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작은 간이역에서 한국 최대 역이 되기까지
‘서울의 봄’ 등 민주주의의 상징, 서울역 광장
보존과 변화가 공존하는 ‘문화역서울284’로 재탄생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공항철도와 KTX까지 전국을 연결하는 서울역은 출퇴근길에 오르는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연일 북적인다. 바삐 돌아가는 서울역 옆에는 더 이상 기차역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오가는 열차들을 바라만 봐야 하는 곳, 구 서울역사가 있다. 1900년부터 100년간 ‘서울의 관문’으로 불리며 한국 근·현대사의 수많은 이야기를 지켜봐 온 구 서울역사. 그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발자취를 소개하기 위해 구 서울역사에 직접 발걸음했다.

▲구 서울역사 전경 (사진제공=문화역서울284.)
▲구 서울역사 전경 (사진제공=문화역서울284.)

구 서울역사가 들려주는 지난 100년의 이야기

구 서울역사의 시작은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 경인선이 개통되며 작은 간이역으로 개업한 서울역은 ‘남대문 정거장’이라 불렸다. 개업 후 25년이 지난 1925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역사를 새롭게 건설하며 명칭이 ‘경성역’으로 변경됐다. 당시 경성역은 르네상스 건축 양식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으며, 소설가 이상이 ‘꿈의 장소’로 묘사한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 ‘그릴’이 자리해 남녀노소 모두가 동경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경성역은 일제 강점기 식민지 침탈의 중심지로 역할 했던 민족적 아픔을 간직한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는 경성역을 포함하는 한반도 종단 철도를 준공해 군수품 등을 수송했으며 철도 및 역사 건설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인을 착취했다. 또한, 경성역은 중국부터 러시아, 독일, 프랑스까지 연결하는 일제의 ‘대륙 침략 발판’으로 이용됐다. 이에 구 서울역사 자체를 역사적으로 부정적 의미를 가진 건축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하나, 경성역은 독립운동가들이 각종 물자를 전달하던 경로이기도 했다. ‘암살’과 ‘밀정’ 등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들에는 구 서울역사를 배경으로 촬영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구 서울역사 1층 중앙홀 (사진제공=문화역서울284.)
▲구 서울역사 1층 중앙홀 (사진제공=문화역서울284.)

광복 이후 1947년, 경성부가 서울시로 개명되면서 경성역의 역명 또한 ‘서울역’으로 변경됐다. 서울역은 한국전쟁 때 일부 파괴되기도 했으나 지속적인 보수를 거쳐 2004년 폐쇄될 때까지 우리나라 철도 교통의 중심으로 기능했다. 서울역 광장은 꿈을 안고 상경하는 젊은이들의 설렘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으며, 10만 대학생이 모여 신군부에 계엄 철폐를 외친 ‘서울의 봄’이 일어난 곳이기도 했다. 현재는 시위나 집회 등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흔히 광화문역 광장을 떠올리지만, 1970년대 당시엔 서울역 광장이 단연코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4년, KTX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얼굴이던 서울역은 결국 100년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역사 전면에 위치한 시계 ‘파발마’ (사진=방민우 기자.)
▲역사 전면에 위치한 시계 ‘파발마’ (사진=방민우 기자.)

문화역서울284,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KTX 신역사 준공 이후 철도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며 수년간 방치됐던 구 서울역사는 2011년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문화역서울284는 우리나라 사적 제284호로 지정된 국가유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전시회, 내·외부 공간투어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역서울284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전면에 위치한 지름 160cm의 거대한 시계다. 경성역이 들어서며 함께 설치된 시계 ‘파발마’는 소식을 전하는 가장 빠른 말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교회 종소리와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시간을 어림하던 당시, 파발마는 시민들이 규칙적인 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왔다. 시계의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강우규 열사의 동상이 있다. 강우규 열사는 일제의 탄압에 맞서 서울역 광장(당시 남대문역)에서 조선 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인물이다. 60세가 넘은 노년 독립투사의 숭고한 항일운동을 기리기 위해 서울역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또한 문화역서울284에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근대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초석’이 설치돼 있다. 이 정초석에는 강우규 열사가 폭탄을 던진 3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광복 이후 해당 정초석을 식민시대의 잔재라며 없애자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다. 이에 대해 구 서울역사 공간투어를 진행 중인 오수빈 큐레이터는 “정초석을 없애는 것도 과거 청산의 한 방법일 수 있으나, 이를 계속 보존하며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문화역서울284의 내부로 들어가면 경성역 건립 당시의 자료를 근거로 복구한 20세기의 구 서울역사를 감상할 수 있다. 지금은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문화역서울284에서 진행 중인 공간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할 경우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경성역 당시의 역사 내·외부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역사 앞 광장의 강우규 열사 동상 (사진=방민우 기자.)
▲역사 앞 광장의 강우규 열사 동상 (사진=방민우 기자.)

구 서울역사는 수많은 사람이 만나 수많은 이야기가 시작된 곳으로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다. 소위 ‘핫플레이스’가 넘쳐나는 서울에서 고요하지만 의미 있는 장소를 찾고 있다면, 1900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를 간직해 온 구 서울역사에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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