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공원, PMQ, 피크트램 등 여러 시설 속 전통 남겨둬
한때 홍콩의 아픔이던 감옥, 이제는 사랑받는 문화유산으로
성공적인 홍콩의 도시재생 프로젝트, 어떤 교훈 주나
초고층 빌딩이 빼곡한 도시,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홍콩. 한정된 공간과 높은 인구 밀도 속에서 홍콩은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새 가치를 부여해 도시를 쌓아갔다. 시간 속에서 사용처를 잃은 공간들은, 홍콩의 도시재생으로 다시금 홍콩의 정체성이 됐다. 지난겨울, 동대신문 해외취재단은 홍콩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조명하고자 그곳으로 떠났다.
역사는 남기고 공간은 바꾸다
구룡공원은 홍콩의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녹지공간이다. 1830년대, 이곳은 항구를 감시하는 중요한 군사 기지였다. 때문에 1860년대 영국은 구룡반도를 점령하고 ‘휘트필드 막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이 장소를 사용했다. 하지만 점차 원래의 용도를 잃어가며 1970년대 이후에는 도심 한복판의 시민 공원으로 개방됐다. 취재단이 본 현재의 모습을 갖춘 시점은 1989년 재개발이 이뤄진 이후였다. 폐쇄적인 군사 기지가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며 모두에게 열린 공원이 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 군대가 주둔하는 공간이 아님에도 공원은 그 역사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일부 건물을 홍콩 문화유산 발견센터(HDC)로 사용해 홍콩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진행 방문객들이 군사 기지 시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간직했다.
구룡 공원에는 실내 수영장과 실내 스포츠 공간, 큰 호수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어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수영을 위해 방문한 현지 유치원 아이들, 상가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방문한 현지 시민 등 다양한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공원 한가운데에는 홍학이 줄지어 서 있는데, 공원 바로 밖으로 고층 빌딩이 있는 도심 속에서 홍학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국인 방문객들도 이런 구룡 공원의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대구에서 온 이범철 씨는 “도심 한가운데에 이런 녹지 공간이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며 “무엇보다 공원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광객 변인애 씨는 “숙소 근처라 자연스레 이곳을 방문하게 됐다”며 “일상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공간”이라고 공원의 매력을 얘기했다.
PMQ는 홍콩의 유명 복합 상업 예술 시설이다. 방문 당시 곳곳에 들어선 공예점, 가죽 상점, 캐릭터 상품 등 거대한 디자인·예술 공간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자체 제작 상품부터 일본, 미국, 한국의 상품들까지 여러 상점에서 팬시상품을 판매했다. 취재단 방문 당시 1층에서는 차(tea) 박람회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자주 열리는 주류 박람회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상업 예술 공간인 지상 건물과 달리, 지하 전시장에선 이곳의 과거를 볼 수 있었다. 대략 150여 년 전인 1862년, 홍콩 최초로 서양식 교육을 실시한 공립 초·중등학교인 ‘중앙서원’이 이 장소의 시작이었다. 학교 건물로 시작된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손된 이후 경찰을 위한 숙소로 활용됐다. 하지만 이도 점차 용도를 잃어갔다. 비어있던 이곳은 2009년, 「센트럴 도시 재건 사업」 제1 프로젝트로 선정돼 다음해 11월, 「PMQ 프로젝트」로 본격 재건이 시작됐다.
재건 사업을 주도한 PMQ 관리주식회사는 PMQ를 홍콩 최초의 독창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따라서 창조적 산업에 종사하는 젊은 세대에게 작업실을 건립할 기회와 플랫폼을 제공했고, 지금과 같은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공간이 됐다.
이곳 역시 건물 개조 과정에서 문화재 보존을 위해 건축물 설계 원형을 유지했다. 중앙서원 옛 기반을 보존해 지하에 전시하고, 구 할리우드 로드 경찰관 사택의 역사까지 담았다. 경찰의 숙소로 사용되던 곳은 예술가의 상점이 됐다.
PMQ에 대해 최윤정 서울연구원 미래공간연구실 연구원은 “PMQ는 해당 지역에 밀집한 공예상과 디자인 스튜디오 등 창조 산업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허브 역할이 됐다”며 “기존 도시의 맥락을 유지하면서 공간 개선이 이뤄지기에 지역과의 시너지 효과가 더욱 강화된 긍정적인 사례”라고 전했다.
피크트램은 홍콩의 필수 관광지로 불리는 야경 명소인 ‘빅토리아 피크’로 갈 수 있는 케이블카다. 피크트램은 1888년 개통된 홍콩의 대표적인 산악 철도였다. 그러다 2022년, 최신식 객차를 도입하고 트랙 개량 공사를 진행했다. 취재단이 피크트램을 타기 위해 대기하는 장소에서도 피크트램의 과거 모습을 담은 건축물을 관람할 수 있었다. 향토적이고 위엄있는 나무 열차의 모습이었다. 공간의 겉모습은 변했을지언정, 그 정서는 남아있었다.
홍콩의 아픔을 보존하는 공간, 타이쿤
센트럴에 위치한 타이쿤은 홍콩의 유명 관광 명소 중 하나다. 수준 높은 전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해 한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다. 그러나 이곳은 과거 홍콩 사람들에게 많은 아픔을 주던 공간이었다.
타이쿤은 중앙경찰서, 감옥, 법원 등으로 오랜 세월 사용하던 건축물을 재탄생시킨 사례다. 각 건물은 내·외부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문화예술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중 감옥은 홍콩 사람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건립 초기에는 주로 해적이나 산적, 명령에 불복종하는 선원 등을 수감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평범한 사람들도 많이 끌려왔다. 방랑자, 거지, 노점상, 채무자, 무허가 이민자뿐 아니라 홍콩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전쟁 포로와 정치적 반체제 인사들, 심지어는 부모와 함께 감옥에 끌려온 유아들도 생겼다. 사람들이 갇혀있던 감옥은 좁고 차가운 모습으로 여전히 보전돼 있었다. 감옥 내부 전시장에 적힌 글, 모니터를 통해 나오는 다큐멘터리가 마음을 울렸다. ‘이들 모두가 공유한 것은 감금의 고통과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뿐이었다’.
재탄생 이후로 이곳은 소외된 사람들과 삶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연결하는 곳으로 변화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자유와 회복력, 평화와 사회적 결속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 이들이 이곳을 보존한 이유다.
타이쿤의 수석 마케팅 책임자 GRACE KWONG 씨는 “타이쿤은 활기차고 따뜻한 분위기의 공간으로 모든 지역사회 구성원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타이쿤은 홍콩인들의 아픔이었던 과거와 달리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최근 공공 여론 조사에서 주민들이 타이쿤을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술·문화 명소로 뽑았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홍콩의 도시재생은 단순한 건축적 변화를 넘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도시 모델을 제시한다. 역사적 유산을 모두 알 수 있도록 남겨 두면서도, 현대적 기능을 더해 새로운 정체성을 탄생시켰다. 막사가 공원으로, 교육시설과 경찰 숙소가 상업 예술 공간으로, 감옥이 전시장으로 변하는 등 홍콩으로 존재한 긴 시간 동안 공간은 변화했지만 그 역사는 아무도 잊지 않았다. 홍콩이란 도시는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지난 10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모두 담아내면서 말이다.
홍콩의 도시재생 방식, 어떤 이점 남기나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홍콩뿐만이 아니다. ‘뉴딜사업’과 같은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여러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홍콩은 어떤 교훈을 줄까.
홍콩과 같이 건축물을 보존하는 도시재생 방식을 사용할 경우, 역사적·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이점을 가진다. 기존의 역사와 정서를 유지하며 현지인을 비롯한 관광객에게 해당 장소를 방문해야 할 이유를 남긴다는 것이다. 홍콩의 건축물 보존에 대해 홍경구 단국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역사적인 것들을 그대로 유지·관리하면 명품화를 통한 장소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새로 건축물을 지으면 신축 연도부터 역사가 시작되지만, 기존 건축물은 도시의 시간을 그대로 느끼며 재활용해 도시의 역사성과 의미, 지역 사람들의 창의성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도시재생을 통해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도시재생의 이점에 대해 최 연구원은 “도시재생이란 단지 노후한 도시 인프라를 물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넘어 지역이 본래 가진 자원과 특성을 살려 사람들이 머물 만한 도시로 전환하는 과정”이라며 “오랫동안 형성돼 온 그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존중해 포용적인 공간을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도시재생, 어딜 향해야 하나
한국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전문가들은 ‘단지 오래된 건물을 새로운 용도로 사용한다‘는 단편적 현상에만 치중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홍콩의 도시재생 사례는 주변 지역의 맥락을 고려한 공간 계획과 기능 배치가 이뤄졌기에 주민들의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최 연구원은 “홍콩의 PMQ는 그 지역의 창조 산업 생태계를 지원·육성할 수 있는 시설로 개발됐고 타이쿤은 도심 한복판이라는 입지를 고려해 삭막한 도시에 활기찬 공간을 제공할 수 있도록 변했다”며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이 되기 위해서는 대상지 특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역자치단체, 지역주민과 민간기업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상 지역이 처한 여건과 문제점이 모두 다르고, 그만큼 여러 이해관계자의 입장도 달라 합의점을 도출하는 과정이 까다롭다. 홍콩 정부는 2001년 도시재생전담기구(URA, Urban Renewal Authority)를 설립하고 도시재생전략(URS, Urban Renewel Strategy)를 수립해 효율적인 도시재생 사업을 도모했다. 프로젝트가 원활히 추진되도록 돕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지속하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 또한 필요한 것이다.
바쁜 현대사회, 우리는 가끔 지나온 시간을 잊고 나아가기에만 급급할지 모른다. 과거의 유산을 잊지 않고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홍콩은, 발전에만 집중해 놓치는 것이 없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닐까. 홍콩의 가르침과 함께, 취재단은 과거와 현재의 홍콩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