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현실을 상상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상상을 현실이라 믿고 살기도 한다'

김영하 작가의 「호출」 中

▲사진제공=교보문고.
▲사진제공=교보문고.

 

김현의 「한국문학의 위상/문학사회학」에 따르면 ‘문학 텍스트는 주관적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며, 문학적 형식은 허구적 형식’이다. 수없이 바뀌어 온 문학의 정의에서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는 ‘허구’라는 단어는 아마 고금의 문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특성일 것이다. 허구의 형식에 담긴 서술자의 이야기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돼 감동으로 포괄되는 독자들의 주관적 반응을 촉발시킨다. 서술자 혹은 작가의 상상은 그 자체로 문학의 소재이며 그 굉장히 개인적인 서사가 독자의 감정을 일으킬 때, 그것을 문학이라고 한다.

김영하의 「호출」은 서술자의 상상으로 서사가 전개되는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이다. 서사는 충무로역에서 한 여성을 발견한 서술자가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면서 시작한다. ‘진동으로 맞추어져 있습니다. 반드시 몸에 지녀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호출기를 건네며 진행되는 이 서사는 어디서부터 서술자의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서술자가 직접 경험한 현실인지 쉽게 분간할 수 없다. ‘나는 가끔 현실을 상상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상상을 현실이라 믿고 살기도 한다.’는 서술자의 독백은 독자들의 판단을 흐린다. 「호출」은 상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서사에 대한 독자들의 혼란을 막바지에 해소해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이는 문학의 특성을 정확히 드러낸다.

서술자는 자신이 만든 세계 속을 바라본다. 그것이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그는 분간할 수 없다. 물론 서술자의 1인칭 서술을 듣는 독자들 또한 서술자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알아차릴 수조차 없다. 어디서부터가 상상인지, 어디까지가 현실이었는지 재단할 수도 없는 모호한 서술 탓에 독자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서술자가 역사 안에서 마주친 여성은 누구였을까, 실제로 그녀를 마주치기는 한 것일까, 그가 상상이라고 믿었던 것들도 사실은 현실이 아니었을까. 아니, 현실은 무엇이고 상상은 무엇이었나. ‘나는 가끔 현실을 상상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상상을 현실이라 믿고 살기도 한다.’ 모두 그의 상상에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그의 혼동이 여지껏 문제가 된 일이 없었다는 말도 사실은 모두 그가 꾸며낸 이야기인 것이 아닐까. 다시, 어디서부터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호출」을 비롯한 문학은 상상의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자신이 만든 세계를 헤엄칠 권리는 자신에게 있기에 상상은 자유롭다. 그 자체로 허구인 상상, 그 상상을 필두로 전개한 서사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모종의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이 호기심이든, 충격이든.

문학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의 자유를 평생 즐길 수 있는 것과 같다. 문학이 배고픈 학문이라 천대받는 이 풍토 속에 놓인 한 사람으로서, 메말라가는 상상의 은하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한 방울의 눈물을 은하수에 더하면서, 상상의 바다가 다시 세상에 파도치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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