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스님 불교대학 강사
▲진관스님 불교대학 강사

눈을 뜬다. 눈을 감는다. 잠에서 깨어난다. 잠든다. 전화기를 켠다. 끈다. 고민한다. 밥을 먹는다. 외출하기로 한다. 누군가를 만난다. 대화한다. 

켜고 끄는 ‘딸깍’ 스위치는 전기 회로를 끊거나 잇는다. 그래서 전환의 의미를 포함하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도 스위치의 연속이다. 일기를 쓰듯 하루의 스위치를 정리하면 사실 별것 없다. 굉장히 단조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 뇌의 회로만 분석해 보아도 그렇지 않다. 스스로 정리하였을 때 그것이 단조롭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정도만을 정확히 인지하여 직접 스위치를 켜거나 껐기 때문이다. 그 on&off 또는 전환의 시간은 다 합쳐도 1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시간은 잠드는 시간을 합쳐도 열두 시간을 넘기 어렵다. 나머지 열두 시간은 그저 제멋대로 돌아간다. 그것은 신체적인 감각기관의 반응에 의해서일 수도 있고, 대부분 습관에 의해 돌아간다. 그리고 정말 스스로 회고하거나 녹화해서 돌려 보아도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은 무의식이 이끈다. 

홀로 척척 평상심을 갖고 하던 것들도 시간과 공간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동안에는 그렇지 못하다. 시선과 평가가 두렵기도 하고, 그로써 새로이 나를 포장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심지어 혼자 있는 시간도 침범받기 시작한다. 관계를 생각하면서 어제와 내일을 생각한다. 그래서 후회하거나 두려워한다. 심각해지면 잠자는 시간까지 침해를 받는다. 내가 나의 스위치를 오롯이 갖고 켜고 끄는 주인으로서의 시간은 점점 줄어서 어느새 하루 가운데 대여섯 시간 남짓만을 평상심으로 산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시간은 너무나 당연하고 반복적이라 느껴져 보람을 주지는 못한다. 

자기 스위치를 남에게 넘겨주지 않고 스스로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당연한 시간마저 소중함을 안다. 나아가 하루 가운데 스위치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수행’이라 한다. 예를 들면 학교나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미디어 대중 매체, SNS 등등을 접해도 나의 욕망이 일어나게 하지 말고 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욕망이 아니라 아름다운 목표이다. 내게 열등감을 주지 않고 용기를 주는 꿈이 된다. 이 꿈에 집착마저 내려놓으면 ‘서원’이라고 한다. 정리되지 않는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우리 모두, 이제는 자신의 스위치를 누군가 마음대로 다루게 하지 말고 주인이 되어 보는 2025년 이기를 서원해 본다. 

저작권자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