전환점 돼
"글로써 독자에게 '함께 있다'는 감각 전하고 싶어"
시와 희곡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펼쳐 온 송희지 동문(국문문창 20). 열여덟 나이에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첫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시작으로 올해 희곡 『탐조기』를 발표하며 극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텍스트에서 무대까지, 내면의 불안과 삶의 이면을 담아내는 그의 작품은 독자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시도하며 자신만의 예술적 지평을 확장해 온 송희지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안녕하세요, 송희지 동문님.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20학번 송희지입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며, 시와 희곡을 쓰고 있습니다.
Q. 학부 시절, 창작에 특별히 영감을 주거나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창작에 대한 제 시야를 넓혀 준 건 단연 소설 창작 수업이었습니다. 시를 주로 써 왔지만, 인물의 서사나 심리를 섬세하게 탐구하는 소설 수업을 통해 시에서도 새로운 감각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특히 소설 합평 시간에는 인물의 복잡성과 사건의 개연성에 관해 날카로운 질문들을 주고받는데요. 이 과정에서 각각의 인물과 사건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세심하게 고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소설을 배우고 나니 시를 쓸 때도 더 집요한 사고가 가능해지더라고요. 이전에는 ‘시적 도약’으로 여기며 가볍게 넘겼던 부분들도 이제는 꼼꼼히 검토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창작 수업을 접할 수 있었던 학부 생활의 경험은 매 수업마다 새로운 자극이었어요.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든 밑바탕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Q. 대학 생활 중 장르에 대한 생각이나 창작 방향에 변화가 있었던 순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어릴 때부터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시라는 한 갈래에 집중하게 됐죠. 그러다 ‘극문학창작입문’ 수업을 들으면서 제 창작 세계에 큰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무대 위 공간과 인물의 움직임, 대사의 리듬까지 세심하게 고민하며 시나리오를 만드는 과정은 기존의 시 쓰기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요구했어요. 특히 첫 희곡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극작이라는 새로운 창작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수업을 통해 다시 한번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조합과 변주를 시도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게 된 것이죠.
Q. 창작 수업에서 합평을 여러 차례 경험하셨을 텐데요. 피드백을 수용할 때 작가님만의 기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시는 독자의 삶과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과 감정으로 펼쳐집니다. 그만큼 해석의 폭이 넓은 장르이지만, 저는 시를 ‘나의 말을 하는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창작은 결국 작가 내면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피드백을 받기 전에,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잘 담았는지 먼저 생각해 봅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다면 합평에 따라 쉽게 수정하지 않으려 해요. 저에게 중요한 건, 삶의 한 순간을 가장 나다운 언어로 드러내는 일이니까요.
Q. 이미 작가로서 활동 중이신데, 졸업 후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글을 쓴다는 건 철저히 혼자의 시간을 감당하는 일이더라고요. 그 고요함 속에서 오래 버티려면, 결국 함께 글을 나누고 고민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졸업 이후에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대학원이라는 선택지에 이르게 됐어요. 이곳에서 다시 사람들과 글을 나누고, 함께 호흡하며 작업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과 자극이 됩니다. 함께 고민하고 쓰는 이 시간이 제 창작을 더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돼 주고 있어요.
Q. 대학원에서는 작가이자 연구자로서 어떤 주제에 관심을 두고 계신가요?
A. 앞으로는 퀴어문학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어요. 평소 창작 활동을 하면서 ‘퀴어문학이 시대적 흐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 왔는데요. 다양한 퀴어문학 자료를 접하며 지금까지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이 장르의 역사와 변천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습니다. 퀴어문학이 어떤 사회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세밀하게 짚어 가며 저만의 문학사적 지형도를 그려보고자 해요. 아직 대학원 첫 학기여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온다면 꼭 그 길에 발을 내딛고 싶습니다.
Q. 최근 희곡 『탐조기』로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계십니다. 시에서 희곡으로 창작 영역을 넓히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저는 시를 쓸 때도 극적인 요소를 자주 활용해 왔어요. 시와 희곡은 겉보기엔 다른 장르처럼 보이지만 언어적 측면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특히 말이 가진 다의성과 무대 위에서 발화되는 순간의 긴장감, 그리고 문장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 속 화자가 단순히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마치 무대 위 배우처럼 특정한 서사와 위치를 지닌 존재라고 믿어요. 이러한 구조적 감각을 바탕으로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에서 희곡으로 창작 영역을 확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탐조기』를 쓰면서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에 대한 제 꿈을 직접 실현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다양한 형식과 표현을 실험하며 창작의 폭을 넓혀 가고 싶어요.
Q. 『탐조기』를 직접 무대화하며 작가로서 새롭게 느낀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제가 맡은 역할은 연출진과 함께 인물의 심리와 세부 묘사를 논의하며 작품 작업을 보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연극이 진정한 ‘협업의 예술’임을 깨달았어요. 시는 개인의 발화에 집중하는 장르지만, 연극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모이고 조율돼 하나의 결과물로 완성되는 공동 작업입니다. 때로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설득해야 했고 반대로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며 조율하는 과정도 있었죠. 이런 과정은 시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었고, 그만큼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특히 제 작품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깊이 들여다보고 치열하게 논의하는 시간이 정말 흥미롭고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Q. 지금까지 발표하신 작품 중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A. 첫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에 실린 「여기」라는 시에 특히 애정이 가요. 제 시적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하는 작품이라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가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시는 퀴어 남성으로서 ‘나의 있음’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인데, ‘여기’라는 지점에서 제 내면을 표현하면서, 현재 불완전한 나의 존재를 다양한 장면과 리듬으로 풀어내고자 했어요. 이 작품을 통해 제 자신의 정체성을 작품과 더 밀접하게 결부시킬 수 있었고, 시를 쓰는 일이 곧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Q. 시를 쓸 때 가장 경계하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시적 수사’라 일컬어지는 기교들로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 가려지는 것을 가장 경계합니다. 제 진솔한 이야기를 기교와 함께 담아내면 오히려 망설이는 듯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몇 년 전 퀴어 정체성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시를 쓴 적이 있는데, 돌아보니 많은 아쉬움이 남아요. 현재의 저는 삶의 경험과 감정을 언어적 장치로 숨기기보다는 작품에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싶거든요. 언어를 가감 없이 드러냈을 때 가장 진실한 감각이 느껴지기 때문에 시 안에 삶의 리듬과 정서는 정직하게 표현돼야 해요. 결국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가’이기 때문이죠.
Q. 인공지능(AI)이 시를 창작하는 시대가 도래한 지금, 인간이 직접 쓴 시가 지니는 고유한 가치와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시는 언어 예술 중에서도 특히 ‘자아’와 ‘감각’이 응축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AI가 웹소설이나 장르문학처럼 뚜렷한 서사 구조를 모방하고 변주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시는 그 이상을 담고 있죠. 시에는 시인 개인이 겪은 내면의 갈등과 세계에 대한 감각, 그리고 고유한 언어적 사유가 깊이 스며 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라도, ‘쓰는 사람’의 체험이 배제된 AI 시는 결국 감동이나 설득력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봐요. 물론 AI를 창작 도구로 활용하는 실험 자체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AI를 활용해 문장을 구성하거나 새로운 발화를 시도하는 과정은 시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중요한 시도일 수 있죠. 그러나 궁극적으로 시는 인간의 내면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기에, 인간이 쓴 시만이 지닐 수 있는 고유한 울림과 깊이는 결코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 제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 제 글을 통해 ‘함께 있음’의 감각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시 속 화자의 내면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위로나 연결감을 찾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죠. 저 역시 그런 순간을 처음 경험하게 해준 시집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자퇴 전, 우연히 접한 김현 시인의 『글로리홀』이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당시 퀴어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시집은 드물었는데, 이 시집은 날것의 감각과 문화를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었어요. 그 시집을 읽으며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힘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다짐하게 됐죠. 그래서 제가 바라는 건 제 시가 단순한 목소리를 넘어 누군가의 쓸쓸한 순간에 닿아 ‘함께 있다’는 감각을 전하는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과 응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않은 시대인 것 같습니다. 짧고 즉각적인 콘텐츠가 주를 이루고 분절된 언어가 소비되는 세상에서 독서를 즐기는 독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저는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장 자신의 글이 세상에서 읽히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가장 충실한 독자가 돼 꾸준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 나가는 일이니까요.
시인이자 극작가로서 일상의 사소한 단면까지 섬세하게 포착하며 이야기를 그려가는 송 동문. 그의 문장은 누군가에게 오래된 상처 위에 얹히는 따뜻한 손길이자, 곁에 없어도 선명히 느껴지는 ‘함께 있음’의 감각이다. 그가 창조한 세계에서 화자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삶이라는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펼쳐질 그의 다음 장을, 동대신문이 진심으로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