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로서 강의하다 보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 중 하나는 행정, 학생지도, 취업 알선 등 학과의 이런저런 잡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대학이 아무리 공직사회나 일반 회사보다 자유롭다 할지라도 전임교수들도 선배 교수나 윗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고 미묘한 권력 관계로부터 초연하기는 힘들다. 이에 비해 강사는 상대적으로 그런 것과 멀리 떨어져 있다. 씁쓸하지만 권력에 닿아있지 않으니 누리는 자유 아닌 자유라고 해야 할까?
나쁜 점은 물론 한둘이 아니다. 박봉. 강의만 해서는 살기 힘들다. 한 시간 강의료는 최저 임금을 훨씬 상회하지만, 한 시간을 강의하기 위해 투여되는 준비과정을 생각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강의를 많이 하면 그나마 낫겠지만 강의‘만’ 많이 하면 개인 연구를 할 시간이 없다. 임용지원을 위해서든, 연구비를 따오기 위해서든, 외부 강연을 하기 위해서든, 책을 쓰기 위해서든 연구업적이 필요하다. 고용 불안정도 큰 걱정거리다. 강사법이 시행된 직후, 오히려 많은 강사들이 직업을 잃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강사인 내게 가장 아쉬운 점은 제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이 아니라 ‘제자’라고 말했다. 가르치는 학생은 넘쳐난다. 내 깜냥에 너무 많아 버거울 정도다. 그러나 제자는 내가 ‘스승’이 되지 않는다면 가질 수 없다. 국어사전에서 제자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을 지칭한다. 스승은 선생과 다른가? ‘뇌피셜’일 수 있지만 스승은 학생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학생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잘하는 것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줄 아는 끈기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 학생의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성장한 학생은 제자가 되고 그를 가르친 선생은 스승이 된다.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교수들의 ‘제자 키우는 재미에 산다’는 말을 좀처럼 실감하지 못했다. 지도교수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다. 전공 강의를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아는 학생들과 유대관계를 쌓을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지도할 수 있지만, 강사가 그런 강의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 학기 학생들이 바뀌는 교양 강의에서 학생들과의 스킨십은 더욱더 요원하다. 그래서 애착이 가는 학생들에게 정을 줄라치면 대학원 후배이자 동료 강사가 “형, 정 주지 말아요. 걔들 우리 제자 아녜요. 어차피 졸업하면 우리 찾아올 것도 아니고…”하는 말에 주춤하곤 했다. 솔직히 찾아온 학생도 연락을 준 학생도 거의 없었다. 더러 있었지만 단발적 연락이거나 직장인이 된 후 학생 때 알고 지낸 인연으로 뭔가를 의뢰하거나 부탁하는 정도였다.
1년 전 석사학위를 받은 한 학생이 졸업 후에 석사 논문을 주기 위해 나를 찾아 왔다. 박사과정에 진학한 학생들이 더러 석사 논문을 준 적은 있었지만, 진학하지 않은 학생이 일부러 찾아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코로나19로 대면 수업 한번 해 준 적이 없는 학생이었는데, 자신의 논문에 인용한 대부분의 자료들이 내 수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었다. 고마웠다. 아니 황송할 정도였다. 별다른 것을 주지 못한 학생에게서 기대하지도 못했던 환대를 받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또 다른 학생이 석사 논문을 건네왔다. 이 학생은 연속으로 내 수업을 들어서 앞의 학생보다 많은 것을 챙겨줄 수 있었다. 논문 안에 쓴 손편지엔 나의 칭찬과 격려가 층층이 마음 안에 쌓여 논문을 쓰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내가 선생으로서 이 학생에게 준 사랑이 있다면 그것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강의 경력 17년 동안 나에겐 제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르친 학생 말고 제자 말이다. 그러나 이제 나에겐 두 제자가 생겼다. 두 ‘아이들’(다 큰 성인들이지만 이 예쁜 친구들을 달리 표현할 말을 알지 못한다)에게 배움을 소중히 여겨줘서, 내 가르침을 귀하게 여겨줘서, 나를 좋은 선생으로 인정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줬다(둘은 또한 대학원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라고 한다. 아름다운 일이다). 여기에 더해 진정 가르치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줘 고맙다고, 더 좋은 선생, 더 좋은 어른이 돼보겠다고 약속했다. 이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자신의 의지와 능력, 지혜와 용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우정과 연대로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기를 빈다. 나는 묵묵히 지켜보며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이 아이들이 성장하며 나의 제자가 될 때, 이들을 바라보는 나도 비로소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