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전자두뇌, 60개 국어를 말할 수 있는 인공성대, 눈물이 나오는 서치라이트 포함 눈, 10만 마력의 원자력 모터, 최대 마하 5의 속도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제트 엔진, 신장 135cm, 체중 30kg의 로봇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는 1963년에 발표된 일본 만화영화 속 아톰(Atom)이라는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의 스펙이다. 60개 국어를 번역해주는 인공지능과 같은 능력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에게는 그리 놀랍지 않은 능력일 수 있다. 게다가 최신의 고성능 자동차가 2000마력 수준을 보여주고 있고, 최신의 스텔스 전투기가 마하 6 수준의 속도를 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현재 기술로 아톰과 같은 로봇을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아톰을 만들려고 도전할 경우 아마도 가장 어려운 점은 이러한 모든 기능을 담고도 그 무게를 30kg 이하로 만들어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해 얘기하자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휴보(Hubo)라는 로봇이 보다 익숙할 수도 있다. 휴보는 2000년대 중반 KAIST에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로봇(KAIST Humanoid Robot, KHR-3)인데, 실제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아시모(Asimo)에 비해 약 5년 정도 늦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휴보가 걷기 시작할 때 아시모는 뛰기 시작했고, 휴보가 뛰기 시작할 때 아시모는 보다 다양한 동작들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 격차에도 불구하고 2015년 미국 DARPA 그랜드 챌린지(재난대응 로봇대회)에서 휴보가 1등을 차지한 것은 한국 로봇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판단된다.
여기서 한 가지 되짚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왜 일본 연구자들은 아시모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대부분의 다른 연구들과 달리 아시모 프로젝트는 특히 많은 난항을 겪었다. 그 이유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지더라도 이를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의 답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시모 프로젝트가 시작된 1980년대에는 공장 환경 내에서 사용자와의 상호작용 없이 로봇 단독으로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산업용 로봇들이 다수 도입되어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키는 역할을 해 왔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새로운 로봇을 만들 때에는 기본적으로 로봇이 해야 될 미션 즉 작업을 먼저 정의한 뒤 해당 작업에 최적화되도록 기구부 및 제어부를 설계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빨리 달리기, 높이 뛰기, 들어올리기 등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대부분의 작업에서는 인간의 신체구조가 해당 작업을 수행하기에 최적화된 형태는 아니다. 빨리 달리기의 경우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치타, 높이 뛰기의 경우 자기 몸무게의 400배나 되는 힘으로 높이 뛸 수 있는 거품벌레, 들어올리기의 경우 자기 몸무게의 1,000배 이상을 들어올리는 쇠똥구리의 신체 구조와 움직임을 모방하는 시도가 오히려 바람직한 전략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의 아시모가 발표된 이후에도 세계 많은 로봇 공학자들은 두 발로 걸어다니는 이러한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가 어디에서 활용될 수 있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해당 시기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아시모 프로젝트 관련 연구에 참여 중인 연구팀에게 “왜 일본 로봇 공학자들은 아시모와 같은, 효용성이 명확하지 않은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가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직접 해보았더니, 돌아온 말은 그 당시 일본 로봇 공학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아톰이라는 만화에 매료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아톰과 같은 로봇을 실제로 만들어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주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인간과 로봇의 공존이라는 미래 이슈가 대두되면서 왜 휴머노이드 로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연구자는 더 이상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두 발로 걸어다니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다른 특정 작업에 특화된 로봇에 비해 효용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 휴머노이드 로봇의 미래는 어떠할까?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는 손재주 좋은 사람 또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학술 용어이다.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휴머노이드 로봇이 그 효용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시점은 자유자재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로봇 즉 로보 하빌리스가 출현하는 시점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딥러닝 등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ChatGPT가 상용화되고 보편화된 것처럼, 로봇공학에서도 로봇이 측정한 다양한 센싱 결과로부터 최적화된 로봇의 액션을 직접 학습함으로써 인간처럼 처음 접하는 기본적인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는 로봇에 대한 연구들이 시작된 바 있다. 이러한 연구가 결실을 맺어 로보 하빌리스가 출현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