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경 경찰대학 행정학과 교수
▲한민경 경찰대학 행정학과 교수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명백해 보임에도 법적으로는 피해자 사망에 대한 가해자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건이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사례 1] 2024년 1월 7일 새벽 부산의 한 오피스텔 9층에서 20대 여성 A가 추락해 숨졌다. A의 사망을 119에 신고한 것은 숨진 여성의 전 남자친구 B였다. 유족에 따르면, A는 2023년 8월부터 B의 지속적인 폭행 및 자살 종용, 협박, 스토킹, 주거침입, 퇴거불응, 재물손괴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례 2] 20대 여성 C가 전 남자친구 D에게 2024년 3월 31일 폭행을 당한 뒤 입원 치료를 받다가 2024년 4월 10일 숨졌다. C의 사인은 패혈증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제했던 C와 D는 3년여간 사귀는 동안 C의 폭력성으로 인해 다툼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경찰에 신고된 D의 폭행 건수는 11건에 달했으나 C는 1건을 제외한 10건의 폭행에 대해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였다. 

[사례 1]에서 B는 A가 사망하기 직전에도 A와 다투었으며, A가 추락한 현장에도 있었으나 협박, 스토킹 범죄 등 혐의가 확인되기까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 한편 [사례 2]에서 D는 C의 사망 후 긴급체포됐지만, 검찰은 C의 사인이 가해자의 폭행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긴급체포를 불승인했다. 

[사례 1]의 B와 [사례 2]의 D에게 각각 A와 C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리 법원은 경험칙상 원인과 결과 사이에 상당한 정도의 인과관계가 있어야 범죄의 기수가 인정된다는 상당인과관계설(Adäquanztheorie)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법원은 [사례 3]에서 “가해자의 범행이 피해자의 심경에 영향을 주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하였음은 비교적 명백”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범행과 사망 사이에 형법상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협박 및 스토킹 범죄에 대해서만 징역 3년을 선고하였다. 

[사례 3] E와 F는 약 2년 반 기간 교제하였던 연인 관계로, F는 2021년 11월 18일 오전경 서울 용산구 이촌동 소재 ‘동작대교’에서 스스로 한강에 뛰어들어 사망하였다. (중략) E는 반복적으로 F를 협박하거나 F로 하여금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스토킹 행위를 하였고,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F가 상당한 충격과 공포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F의 유족들이 E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이 사건 범행과 F의 사망 사이에 형법상 상당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으나(이 사건 공소사실도 이를 전제하고 있다), 이 사건 범행이 F의 심경에 영향을 주어 F의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하였음은 비교적 명백해 보인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24. 선고 2023고단1687 판결). 

이들 사례는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흉기를 준비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하거나 피해자 사망 당일에 피해자를 향해 물리적·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피해자 사망에 대한 가해자의 죄책을 묻기 쉽지 않은, 참혹한 법적 현실을 보여준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살해된 피해자가 몇 명인지에 대한 공식 범죄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지속적·반복적으로 협박과 스토킹을 일삼고 급기야는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에게 응당한 처벌이 내려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요원한 것일지도. 

저작권자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