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언회 34개 대학 중 26.47%, 총학 부재
비대위, 인력·예산·영향력 부문서 한계
“총학 통해 효능감 느끼도록 해야”
자율을 바탕으로 한 학생자치활동을 통해 학원의 자주화를 실현하는 것. 총학생회(이하 총학)의 목적을 설명하는 우리대학 총학생회칙 일부 구절이다. 총학은 학우들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복지사업 및 학교 행사 전반에 학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최고 학생자치기구다. 그러나 점차 여러 대학에서 투표 부진 및 후보자 부재 등을 이유로 ‘총학 없는 학생사회’를 마주하는 실정이다. 총학 없는 대학이 낯설지 않은 지금, 총학 부재에 대해 알아봤다.
대학가에서 사라진 총학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이하 서언회) 소속 34개 대학을 대상으로 총학의 출범 여부를 조사한 결과, 올해 총학이 없는 대학은 26.47%로 조사한 대학 중 약 1/3에서 총학이 부재한 채 학생자치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국민대, 삼육대, 서울여대, 성공회대, 숙명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 등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로, 서울대는 ‘총학생회 직무 대행 2024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 체제로 총학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우리대학 역시 2021년 제53대 총학 「도약」 이후로 3년간 비대위 체제를 지속 중이다.
비대위는 ‘임시’ 기구일 뿐
비대위는 총학의 빈자리를 최소화하기 위한 임시 운영 기구다. 그러나 비대위는 정기선거 및 보궐선거를 통해 출범한 것이 아니기에 인력·예산·영향력 등에서 한계를 가진다. 실제로 우리대학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 관한 시행세칙」의 제9조 2항을 보면 본회 어떤 회의체에서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장) 직책에 의한 의결권을 별도로 부여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올해 비대위 체제인 국민대는 봄 대동제 진행이 무산된 바 있다. 예산 감소와 인력 부족이 주된 원인이었다. 우리대학에서도 지난 제55대 비대위장 문상준(국어교육 19) 학우가 퇴임사를 통해 “올해는 동아리연합회와 총대의원회의 도움으로 대동제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지만 매번 그러한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다”며 비대위 체제에서 행사 운영에 어려움이 있음을 밝혔다. 이어 “비대위 체제로는 학내·외 사안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다”며 총학 선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학우들의 목소리를 대표할 창구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학우는 “총학은 대학과 학우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이라며 “결집된 조직이 학우들을 대변할 때 대학이 학사 행정에 학우들의 입장을 더욱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침체된 학생사회, 그 기저에는
계속되는 총학 부재에 대한 학우들의 의견을 듣고자 동대신문은 지난 21일부터 6일간 대학생 47명을 대상으로 ‘총학 부재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들은 총학의 출범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매우 필요하다’ 64%, ‘필요하다’ 23%, ‘보통이다’ 6%, ‘필요하지 않다’ 2%, ‘매우 필요하지 않다’ 4%로 응답해 총학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주를 이뤘다. 총학 부재의 원인으로는 응답자의 38%가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30%가 ‘학우들이 총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을, 12%가 선거 후보자의 자질 부족’과 ‘비대위 체제로도 충분한 운영’을 택했다. ‘학교가 충분히 학생들의 의사를 대변함’이라는 답변은 전체 응답자 중 2%가 선택했다. 이는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학우들이 총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이 총학 부재의 주된 원인임을 보여 준다.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의 기저에는 과열된 경쟁사회의 압박감이 문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취업이 어렵고 경쟁이 심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스펙 쌓기와 자격증 취득이 급선무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본지의 설문조사에서도 최근 선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의 31%가 ‘개인 일정상 투표하지 못했음’을 이유로 꼽았다. 제56대 총학 이승수(사회복지 21) 비대위장은 “경쟁이 과열된 환경 속에서는 학생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기가 더 어렵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학우들이 총학의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의 배경이다. 우리대학은 2021년 제53대 총학 「도약」 이후로 3년간 총학 궐위 상태다. 이는 총학이 어떤 사업을 진행하는지, 총학이 대학을 상대로 어떤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지를 경험한 학우 또한 적음을 방증한다. 이 비대위장은 “총학이 사실상 축제 진행기구로만 비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문과대학 김가희(중어중문 21) 비대위장은 “지난 몇 년간 비대위 체제가 이어지며 총학을 경험해 보지 않은 학우가 더 많다”며 “이들은 총학이 선출돼야 하는 필요성을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투표함 열기도 전에 정해진 비대위 체제
학생 선거에 총학 후보자가 출마하지 않거나 후보자가 나오더라도 투표율이 개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비대위 체제는 불가피하다.
서언회 소속 34개 대학 내 현재 총학 궐위 상태인 9개 대학 중 5개 대학에서는 총학에 출마하려는 후보가 없어 선거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학생 대표자 후보가 나오지 않는 현상에 대해 이 비대위장은 “학생사회에 관심이 적은 상황에서 입후보자가 나와도 목적이 불순하거나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생기니 학우들이 총학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됐다”며 “보상과 인정이 미약한 학생 대표자 자리에 본인의 미래를 뒤로하고서까지 출마하는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마자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투표율이 낮아 총학 선거가 무산되기도 한다. 우리대학은 23년도 11월 정기선거에서 43.8%의 투표율로 과반을 충족하지 못해 개표가 무산됐다. 한양대 서울캠퍼스도 24년도 3월 보궐선거에서 36.72%의 투표율로 총학이 나오지 못했다.
투표율 미달로 개표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지속되자 대학가는 개표 기준을 낮추는 추세다. 단국대 죽전캠퍼스와 천안캠퍼스는 기존 50%의 투표율에서 각 33.3%와 28.8%의 투표율을 넘기면 선거가 유효한 것으로, 고려대는 기존 50%의 투표율에서 33.3%로 개표 기준을 변경했다.
학생사회를 위한 공론장이 필요한 현재
본지는 학우들에게 총학의 재건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물었다. 법과대학 김승수(법학 23) 학생회장과 이 비대위장은 “학우들이 총학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법과대학 김 학생회장은 “학교 본부가 총학과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학우들이 총학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효능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비대위장은 “무엇보다 학생자치기구의 청렴함과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응답자들은 “선거 시스템 개혁을 통해 총학이 부활해야 한다”, “대면과 비대면 투표를 동시 시행해야 한다”, “비대위와 정식 출범된 총학이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투명한 학생사회가 담보돼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대학은 총장 선거 진행, 모집단위 광역화, 승가대학과의 합병 등 비대위 체제에서 여러 이슈가 있었다. 그러나 학생 대표자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학생 개인이 대학을 상대로 의견을 주장해야 하기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학생사회의 위기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금, 위기의 본질을 꿰뚫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