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연구실 풍경도 바뀌었다. 누군가는 실험대 위에 시약을 올리고, 누군가는 컴퓨터 앞에서 대화를 나눈다. AI는 더 이상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일상이자 기본 도구다. AI는 편리하다. 하지만 아무리 편해도, ‘모르는 채로 쓰는 AI’는 무기가 아니라 오히려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냥 써먹는 걸 넘어서, 어떻게 알고, 어디까지 믿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지금 대학원에서 AI를 접하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다. AI 문장은 티가 난다. 그래서 위험하다. 무비판적으로 “오 좋네!” 하고 복붙 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네
우연한 발견, 건축을 향한 철학적 질문 얼마 전, 질 들뢰즈의 철학 이론에 대한 글을 읽다가, 그의 사상 중 특히 ‘파라노이아(Paranoia)’와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트리(Tree)’와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들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건축의 모습에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단단하고 견고하며 예측 가능한 ‘나무’ 같은 세상을 추구하는 ‘파라노이아’적 경향, 그리고 중심 없이 유동적으로 뻗어 나가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땅속줄기’ 같은 ‘리좀’을 닮은
학부 시절, ‘시창작 입문’이라는 전공필수 과목은 내게 유난히 버겁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겐 자유로운 상상의 놀이터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시창작은 언어의 감옥 같았다. 단어 하나를 고르고, 한 행을 만들어내기까지 수없이 머뭇거려야 했고, 그 결과물 앞에서 매번 자신 없음을 확인해야 했다. 오죽하면 10줄짜리 시를 쓰는 것보다 1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 창작’을 타고난 언어 감각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부생에서 대학원생으로 신분이 바뀌는 몇 년 안 되는 시
오픈AI 챗GPT의 새로운 기능, 이미지 생성으로 촉발된 ‘지브리 밈’의 열기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챗GPT의 4o 버전에 사진을 업로드한 후, 지브리 풍으로 그려달라는 말만 하면 지브리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이미지가 뚝딱 만들어진다. 디즈니나 심슨 가족 등 여러 인기 애니메이션 스타일도 등장했다. 다양한 화풍 중에서도 단연 인기를 끈 것은 지브리다. 지브리풍 밈에 뒤따르는 불편한 시선들 챗GPT가 만든 지브리 풍의 이미지가 폭발적으로 퍼지자, 이를 마냥 반기지만은 않는 팬과 창작자들의 불편한 시선도 나타났다. ‘유행이라고
배리어프리(barrier-free)란 장애인 및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 생활에 지장을 주는 물리적, 심리적 장벽을 없애자는 운동 및 정책이다. 즉 장벽을 제거해 모두를 자유롭게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배리어프리는 건물의 진입 경사로다. 경사로의 유무로 누군가에겐 해당 건물이 입구부터 막히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영상 문화 역시 우리가 매일같이 소비하고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생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동안 배리어프리와 관련한 논의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논문 「‘더 많은’
12·3 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일제히 촉구했던 대학가에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우리대학 역시 당초 교내 곳곳 탄핵에 찬성하는 대자보가 붙었으나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탄핵을 주제로 찬반 논쟁이 끊임없이 잇따랐다. 특히 탄핵 찬반 집회가 광화문, 여의도 거리에서 캠퍼스까지 번지면서 대학가도 개강 초부터 탄핵을 두고 양분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학 내부 구성원이 아닌 외부인이 가세한 집회를 두고 그동안의 ‘금기’로 여겨진 캠퍼스 내 경찰 투입이 검토되면서 학계에서는 ‘집회 자유 침해 우려’라는 의견
“당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어떤 엄마였는지 내가 다 까발리면 당신 괜찮겠어?” 불륜으로 이혼 소장을 받은 남자가 말했다. 동네 병원 의사인 남자와 달리 상대는 매스컴에도 알려진 유명한 이혼 전문변호사다. 지라시만으로도 질책 받는 스타변호사 차은경(장나라)은 남편 김지상과 비서 최사라의 불륜을 알고도 침묵했다. 소원해진지 오래인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도, 자신의 유명세 때문도 아니다. 은경을 배신한 두 사람이 “10년째 내 일 처리하는 손에 맞는 비서”와 “13년째 내 아이 케어하는 애 아빠”이기 때문.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은경의
30초짜리 영상을 보다 보면 어느덧 1시간이 지나가 있다. Short폼이지만 영상을 소비하는 시간이 short하지는 않다. 우리가 숏폼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를 시간의 경제성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박미영의 논문은 숏폼의 등장으로 서사 경험 방식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 우선 우리가 숏폼 콘텐츠를 만나는 매체인 디지털 모바일 스크린을 다룬 후, 롱폼에서 숏폼으로 변환된 콘텐츠를 통해 우리가 이전과는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서사 경험을 하는지 비교한다. 이러한 서사 경험방식의 변화는 우리를 둘러싼 디지털 시대 자본주의의
MZ세대는 왜 불교를 찾는가? 문제 제기의 시작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뮷즈(뮤지엄 굿즈) ‘반가사유상’이었다. 2020년 10월 출시되자마자 완판을 기록한 반가사유상(83호) 피규어는 각양각색의 파스텔톤 컬러가 입혀지며 의외의 힙(hip)함에 MZ세대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특히, 세계적인 K-POP가수 BTS(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사유의 방’을 관람한 후 구매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SNS 입소문을 타면서 MZ세대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MBC 예능 ‘나 혼자
‘MZ세대’에 대한 인식과 그 개념의 공(空)함 MZ세대가 괜스레 어렵고 힘든 일은 피하고, 연애 및 결혼을 기피함으로써 출산율을 낮추고 있으며, 여러 갈등을 야기하는 개인주의로 살아간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롭고 호시절인 지금을 사는 게 MZ세대이기에 그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근거다. 이는 분명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어떠한 조건하에서 틀린 말이 아니게 되는지 성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말은 다 특정한 현상을 개념화하고 실체화하여 마치 그것이 진정 있는 것처럼 가정하고 전제하여 쌓아 올리
인공지능은 더이상 예술에서 소재로만 쓰이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영화를 만들고, 소설을 쓰며, 음악을 작곡한다. 예술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뺏긴 우리는 21세기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심혜련의 논문 「인공지능 예술의 수용문제」는 인공지능을 대하는이러한 적대시 태도가 과연 바람직한지 반론을 제기한다. 인간에게 기술은 ‘제2의 자연’이 되었다. 기술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공기와도 같다. 우리의 지각 체험을 생각해보자. 기술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지각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최근 대전광역시가 대전여성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영화 를 상영작에서 제외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큰 논란을 낳았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개막 직전에 시가 직접 개입해 가면서까지 영화제 검열에 나서게 되었을까. 대전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고 대전시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전여성영화제는 성평등 주간을 맞이하여 개최되는 행사로, 올해 4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도 9월 5일부터 7일까지 10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었다. 그중 대전시가 상영 철회를 요구한 영화가 바로 다. 해당 상영작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1223년 고려의 죽주(竹州, 현재의 경기도 안성)에 있는 대혜원(大惠院)에서는 현감(賢堪) 스님과 대혜원의 원주(院主) 지성(智成), 남일월사(南日月寺)의 스님들과 전 상호장(上戶長)과 은퇴한 호장(戶長)들이 후원하여 범종을 만들었다.(도 1) 이들은 국왕의 만수무강과 국토의 태평과 법계(法界)의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모두 보리(菩提)를 득하기를 기원하며 범종을 만들었다. 1250년에 청주 백운사에는 사찰의 공양 시간을 알릴 때 사용하는 반자 1구가 봉안되었는데, 이 반자는 안일(安逸) 호장과 정위(正位) 한연유(韓衍愈)가 돌아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초기 한성부(漢城府)에는 흥덕사, 내불당, 원각사 등 많은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사찰에는 당연히 불화가 봉안됐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태조가 창건한 흥덕사 정전에 공민왕이 그린 가 걸려있었다는 기록을 제외하고는 조선초기 한성 소재 사찰의 불화 상황을 전하는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문헌에는 조선초기 불화 제작을 알려주는 기록이 있고, 이 시기에 제작된 불화 여러 점이 현전한다. 조선초기라면 억불숭유로 불교미술이 쇠퇴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현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이 여성들의 ‘읽고 쓰고 말하기’의 폭발적 수행으로 가시화되는 가운데, 여성·소수자의 시각과 경험을 전면화한 문학작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문학 역시 대전환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른바 ‘여성서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기서 ‘여성서사’와 ‘노동’이라는 키워드를 나란히 놓아본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까. 2010년대에 들어 저임금, 불안정 노동, 해고, 성적 대상화, 성추행, ‘갑질’ 등 여성의 노동문제를 주요한 소재나 설정으로 삼는 소설들이
4월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모든 선거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부각된 민주주의 공고화, 경제발전, 경제민주화 등 특정 핵심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민의 대표 선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 역시 몇 가지 핵심의제를 지니고 있다. 저성장 및 저출산 해결, 미중 패권 경쟁 속 대한민국 안보 확보 등이 주요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 총선이 지닌 여러 의제 중 이 글은 사회갈등 완화 및 혐오정치 청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올해만 정치인 피습사건이 두 차례 발생됐는데, 이는 사회갈등 및 혐오정치 심화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등록하는 제도다. 한자로 보면 호주(戶主)는 한 가족의 주인이다. 호주는 남성만이 승계할 수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로 호주는 승계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고, 1살 아들이 있다면, 1살 아들이 호주가 된다. 할머니, 어머니, 누나 등은 모두 1살 호주 아래에 등록된다. 호주제는 이렇게 남성 가부장 문화의 실체이자 상징인 제도다. 2005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호주제 폐지안이 통과되었다. 19년이 흘렀다. 호주제 없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대학생이 될 만큼 시간이 흘렀
경주와 포항의 접경지대에 있는 형산 정상에는 왕룡사원(現 기원정사)이라는 사찰이 있다. 왕룡사원은 1900년경 경주 백률사에 주석했던 성전(聖典) 스님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주불전인 무량수전에는 성전스님이 1920년경 포항 포교당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전하는 불상 네 구가 봉안돼 있다. 이곳에 봉안된 불상은 1466년작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579년작 소조석가불상과 아미타불상, 그리고 조선후기작으로 추정하는 석조보살상인데, 이 중 세 구가 확실한 편년을 가지고 있는 조선 전반기 불상이어서 한국조각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예로
미중 전략경쟁의 본격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이스라엘-하마스전쟁 발발, 가치사슬과 공급망의 교란,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고도화, 인플레이션과 금융 위기 등 지금은 이른바 복합위기의 시대이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2개의 전쟁은 진영충돌, 종교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중전략 경쟁의 본격화와 진행중인 2개의 전쟁 등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높은 곳이 대만해협과 한반도이다.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
사역(寺域)에 들어서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에 이르는 길을 떠올려 보자. 경내로 들어서는 도중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과 같은 여러 개의 문을 지나칠 것이다. 그 중 천왕문을 지날때는 험악한 인상을 자랑하는 거대한 조각 네 구를 만나게 되는데, 잔뜩 치켜올린 숯검댕이 눈썹 아래 부릅뜬 눈, 용 비늘 같이 탄탄한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 발 아래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생령(生靈)을 복속시킨 무장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들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불교의 호법신 ‘사천왕’으로, 사천왕은 고대부터 탑이나 건물 등에 부조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