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을 중심으로 도시개발이 활발하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송화거리, 화성지구 등, 가히 평양 곳곳에 굵직한 건설 붐이 지속되고 있다. 뉴욕 중심부인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에 빗대어 평양에 건설된 초고층 건물들이 만들어 내는 스카이라인을 두고 해외언론은 ‘평해튼’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도 김정은의 도시건설이 선대와 확연히 차별화되었음을 주목했다.
집권 초기부터 도시개발이 활발한 것은 새로운 정치지도자가 쥐게 된 막대한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도시건설로부터 일부 확보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통치 이념인 인민대중제일주의의 구체적 예로 평양 도심 한복판에 신축된 아파트에 부유하지 않은 평범한 주민들도 거주하는 것을 적극 선전한 점은 통치와 건설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 건설은 온전히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의도만으로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도시에서 아파트 건설에 국가의 정책과 제도뿐만 아니라 자본과 노동력이 필요하듯이, 사회주의 도시에서도 자본, 노동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동력은 막대한 인건비로 지출되지만, 북한에서 건설 노동은 ‘공짜나 다름없는’ 군인이 상당수 투입되고 청년의 자발적 참여(이를 ‘탄원’이라고 부른다)를 통하여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본은 필요하다.
시멘트, 모래, 철근을 사려면 돈이 필요한 것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배급제가 붕괴하고, 장마당을 중심으로 시장경제가 형성되면서 신흥자본가인 ‘돈주’가 출현했다. 아파트 건설에도 돈주의 역할이 중요한데, 돈주는 아파트 건설에 필요한 자본을 제공하고 건설 이후에 상당한 이윤을 얻는다. 국내 대형 건설회사들이 이익을 얻는 방식과 유사하다.
북한의 아파트 건설 붐은 국내 학계도 주목하면서 북한도시연구가 촉발되었다. 기존 연구들은 앞서 살핀 최고지도자의 통치 목적, 돈주의 수익 창출처럼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보다는 아파트 ‘외부’의 행위자들에 초점을 두었다. 독재국가이자 공식적으로 계획경제를 추구하는 북한의 체제적 특성상, 이러한 외부 행위자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는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국가의 주택정책, 건설회사의 이윤 획득을 생각하기보다는 “그곳에 살고 싶다!”는 개인 차원의 욕망을 투영한다. 북한도시연구도 북한 주민의 욕망까지 살피는 시도가 필요하다.
최근 필자는 비교 도시론(comparative urbanism)이라는 해외의 도시 연구 논의를 북한 도시에 적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흔히 북한 도시를 연구하면서 북한과 유사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도시와 비교하는데, 비교도시론은 그러한 이념적 유사성을 넘어서는 ‘도발적’ 비교를 장려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보통 북한 매체는 “자본주의 도시들과는 달리”라는 표현을 쓰면서 사회주의 도시의 우월성을 드러내려 한다는 점에서 남북한 유사성을 찾으려는 필자의 시도를 북한 당국은 탐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교도시론의 측면에서 북한 도시는 남한 도시와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의 연구 주제를 간단히 소개하면, 먼저 ‘평양의 강남’이 어디인지를 규명한 연구가 있다. 강남은 서울 아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자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배타적인 특성을 지닌다. ‘대치동’, ‘강남 8학군’은 단순히 지역명이 아니라 상위계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사다리를 확보할 수 있는, 즉, 경제 자본 획득에 필요한 교육자본의 공간이다. 이처럼 강북, 강남의 공간적 차이를 인지한 필자는 평양의 강남은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디일지 호기심이 생겼고, 연구를 통해 최근 평양 상공 무인기 출현으로 알려진 중구역이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평양의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되고, 북한 주민들이 살고 싶은 평양의 강남임을 밝혔다.
다른 연구 주제는 서울의 대표 자연인 한강을 거주 공간에서 볼 수 있는 ‘한강뷰’가 상위계층에게 접근성이 있는 것과 유사하게 평양을 관통하는 대동강 일대 거주 단지에서 ‘대동강뷰’가 형성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한강뷰 용어가 한국 사회에 확산하였다. 만약 한강뷰와 유사하게 대동강뷰를 누리고 싶은 욕망을 평양 시민도 갖고 있다면 이념적 경계는 흐려지고, 욕망의 유사성을 확인하는 비교연구가 가능하다.
북한 당국은 올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면서 한국은 자신과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황당한 주장을 펴고 있다. 필자는 평양의 강남이나 대동강뷰가 존재한다는 ‘유쾌하지 않은’ 유사성을 통해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념의 경계를 넘어선 북한도시연구가 더 활발해질 것을 고대하며, 독자들도 한국 사회에서 익숙한 무엇을 낯선 북한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