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일 단국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김두일 단국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영화 ‘관상’의 마지막 신이 기억난다. 바람을 보지 못하고 파도만 본 것을 자책하는 장면이다. 우리는 원인보다 현상에 집중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의사가 병의 원인을 놓치고 증상에만 몰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난 8월 언론에 서울 연희동에서 달리던 자동차가 싱크홀로 사라지는 놀라운 광경이 동영상으로 보도됐다. 밈에서나 볼만한 후진국형 사건이라 국민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세상의 모든 싱크홀은 지하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외국의 석회암 지대의 거대한 지하 대수층은 주택 몇 채를 순식간에 삼킬 정도의 싱크홀을 만든다. 지하수가 통제된 도시에서는 상수관로에서 누수된 수돗물이나 빗물이 하수관으로 흘러가면서 만든 동공이 싱크홀의 주요 원인 이다. 특히, 시공 과정에서 뒷채움이 불량한 하수관거의 경우 그 피해가 심각하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싱크홀의 발생 원인은 상하수도관 매설물 손상(57.4%), 되메우기 불량(17.8%), 공사부실(13.3%) 순이었다.

상하수도관 불량 원인은 인프라 노후화가 주요 원인이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듯이, 우리 주변 인프라도 노후화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하수관은 30년을 넘은 것이 약 30%이다. 노후화가 반드시 상하수도관 불량과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변수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수관은 하수의 높은 염도와 미생물학적 작용으로 심각한 부식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지상구조물보다 파손 위험이 크다. 지하에 있다 보니 시공 과정에서 품질관리가 어렵고, 육안조사에 의존하는 진단을 하기도 어렵다. 

도시의 하수관거 길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2022년 하수도통계(환경부 발간)에 따르면 전국의 하수도 총연장은 168,941km이다. 지구를 4.2바퀴 돌 수 있는 거리이다. 이러한 거대한 지하 인프라를 건강하게 관리하는 기법은 무엇일까? 첫째, 자산관리 제도의 고도화 및 정착이다. 호주와 영미권을 중심으로 2000년 초반 발전한 노후화된 인프라를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기법이다. 자산의 목록을 디지털화한 후, 각각의 자산의 전생애분석, 수리 및 진단 이력의 관리, 리스크 분석, Level of Service, 장단기 대수선 및 소수선 예산 수립 등을 컴퓨터에 디지털화시켜 관리하는 기법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도입이 진행되고 있으나, 시행 초기에 모든 것이 그렇듯 많은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전문가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투자와 인력의 양성을 통해 고도화시켜야 한다.

둘째, 하수관거를 직간접적으로 조사와 진단을 하여 관거의 잔존수명을 정확히 예측하는 기술도 중요하다. 특히 직접조사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하수도법은 하수관거진단을 5년마다 하도록 규정한다. 주로 시각적인 조사에 집중하고 있으나, 하수관 샘플의 채취를 통해 물성의 검사를 추가하면 좋을 것이다. 신규 하수관거의 연결이나 하수관거 수리 시 굴착을 하게 되므로, 이때 하수관거 샘플을 채취하여 진단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많은 물성 변화데이터가 축적돼 빅 데이터화되면, 향후 과학적인 유지관리시스템 구축의 토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마트한 하수관거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하수관거는 지하에 존재한다는 특성상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렵다. 디지털화된 도면과 BIM, Digital Twin 기술 등의 도입은 스마트 하수관거시스템 구축을 위한 디지털 인프라의 초석이 될 것이다. 하수관거를 조사하는 기술은 아직까지는 대차에 설치된 CCTV에 주로 의존한다. 그러나 소형드론을 이용한 기술이 이미 실용화되었고,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화상분석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런 첨단 기술의 과감한 도입은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큰 효과를 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자산관리시스템, AI, 빅데이터 구축, 디지털 트윈 등은 하나의 디지털 플랫 폼에서 통합이 가능하다. 이때 시너지가 엄청날 것이다.

저작권자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