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姓同本(동성동본) 不婚(불혼)’이라는 말이 있다. 잊을만 하면 간간히 新聞紙上(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이 금기는 族外婚(족외혼)의 유습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現代(현대)에 와서는 아무 의미없는 관습의 일부로 퇴색해 버리고 있다. 다만 이 금기사항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끈끈한 혈연의식 뿐일 것이다. 흔히 우리 민족은 스스로 백의민족이라 일컬으며 덧붙여 檀君(단군)의 피를 이어받은 단일민족임을 자긍하고 있다. 三國時代(삼국시대) 이래로 거듭되는 외침과 환난 속에 맥을 이어온 民族的(민족적) 저력은 결국 한겨레라는 확고한 혈연의식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歷史(역사)와 傳統文化(전통문화)를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이러한 굳건한 혈연의식의 산물이 아닌 것이 없다. 단일민족이기에 외침에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으며, 文化(문화)의 독자성을 유지, 타 문화의 유입에도 개념치 않고 동화되지 않았던 슬기를 지녀왔던 것이다. 그러나 혈연 중심의 文化(문화)가 지니는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구조면이라든가 사회계층, 文化(문화)양식, 다방면에 걸쳐 이러한 약점은 쉽게 추출해 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정치에 깊숙이 개입된 혈연의식이 야기한 당파싸움이었으며 국가나 사회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공공이념의 발현보다는 가족중심, 문중중심의 편협되고 소극적인의식의 팽배라 하겠다. ▲고려 5백년의 비술인 청자의 제조법이 현대에까지 이어내려오지 못한 이유도 이에 근거한다. 대대로 자기 가문의 비술로만 전해 내려왔던 것이기에 단절의 위험은 그만큼 컸던 것이고 사실상 지금에는 아주 소멸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록 전통문화 재창조라는 움직임에 힘입어 다소의 발전이 있어온 것은 사실이나 청자 고유의 빛깔에는 다소 근접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대인 이조시대 정치사의 배경에는 항상 혈연을 우선으로 하는 정치의식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근대국가형성의 시기가 늦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세도정치라 불리우는 철종朝(조)의 파평 윤씨의 족벌정치는 이러한 대표적 예다. 지금도 그러한 혈연의식이 깊게 배어있어 ‘족벌체제 학원운영’으로 말썽을 일으킨 사건도 발생하는 것이다. ▲가까운 이웃인 일본의 근대사를 엿보면 그들이 패전후의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게 된 이면에는 사회와 국가를 우선으로 하고 개인의 이익과 욕망은 억제한 국민의식이 원동력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많은 시사를 던져준다. 과도한 혈연의식은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성향을 사회에 만연시키기 마련이고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팽배시킬 수 있다.발전과 번영을 위해서는 이러한 소극적이며 편협된 사고나 국민성은 버려야 할 유산이지만 혈연의식이 지니는 강한 유대는 民族(민족)의 순수한 전통과 슬기를 결집해 나갈 수 있는 모토라 할 수 있기에 후대를 사는 우리들이 융통성있게 재구성해야할 ‘버리지 못할 유산’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기자명 동대신문
- 입력 2014.05.20 16: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