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로 차박 이용객 증가
기본적 에티켓조차 지켜지지 않아
환경, 이웃 생각하는 차박 문화 정착돼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여행에 대한 갈증이 어느 때보다 극심해졌다. 하늘길이 막혀 해외여행은 불가능하다 보니 사람들은 국내 여행으로 눈을 돌렸다. 특히 야외에서 사회적 거리를 둘 수 있는 캠핑의 수요가 급증했다. 쇼핑 분야별 클릭 추이와 분야별 검색어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네이버 Data Lab’의 쇼핑인사이트에 따르면 올 7월부터 10월까지 캠핑 관련 용품(캠핑 의자, 타프, 캠핑 테이블, 캠핑 난로 등)이 스포츠/레저 분야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차박 : 차에서 숙박하다
최근 TV에서 채널마다 캠핑을 주제로 한 다양한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나는 차였어’, ‘바퀴 달린 집’, ‘갬성캠핑’ 등의 프로그램에서 활동에 제한이 걸린 오늘날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힐링의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며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앞에서 언급한 프로그램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자동차’를 이 용한 캠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소위 ‘차박(車泊 : 차에서 숙박하다)’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오토캠핑(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 중의 야영)이라는 개념이 더 익숙했지만, 최근 등장한 차박은 차에서 숙박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말 그대로 캠핑 을 할 때 차 내부를 침대처럼 꾸며 잠자리로 사용한다. 보통 뒷좌석을 접어 공간을 확보하지만 보다 편한 잠자리를 위해 차량 트렁크와 연결해 사용하는 도킹 텐트를 이용해 넓이를 확장하기도 한다. ‘SSG닷컴’은 매출 데이터 (6/1~7/27)를 분석한 결과 차박 시 필요한 도킹 텐트의 수 요가 664%, 에어매트 수요는 90%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 다. 더불어 지난 2월 개정된 자동차 관리법이 시행되며 승용차, 화물차, 특수 차량도 캠핑카로 개조가 가능해졌다.
왜 지금 차박인가
차박 열풍은 코로나19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어려워졌고 국내에서도 다중이용시설 이용 시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 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실행됨에 따라 다른 이들과의 접촉 없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차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네이버 Data Lab’의 검색어 트렌드 통계에 따르면 차박 관련 검색 횟수가 올 8~9월에 작년 대비 약 5.8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율성과 실용성이 최대로 보장된 여행이라는 점 도 차박의 유행에 일조했다. 친구와 함께 차박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송광재(가명) 씨는 “별도의 호텔 예약이나 체크인 없이 내가 가고 싶었던 관광지 가까이 머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이동성과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전했다. 또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적엔 설치 및 철거하는 시간이 상당했는데 차박은 그 과정이 없다”고 말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을 가는 이들 역시 차박을 많이 이용한다. 기존에 부담해야 했던 반려동물 동반 비용 혹은 동물병원이나 애견호텔에 반려동물을 위탁할 때 발생 하는 비용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야영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차박만의 매력이다. 냉난방 시설이 갖춰져 있는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폭염과 한파에도 적정 온도를 유지하며 휴식을 즐 길 수 있다.
열풍 뒤에 가려진 실상
한편 차박의 유행에 가려진 실상이 수면 위로 드러나 고 있다. 힐링을 위해 떠난 캠핑이지만 불법 주차, 불법 취사, 쓰레기 불법 투기 등의 범법행위를 저지르며 누군가 에게 피해를 주고 돌아온다. 우선 차박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까닭으로 차박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부재가 문제가 된다. 흔히 ‘차만 있다면 그곳이 캠핑장’이라는 것이 차박의 장점이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현행 자연공원법과 하천법에 따라 자연공원이나 하천 내 지정되지 않은 곳에서 야영 및 취사 행위를 할 시에 50만 원 이 하의 과태료 또는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뿐 아니라 해안가나 해안도로 내 법으로 지정된 장소 외에서의 차박과 낚시 행위도 금지된다. 불을 이용하는 취사의 경우는 화재로 이어질 수 있어 제재가 더욱 엄격 하다. 해수욕장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7조 제3항 에 따르면 해수욕장 내 불을 피우는 행위나 취사에 대해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하며 산림법은 인화 물질을 소지하는 것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본적인 도덕과 에티켓의 문제도 심각한 상태다. 소위 차박 명소라고 일컬어지는 강릉 안반데기 마을로 사람들이 몰리며 주민들은 골치를 앓고 있다. 안반데기 마을 관 계자는 “차박하는 사람들이 하도 몰려 농지 피해가 상당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분리수거장을 설치했더니 몇몇 관광객들이 차에 있던 쓰레기를 모두 버리고 가서 쓰레기통 주변이 매우 지저분하다”며 쓰레기 처리 문제가 심각한 상태임을 밝혔다. 아울러 “라면을 끓여 먹고 화장실에 무단으로 버리니 기름이 지고 변기도 막힌다”며 배려 없는 관광객들에게 속상함을 표했다. 안반데기 마을은 해결책으로 주차장을 마련했으나 주차를 하고 텐트를 설치 하느라 한 차량이 두세 라인을 차지하는 탓에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아무리 제재해도 사람들은 지 키지 않고 시에서는 따로 보조해주지 않아 피해와 처리는 온전히 주민들의 몫이 되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휴게소에서도 문제가 잇따르고 있다. 대관령 휴게소 관리자는 한 달 동안 주차하는 사람들, 자차를 갖다 놓고 주말마다 놀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다. 대관령 휴게소 역시 불법 주차, 불법 취사를 금지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부족한 시민의식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모두가 즐거운 차박을 하려면
어떻게 하면 모두가 즐거운 차박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차박 후 깔끔한 뒷정리는 필수다. 쓰레기를 담을 봉지를 미리 준비해 차박 후 발생한 쓰레기를 담아 집으로 돌아 오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미처 쓰레기 봉지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방문한 장소에서 종량제 봉투를 구매해 쓰레기를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자신이 선택한 장소가 야영과 취사가 가능한 곳인지를 사전에 알고 가는 것도 중요하다. 차박이 금지된 대표적인 장소들은 국립공원, 시도립공원을 포함한 사 유지, 해안 방파제 등의 장소이다. 이외에도 해수욕장과 하천에서 차박을 계획하는 경우에는 미리 시군구청 사이트에 방문해 차박이 가능한지를 알아봐야 한다. 또한 차박을 하는 사람들이 지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차박 관련 시설의 추가적인 확충이 필요하다. 캠핑문화진흥원 관계자는 “초기 캠핑 역시 강변, 노지에서 행해졌으나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캠핑 시설과 야영장이 늘어났다”며 “현재 차박은 초기 단계지만 앞으로 성숙한 차박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차박 관련 시설의 추가 확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누군가 질서를 흩트려 놓으면 한없이 무질서해지는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남에게는 최악의 차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모두가 즐거운 차박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