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마녀라는 소문을 들었을 때 마녀가 정말로 사악한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대신 마녀가 얼마나 사악한가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리고 마녀의 악행을 듣고 나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목표물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이는 우리 현실도 마찬가지다.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소문과 같이 흥미롭고 단순한 이야기를 좋아하며 점차 사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뮤지컬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의 무리들을 괴롭힌 것으로 알려진 서쪽의 사악한 마녀 엘파바에 대한 이야기다. 엘파바는 피부색이 초록색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지만 동생을 정성껏 보살피며 마법사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평범한 학생이다. 하지만 오즈의 마법사는 자신이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들키자 엘파바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거짓된 소문들도 많은 사람이 믿으면 그게 진실인 것처럼 돼버린다. 오즈 주민들은 엘파바는 눈이 세 개나 달렸고 뱀처럼 피부 껍질을 벗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영혼이 악해서 물에 녹는다는 유언비어를 받아들인다. 일반적인 사람의 사고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이 주장이 진실이 돼버린 이유는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진위 여부를 파악하려는 사람은 없고 다수의 의견만을 따라가는 사람들만 존재한다. 일단 공격할 대상이 설정되면 한 사람을 비난하면서 하나로 단결한다. 잘못된 믿음이 사람과 사람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악의 존재를 완성시켰다.
하지만 초록 마녀는 절대악이 아닌 사람들이 지어낸 소문의 피해자일 뿐이다. 숨겨진 진실은 엘파바가 사자를 도와주었고 죽을 뻔한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선한 사람을 악한 사람으로 만들기는 정말 쉬웠다.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이 커져갈수록 소문 속 마녀와 주민들 중 누가 악한 사람인지 구분하기는 어려워졌다.
한때는 엘파바와 서로의 행복을 빌어줄 만큼 가까운 사이였던 글린다도 다수의 지배적인 의견을 따른다. 마음 속으로는 엘파바를 걱정한다고 하지만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이 진실이다. 글린다는 끝까지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을 정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엘파바의 부탁이 있긴 했지만 그 안에는 인기라는 그녀의 꿈에 대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엘파바는 사악한 마녀로 남으며 극이 마무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문으로 만들어진 거짓된 진실이 역사에 남게 됐다. 하지만 진정한 진실은 얼마나 많은사람들이 믿는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저 일어났던 일이다. 거짓으로 점철된 진실은 결코 진정한 진실이 될 수 없다. 오즈 주민들은 진실을 모르는 것으로 엔딩이 났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사건의 전말과 악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현실에서 오즈 주민이 되느냐 관객이 되느냐는 우리의 사고력에 달려있다.
이 이야기는 오즈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짜뉴스와 악플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떳떳할 수 있을까. 글린다를 그리고 오즈 주민들을 나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현실은 우리 주변엔 오즈 주민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들처럼 진실을 거부하고 대세를 따르지는 않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