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이 여성들의 ‘읽고 쓰고 말하기’의 폭발적 수행으로 가시화되는 가운데, 여성·소수자의 시각과 경험을 전면화한 문학작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문학 역시 대전환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른바 ‘여성서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기서 ‘여성서사’와 ‘노동’이라는 키워드를 나란히 놓아본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까.
2010년대에 들어 저임금, 불안정 노동, 해고, 성적 대상화, 성추행, ‘갑질’ 등 여성의 노동문제를 주요한 소재나 설정으로 삼는 소설들이 점차 늘어나다가, 2016년 #○○계_내_성폭력 고발에서 2018년 미투 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성폭력 문제를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침해’의 문제로 제시하는 소설이 연이어 출간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한국의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와 김지은 씨의 성폭력 고발이 모두 ‘직장 내 성폭력’에 관한 것이었음을 떠올린 독자도 있을 것이다.
조남주 작가의 『그녀 이름은』(2018)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인터뷰한 르포 기사를 소설로 재구성한 것으로, 공기업 직원, 방송 작가, 아나운서, 급식 조리사, 청소 노동자 등이 등장하여 일터에서 경험하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드러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회 초년생 여성은 커피를 타고 잡심부름을 하는 ‘막내’의 역할을 담당하며 ‘열정페이’를 강요당한다. 여자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남자 직원이 오자 점잖아지는 고객을 만난 일을 주변에 토로해도, ‘왜 이렇게 예민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육아휴직이라도 쓰려고 하면 ‘이래서 여자를 뽑을 수 있겠냐’라는 소리가 돌아온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 그리고 대학원에서 만난 동료 여성 연구자들과 서로 한 번쯤은 털어놓았을 법한 일이 아니었던가?
한편 이정연의 『천장이 높은 식당』(2020)은 ‘경력 단절 여성’ 채용 프로젝트를 통해 회사 식당의 영양사로 일하게 된 주인공이, 이 회사에서 성추행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으며 자신이 채용된 자리가 피해자가 떠나 생긴 일자리였음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과거의 피해자로부터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은 후, 또 다른 피해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그녀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경단녀’라는 의식, 파견직이라는 불안정성, 가정에서의 돌봄 공백은 그녀가 사건을 무마하려는 회사의 협박과 회유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적 조건들이다.
그러나 소설 속 여성 노동자들은 침묵하거나 사태를 외면하지 않는다. 육아휴직 1호가 되어 2호, 3호, 4호가 나올 수 있도록 다짐하고, 미래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가해자·회사와 맞서 싸운다. 『천장이 높은 식당』의 그녀 역시 피해자와 연대하여 성폭력 사실을 공론화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듯 소설의 구조는 마치 현실의 미투 운동과 닮아있다.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여성-노동서사는 성폭력이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불안정 노동이라는 취약한 상황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노동문제임을 폭로하면서, ‘일자리’ 너머의 세상을 위해 과거-현재-미래의 동료와 함께 분투하는 여성 노동자의 삶을 재현하고 있다. 이제 서사 속 목소리와 현실의 목소리가 공명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 속에서 ‘나’와 친구들, 동료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