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크리스마스 설렘, 1월 6일까지 이어져
“바르셀로나의 까가티오, 우리에겐 산타클로스와 같은 존재”
페세브레부터 포도알까지, 가족과 함께 보내는 특별한 명절
“24일에 잠들어서 26일에 일어날 겁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따듯한 내음을 풍기는 크리스마스가 누군가에게는 외로움과 싸우는 연휴가 됐다. 크리스마스는 본래 ‘아기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지만 미디어에서 로맨틱한 분위기로 연출되면서 주로 연인의 기념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더욱 각별하고 다채로운 크리스마스 주간을 보낸다. 지난겨울, 대학미디어센터 해외취재단이 스페인의 크리스마스를 더 알아보고자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족과 함께 외쳐, ‘펠리츠 나비닷!’
¡Feliz Navidad! 가족과의 따뜻한 시간을 축복하 는 스페인만의 크리스마스 인사다. 이 슬로건처럼 스페인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가족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12월 24일부터 1월 6일까지 이어지는 스페인의 크리스마스와 새해의 기쁨은 길고 여운이 깊다.
스페인 대명절의 유려함을 즐기기 위해 취재단은 스페인에서 지난 학기 우리대학 교환학생으로 파견됐던 Emma와 Eva를 찾아갔다. Emma의 흔쾌한 초대 덕분에 스페인 고향 마을 ‘카드데우’를 방문해 그녀의 집에서 함께 Feliz Navidad을 외쳤다. Emma 집의 문을 열자 연말의 따듯함이 우릴 감싸 안았다. 집안으로 발을 딛자 길가에 줄지어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작은 인형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담요에 둘러쌓인 정체 모를 아무개가 집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담요를 치우자 귀여운 얼굴의 통나무 모양 인형이 나왔다. 마드리드 솔 광장의 크리스마스마켓에서 가장 많이 마주친 까가티오 인형이었다. 당시 취재진은 솔 광장의 상점 ‘Art Catala’의 주인 Labhesh Menghani을 만나 까가티오에 대해 물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주인은 까가티오는 ‘똥 싸는 인형’ 이라고 첫 운을 뗐고, 이어 “카탈루냐 신화 상징의 한 종류로서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스페인 전통 인형”이라고 신화를 늘어놓으며 스페인 크리스마스 마켓의 명물임을 강조했다.
그렇다. 스페인만의 이색적인 크리스마스는 ‘까가티오’로부터 시작된다. Emma의 집에서 까가티오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12월을 맞이할 때면 온 집에 까가티 오가 담요로 덮여 있다. 상점 주인의 말처럼 이의 목적은 선물을 똥으로 싸는 것이다. Eva는 “12월 매일 밤 까가티오에게 맛있는 것을 잔뜩 주면 아침에 모든 음 식을 마법처럼 먹어 치운 상태였다”고 어린 시절 추억 을 상기했다. 그러자 Emma는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25일에는 온 가족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막대기로 까가티오를 때린다”며 “까가티오가 여태 먹었던 음식들을 그대로 내뱉는 재미있는 전통”이라고 카가티오를 통한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전했다. 이는 우리가 어릴 적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었던 것과 같다. 스페인의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그에게 초콜릿을 준다면, 그는 더 많은 초콜릿을 내뱉게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한 의미다. 취재단 역시 그의 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까가티오 전통을 체험해 봤다.
“Tio poop Torrons, which is a snack of almonds and like different kinds of nuts,
and if you don't want to poop I'm going to hit you so one two three poop Tio!”
아이러니하게도 노래가 끝나자 스페인 전통 간식 네 훌라(nebula)가 눈앞에 나타났다. 동전 초콜릿들과 뚜 론(turrones)이 쌓여 있었는데, 뚜론은 한국의 엿과 비슷한 식감에 초콜릿과 아몬드가 섞인 전통 음식이 다. 가족마다 노래 가사는 조금 다르지만,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스페인 가족들의 전통이다.
동방박사와 페세브레로 물든 특별한 연휴
12월 24일에 시작된 크리스마스 연휴는 1월 6일 동방박사의 날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에는 카탈루냐의 까가티오가 선물을 전해 준다면, 1월 6일 동방박사의 날은 연휴 마지막을 장식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설렘, 즉 동심은 산타클로스로부터 비롯되지만, 스페인의 아이들에겐 동방박사가 있다. Emma는 “매년 1월 5일 밤, 세계 각지 의 모든 도시에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동방박사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온다. 아이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자신의 소망을 담은 편지를 써 동방박사들에게 전달한다”며 동방박사는 아이들에게 마치 산타클로스와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뒤이어 Eva는 “다음 날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큰 기쁨을 누리며 특별한 순간을 보낸다”며 “이것은 옛날 이야기의 현대적 재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동방박사의 날 역시 가족들이 한곳에 모여 온기를 나눈다. 1월 6일, 식탁에 모인 가족들은 식사를 한 후 로스콘 케이크를 먹으며 동방박사의 도착을 축하한다. 로스콘 안에는 작은 왕과 콩 피규어가 숨겨져 있는데, 이 피규어를 찾는 것이 재미있는 문화 중 하나다. 피규 어를 찾은 두 명은 본인의 피규어별로 각기 다른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왕 피규어를 찾은 사람은 왕관을 받 아 그날의 왕 혹은 여왕으로 대우받으며, 콩 피규어를 찾는 사람은 함께 먹었던 로스콘의 값을 치러야 한다. 이처럼 스페인의 크리스마스는 마치 우리나라의 설날, 추석과 같은 대명절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스페인의 크리스마스 재미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12월이 되면 바르셀로나의 가정집에서는 온 가족이 모여 ‘페세브레(pesebre)’ 장식을 한다. 페세브레 장식은 각 가정집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전통 중 하나다. Emma의 집 벽 난로에 손바닥보다 작은 인형들이 줄을 지어 마을을 꾸리던 것 또한 페세브레 장식이었다. 가족들이 함께 천 혹은 나무로 직접 인형들을 만들어 집안을 꾸미며 페세브레 장식을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꾸며지는 페세브레 장식은 스페인 가정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며 한 해의 끝을 따뜻하게 마무리하게 한다.
‘펠리츠 아뇨 누에보!’
포도 12알과 함께하는 새해 크리스마스와 동방박사의 날 사이에 있는 큰 명절, 새해 역시 이들에겐 가족과 특별한 문화를 향유하는 날이다. 1년의 시작인 만큼 각 12개월에 대한 소망과 풍요를 이루고 누리자는 마음에서 1월 1일에 12알의 청포도를 먹는다. 각각의 포도는 새해의 한 달을 상징하며 종소리에 맞춰 건강과 행운이 온다는 의미를 지닌다. 틱톡을 통해 인기를 끌고 있는 젊은 세대만의 유행도 있다. Emma는 “이건 사랑을 찾고 싶은 젊은 사람들이 하는 건데, 테이블 아래에서 포도를 먹는 거예요”라며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소개했다. 그러자 Eva 역시 본인 역시 매년 참여해 젊음을 만끽하고 있음을 전했다. 전통 속 그들만의 트렌드를 향유하는 스페인 사람들. 스페인에서는 가족이 포도알처럼 흩어져 각기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연말이 되면 포도송이처럼 하나가 되는 그들을 볼 수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포도알의 기억은 한 해의 소원이 다 이루어질 것 같은 힘을 준다고. 이처럼 스페인은 연말부터 새해까지, 그리고 더 나아가 동방 박사의 날인 1월 6일까지. 가족과 함께 2주를 보내는 그들의 연말연시는 특별하고 다채로운 향유의 연속이다.
화려함으로 가득하고, 연인과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꽉 찬 연말연시를 보내는 한국과는 다르게 어쩌면 스페 인의 길가는 고요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과 시간을 함께하는 스페인 문화의 메시지는 결코 작지만은 않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솔로와 커플의 개념에서 벗어나 가족의 정을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