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 동문, 장애인 최초로 대학 수석 졸업해
국내 최초 장애인 문예지 『솟대문학』, 세계적으로 인정 받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진(共振)하는 사회를 꿈꿔”

▲방귀희 동문 프로필 (사진제공=방귀희 동문.)
▲방귀희 동문 프로필 (사진제공=방귀희 동문.)

장애인 예술의 선구자 방귀희 동문(불교 76). 그는 장애인 예술의 지평을 열고, 진정한 평등 사회를 위해 앞장선 리더다. ‘장애인 문학’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국내 최초로 「장애예술인지원법」을 제정하기까지 그는 쉼 없이 전진했다. 장애인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치를 발굴해 온 방 동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세상과 당당히 마주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

고교 시절 학업에 정진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둔 방귀희 동문은 대학 진학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단지 휠체어를 끄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대학에서 입학을 거부당한 것이다. 그러던 중 우리대학만이 방 동문의 입학을 허가해 배움의 길을 열었고, 그는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방 동문에게 펼쳐진 대학 생활은 낭만보다는 전쟁에 가까웠다. 그는 매일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올라야 했으며, 재학 당시 학내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아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역경에도 그가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든든한 친구들과 스승들의 사랑이었다. 방 동문은 “휠체어를 들어 올려 주던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힘든 순간이 와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한 교수님은 강의실을 이동할 때 업어 주시겠다고 할 정도로 학교생활에 큰 힘이 돼 주셨다”며 삶의 버팀목이 돼 준 이들을 회상했다.

‘최초’라는 수식어로 고정관념을 타파하다

방귀희 동문은 우리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며 ‘최초의 대학 수석 장애인 졸업생’이란 타이틀로 언론에 조명됐다. 이후 그는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KBS 방송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 방 동문은 주로 시사와 교양부터 다큐멘터리, 불교 방송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집필하면서 삶과 사람을 연출하는 법을 터득했다. 폭넓은 연출 경험을 바탕으로 방귀희 동문은 ‘우리 사회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에 대해 고찰하며 글을 집필해 나갔고, 이후 이러한 메시지가 세상에 알려지자 그는 휠체어 장애인 최초로 2012년 대통령 문화특보로 위촉됐다.

방귀희 동문은 “문화특보로 임명받고 처음 기자 앞에 나설 때 대통령께서 휠체어를 밀어주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자고 제안했다”며 “이는 장애인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전문가로 보이기 위한 연출이었다”고 말했다. 사회가 가진 편견에도 움츠리지 않고 당당히 빛났던 방 동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장애인 예술의 길을 개척하다

“장애 예술인이 많은 인정을 받으며 예술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방 동문은 장애인의 사회 활동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장애인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외쳐 왔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장애인에게도 예술 활동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은 예술을 하면 안 된다는 편견적인 시선을 깨기 위해서 그는 장애인도 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길 바랐다.

이에 1991년 봄, 방귀희 동문은 우리나라 최초 장애인 문예지인 『솟대문학』을 창간했다. 『솟대문학』은 우리나라 최초 ‘장애인 문학’이라는 장르를 만든 한국 문학계의 귀중한 보물로 평가받는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도서관은 『솟대문학』의 1호부터 100호까지 전권을 연구자료로 보관하고 있다. 또한 방 동문은 장애인 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솟대문학』에 이어 우리나라 최초 장애인 예술 전문 매거진인 『E美지』를 발행했다. 그는 “장애인의 예술은 쓸데없는 허영이 아닌, 장애인이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라며 장애인 예술의 의의를 전했다.

▲문예지 『솟대문학』 (사진출처=한국장애예술인협회.)
▲문예지 『솟대문학』 (사진출처=한국장애예술인협회.)

 

장애 예술인의 날개돋이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다

“한국 사회는 아직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장애 예술인들의 작품이 빛을 발하지 못하죠. 이제는 그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방귀희 동문은 장애 예술인이 사회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의 부재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는 1981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본격화됐고, 이후 서울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 체육이 발전했지만 장애인 예술은 계속 후순위로 밀렸다”며 “장애 예술인은 가장 열악한 상태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방 동문은 한국장애예술인협회를 설립하며 장애인의 예술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8년 동안의 연구 끝에 방 동문은 2020년 「장애예술인지원법」을 제정했다. 또한 그는 장애 예술인 지원을 위한 기본 계획인 창작 지원 및 고용 확대 등을 수립하고, 장애예술인연구소를 설립해 이론 연구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는 “「장애예술인지원법」은 제정됐지만 아직 장애 예술인의 창작을 완전히 보장하고 있지는 않다”며 “앞으로도 연구에 계속 매진해서 장애 예술인들이 마음 놓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결과물인 창작품이 대중적인 인정을 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전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명하는 사회

방귀희 동문이 그려 나가는 세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진(共振)하는 사회다. 모든 이의 사회적·문화적 접근성이 보장된 미래를 위해, 방 동문은 사회가 장애인에게 가진 이중적 태도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은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가 옳다는 것은 알면서도 자기와 다른 집단을 배제하면서 그것이 평등하다고 여기는 오류를 무의식적으로 저지른다”고 말했다. 나아가 방 동문은 ‘사회가 장애인을 포용하지 않아서 놓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기를 제안했다.

진정한 장애인 포용 사회를 위해선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방 동문은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장애인 복지가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많은 장애인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하진 못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중요한 것은 장애인에게 귀 기울이며 해결해 주려는 관심과 의지”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사회를 향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세상을 여는 열쇠, 거침없는 도전과 경험

방귀희 동문은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것으로 ‘경험’을 꼽았다. “방송작가로 31년 동안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원고 마감 시간을 넘긴 적이 없어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울면서 밤에 원고를 썼죠. 내 일을 그만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에요” 방 동문에게는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대학 생활부터 현재 장애 활동가로서 일하는 순간까지, 모든 시간이 그에게는 값진 경험이다.

방 동문은 후배들에게 새로운 분야와 다양한 경험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 보면 남다른 능력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또한 사회의 많은 경험이 가장 알찬 재산이 될 것입니다” 장애 예술인들의 치열한 삶과 열정이 방 동문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 넣었듯이, 그는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후배들이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영감받기를 바란다.

▲방귀희 동문 (사진제공=방귀희 동문.)
▲방귀희 동문 (사진제공=방귀희 동문.)

 

한때 장애 예술인이 걷는 땅은 밟기만 해도 가라앉는 늪과도 같았다. 방귀희 동문은 불안정한 땅을 단단히 다져 그들을 더 넓은 세상으로 안내한다. 차별 없는 사회에서 꽃피는 다채로운 예술의 세계. 방 동문은 그런 미래를 향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장애 예술의 가능성을 확장해 나갈 그의 여정을 동대신문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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