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의 표지 (출처=교보문고.)
▲책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의 표지 (출처=교보문고.)

대부분의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때까지 '정해진' 삶을 살기 일쑤이다. 그 정해진 삶의 결말은 대학 진학이다. 먼저 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재수생이었던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학생은 자유로움을 얻은 동시에 책임감이 뒤따른다고. 책임감이 자유로움보다 거대하게 다가와서 무언가를 할 때마다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게 맞는 걸까?'라는 물음을 반복하다 보니 나아가기보다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재수가 끝나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친구의 말에 완전히 공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대했던 대학 생활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벽이 내게 다가오고 있던 것이다. 겪어보지 못한 벽 앞에서 서성이던 새내기에게 모지스 할머니는 "삶은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에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라고 말해줬다.

모지스 할머니는 1860년 뉴욕 주 그리니치에서 태어나 결혼하기 전까지 인근의 농장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낮에는 남편의 일을 돕고, 밤에는 자수를 놓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굳어서 자수를 할 수 없게 되자, 취미생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75세였다. 세상의 가치관에서 보면 너무 늦은 나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을 떠난 101세까지 약 1,600점의 다작을 남겼다. 

초기에는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3년이 지나 한 미술품 수집가가 우연히 약국 벽면에 걸려 있던 그녀의 그림을 발견해 그로부터 적극적인 후원과 도움을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미국의 국민 화가'로 불리고, <타임지>의 표지 모델이 되는 등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그림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그림은 아동의 이미지로 가득 찬 꿈의 공간과, 지나간 어린 시절을 다시 마주하는 현실의 공간이 공존한다. 그렇기에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은 밝은 색채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벅참이라는 감정을 유발한다. 모순적이고 양가성을 띠는 그녀의 그림은 마치 행복과 고난의 총합인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해주는 것 같다. 

▲모지스 할머니의 마지막 작품 '무지개' (사진제공=네이버.)
▲모지스 할머니의 마지막 작품 '무지개' (사진제공=네이버.)

이번 여름방학 때 소나기가 자주 내리면서 무지개를 본 적이 있다. 희망을 상징하는 무지개가 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아름다운 무지개는 '비'를 겪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지스 할머니의 생애 마지막 작품은 <무지개>이다. 그녀 또한 무지개를 보기 전, 폭우와도 같은 삶을 겪었다. 열 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그중 다섯 명을 유아기 때 먼저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마저 세상을 떠났고 십자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손이 굳어버렸다. 그렇지만 그녀는 항상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갔다. 조금 더 미술을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죠."

어느새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됐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학교생활이 원활하지 않지만,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 시간을 통해 나에게 무지개가 뜨기 전 내려야 할 크고 작은 '비'의 존재에 감사함을 느끼고 한층 더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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