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에서 현지인으로 살아남기
유난히도 뜨겁고 습했던 올여름, 더위를 피해 보홀로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보다 더 습하고 더웠지만.
리조트에 짐을 내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간 나를 처음으로 반긴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여유롭게 선베드에 누워 태닝 을 하며 여유를 즐기는 커플의 모습? 아니었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원달라!” 를 외치며 조악한 가짜 진주목걸이를 파는 어린아이 바로 옆 부모의 손을 잡고 망고주스를 먹으며 배에 튜브를 끼고 물놀이를 가는 관광객 아이. 그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 두 겹으로 포개져 그 뒤로 펼쳐진 파도 속으로 날아가 부서졌다.진주를 사게 되면 온동네의 아이들이 따라와서피리 부는 사나이가 될 것이니 절대로 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난 진주 목걸이를 사지 않았고 혹여나 나의 눈길이 진주를 파는 어린아이에게 돈을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또는 같잖은 연민이나 동정으로 느껴질까 애써 못 본 척 했으나 입안엔 쓴맛이 감돌았다.
한때 한국에서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 소위 말하는 핫플들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오랜 시간 그곳에서 장사를 해온 상인들이나 토박이 주민들이 쫓기다시피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됐다. 보홀 역시 관광지인 팡라오섬과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본섬이 강 하나를 두고 뚜렷하게 경계를 그리고 있다. 팡라오섬도 유명 관광지가 되기 전까지는 필리핀의 여느 소도시와 똑같이 현지인이 살기에 무리 없는 수준의 물가였다고 한다. 관광객이 점점 몰리자 현지인들은 뒤로, 좀 더 뒤로, 강 건너서 저 멀리 본섬까지 밀리게 됐다. 내가 진주를 사지 않자 실망한 표정을 짓는 아이와 망고주스를 먹으며 신난 표정으로 물놀이를 하러가는 아이. 한 아이에게 보홀은 생계를 위한 터전일 테고 다른 한 아이에게는 휴가를 위한 소비의 장소 내지 놀이터일 것이다.
관광 젠트리피케이션은 소비 중심의 관광지 내에서 각종 엔터테인먼트 시설, 관광지 등으로 다른 지역으로부터 비교적 부유한 중산층 유입을 촉발하여 레크리에이션, 레저, 숙박의 기능이 전통적 주거와 상업 기능을 대체하여 기존 주민들이 축출되는 과정이다. (Mendes, 2016) 관광학계 연구자들은 그동안 연구의 일환으로 관광이 망가뜨린 자연환경, 거주환경 등 물리적 환경에 대해 관심 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과 공동체들이 관광으로 인한 피해를 받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대부분 관광객들의 윤리의식에 기대어왔다. 관광 수익이 지역 사회로 고르게 분배되도록 하고 지역 주민들이 관광 산업의 주요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지만 당장 보홀만 봐도 거대 자본을 가진 외국계 리조트 기업이 어마어마한 수익을 가져가는 반면 1달라를 외치는 소년의 수입은 형편없다.
리조트를 지키는 가드에게 “보홀이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서 좋으시겠어요?” 라고 철없이 말하던 나에게 ‘축출’이라는 단어가 돌덩이처럼 굴러와 박힌다. 한국에서 보홀로 들어오는 직항 비행기가 다음 달부터 대거 증편될 것이라며, 더 많은 관광객의 유입이 보홀 경제에도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하는 가이드의 말에 현지인이 이 현상을 마냥 반길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물론 관광객이나 관광산업 종사자들의 이런 시선에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보홀 관광산업의 긍정적 가치를 제고하여 지속 가능한 관광이 이루어지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이들일 것이다. 다만 여행을 떠나는 모든 이들이 ‘내가 이 관광지에 돈을 써서 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부끄러운 선민의식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보홀의 아름다운 자연만큼이나 그 곳에 머물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다치질 않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