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과 철회

 

  아이에게 공룡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비겁하네 어른에게 서류 가방이 있다는 사실보다 나을 게 없었네 대학 신입생에게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과 파라솔 말보로 둥근 잔디밭이 있다는 사실은 학생에게 교복이 있다는 사실보다 나을 게 없었네

 

  딱 하나 나은 게 있었네 

  술만 먹으면 늘 취해 있던 아빠를 욕하던 

  그치만 군대도 안 가고 얼굴도 잘생긴 

  복 받은 놈

 

  준호에게

 

  네가 편집한 문집 

  거기 실린 내 글

 

  진짜 잘 썼지? 

 

  이제는 이름조차 잊어버리곤 하는 눈매가 무섭고 다리는 길쭉해도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체형 여름 방학 일기를 매일 쓰듯 과제도 꼬박 내고 술도 마실 줄 모르는 내가 

 

  처음 사귄 친구

  공룡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네 하지만 그건 사실 

  공룡 이야기를 빙자한 다른 이야기

  나랑 같이 다녀주던

  유일한 친구

 

  혜영이 너의 이야기 

 

  준호 같은 애가 날 그리 욕하고 다녀도 심지어 걔가 너의 애인이어도 옆자리는 앉을 수 없어도 밤새 통화는 못 해도 준호 욕을 내가 말없이 들어주어야 했어도

 

  덕분에 지금 나 시인 되었네

  공룡도 좋아한 적 없고 교복은 입어본 적도 없고 

 

  대학? 못 다녔고 술 없으면 잠도 못 자고 

  담배도 못 끊고

 

  바보들!

 


  김유수 시인

  <시인 소개>

  202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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