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석사 졸업생 신민기 씨가 R&D 예산 복구 관련 구호를 외쳤다가 입이 틀어막힌 채 퇴장당했다. 당시 신민기 씨가 들고 있던 피켓에는 “부자 감세 중단하고 R&D 예산 복원하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통령 경호원은 신민기 씨의 입을 틀어막고 졸업식장 밖으로 그를 강제 퇴장시켰다.
정부는 지난 12월, 2024년도 R&D(연구개발) 예산을 26조 5,000억 원으로 확정했고 이는 작년보다 4조 6,000억 원을 감축한 결과다. 지난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대비 6,000억 원을 늘리긴 했지만 대폭 삭감된 것은 여전한 수준이다. R&D 예산 삭감은 1991년 이후 33년 만의 일이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관해 과학계 및 대학원생노조, 전국대학학생네트워크 등에서는 지속적으로 삭감 이유를 해명하고 철회하라는 목소리를 내왔다. 이번 카이스트 ‘입틀막’ 사태 역시 정부가 감축시킨 R&D 예산안에 관해 한 대학원 졸업생이 비판의 목소리를 외치다가 벌어진 일이다.
이에 대학원생노조지부는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은 R&D 예산 복원하고, 미래세대 연구자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대학원생 노조는 해당 성명문에서 정부가 R&D 예산 삭감의 대책으로 내놓은 “‘대학원생 연구생활장학금’이 피해에 대한 대책으로 부족하다고 말하며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인건비 지급 규모를 학생인건비 계상기준 수준으로 현실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연구 수행 과정에서 문제를 야기하지 않도록 별도의 추가 기금 또는 재정을 마련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R&D 예산 삭감의 피해를 우려하는 학생 연구자의 말을 강제로 틀어막고 과잉 경호한 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가했다.
한편 지난달 20일, 카이스트 동문 26명은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과 경호처 직원, 파견 직원 등을 대통령 경호법 위반, 폭행, 감금 등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이날 카이스트 졸업생 김신엽 씨는 “헌법을 수호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마땅한데,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택하고 일방적으로 R&D 예산을 삭감했다”고 비판했다.
이번달 4일에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성명문 발표가 있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현장에서 신진 연구자들의 인건비 삭감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또한, “‘과학 강국으로의 퀸텀 점프를 위해 R&D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신진 연구자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고 이야기했다.
지속적으로 삭감 철회를 요구하고 예산 삭감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을 확대하겠다는 모호한 말을 전할 뿐 실질적인 대안이나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달 6일, 신민기 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대전 유성경찰서에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신민기 씨는 경찰서 앞에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청하고 R&D 예산을 복원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R&D 예산을 복원하라는 저의 절박한 외침을 무시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으며 “예산 삭감은 연구자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포기하는 국정 기조였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도 밝혔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여전히 정부는 사과도, R&D 예산 삭감에 관한 명확한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학생 연구자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R&D 예산 삭감에 관한 해명과 학생 연구자의 목소리를 묵살한 ‘입틀막’ 사태에 관한 정부의 사과가 속히 이뤄져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