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대학가를 아니 전세계를 떠돌고 있다. ChatGPT라는 유령이.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이다. 2022년 11월 공개된 ChatGPT는 출시 일주일 만에 사용자가 100만 명을 넘게 되며 전 세계 사람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잘 알려져 있듯 ChatGPT는 오픈에이아이(OpenAI)가 개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으로, 사용자가 대화창에 텍스트를 입력하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문서 및 논문 작성, 번역 작업까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결과물을 도출해낸다. 뿐만 아니라 작사, 작곡 등은 물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1986)이 1995년 한국 첫 개봉 이후 근 30년 만에 재개봉했다. 놀랄 일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단 말인가? 첫 개봉 당시 이 영화는 같이 간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며 봐야한다는 웃지 못할 말이 있었을 만큼, 엄청나게 지루한 영화다. 누군가에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롭고 전율이 일만큼 감동적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몇 번이고 다시 보기를 시도해도 같은 장면만 반복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영화다. 단,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 주는 감동은 잊
마애불은 바위에 새긴 부처님을 말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국토에 조성된 마애불은 약 280여 건에 달한다. 2000년에 가까운 우리 불교의 역사 속에서 가늠해 보면 그 수는 많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마애불을 조성하는데 드는 공력을 생각한다면 꽤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마애불 중 70% 정도는 산 정상이나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단단한 바위 속의 부처님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마애불을 완성해 낼 수 있었던 동력은 사
2020년 여성가족패널조사(8차)에 따르면, 20대 여성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질문에 23%만이 찬성했다. 30대 여성도 별로 차이가 없어 36%만이 찬성했다. 적어도 미래는 비혼의 경향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될 것 같다. 그런데 저출산과 관련해서는 좀 다행인(?) 결과도 있다. ‘자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질문에 20대 여성은 30.2%, 30대 여성은 51.2%가 찬성했다. 그러니까 20대 여성 중 7% 정도는 결혼과 무관하게 아이는 갖고 싶다고 말하는 셈이다. 꽤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의 저출산 탈출 비결은 혼
강사로서 강의하다 보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 중 하나는 행정, 학생지도, 취업 알선 등 학과의 이런저런 잡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대학이 아무리 공직사회나 일반 회사보다 자유롭다 할지라도 전임교수들도 선배 교수나 윗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고 미묘한 권력 관계로부터 초연하기는 힘들다. 이에 비해 강사는 상대적으로 그런 것과 멀리 떨어져 있다. 씁쓸하지만 권력에 닿아있지 않으니 누리는 자유 아닌 자유라고 해야 할까? 나쁜 점은 물론 한둘이 아니다. 박봉. 강의만 해서는 살기 힘들다. 한 시간 강의료는 최저
‘코로나세대’의 학습 결손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원격수업으로 인해 학력 격차가 심해져 사교육 수요가 늘어났고, 그 결과 초·중·고등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 그 기사의 중심 논지였다. 사교육 시장과 코로나19의 상관성을 정치하게 분석한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지만 그보다 더 내 눈길을 끈 것은 ‘코로나 세대’라는 신조어였다. ‘OO세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시대에 코로나세대는 정확히 어떤 세대를 가리키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 정
나에겐 두 개의 본업이 있다. 휘민이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작가로서의 본업과 박옥순이라는 본명으로 마주하는 강사로서의 본업. 어느새 시인으로 22년, 강사로 12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모두 잘 해내고 싶은 욕심과 달리 창작과 강의, 그리고 연구를 병행하는 일이 점점 버거워진다. 시에서 논문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우뇌형 인간은 가끔 이런 자조 섞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작품은 일 년에 십수 편을 발표하지만 논문은 한 편 쓰기도 바쁘다. 시집이 나 동화집을 출간하는 해에는 건너뛰기도 한다. 그렇다고 연구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
2019년 11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전염병이 발발하여, 한국에 도달했을 때에도 보통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코로나가 그렇게 심각하려니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죽은 사람이 생기고, 학교와 직장은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학교에서 공문으로 다음 학기 수업을 비대면으로 한다고 왔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컴퓨터에 캠을 설치해 수업을 실시간으로 하는 방법과 강의 동영상을 찍어 업로드 하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 수업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비대면 수업은 나에게 큰 어려움이었다. 캠 설치와 비대면
영화가 세상의 빛이자 중심이요, 내 삶을 고동치게 하는 심장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1990년대에는 그랬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이 한 예술영화전용관에서 단관 개봉해 10만 관객을 동원하고, 지금의 시각으론 예술영화에 가까운 왕가위의 이 당시 대학생들의 필견 영화였던 시절. PC통신이 유행하고, 인터넷이 이제 막 깔리기 시작하던 그 때는 『씨네21』이나 『키노』 같은 영화잡지를 읽어야 영화 좀 본다는 소리를 듣던 때였다. 였던가? 극 중 대학생 성나정(고아라)이 영화 동아리방에서 선배들
한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종료된 지 얼마 안 되어 바이든 미 대통령은 당선인과 통화를 했다. 한국 역대 대통령 당선인 중 가장 이른 시간인 수락 인사 5시간 만에 미국 대통령의 축하 전화를 받은 것이다. 나아가 5월에 취임하게 되면 미 대통령이 먼저 한국에 와서 양국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도 개표 다음날 바로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를 직접 당선인 측에 보내서 인편으로는 가장 먼저 인사를 했다. 더구나 윤 당선인이 쿼드(Quad) 회원국인 인도 총리 하고까지 전화 통화를 하자, 시 주석은 한국 차기 대통령을
기후변화를 넘어선 기후위기는 우리 삶에 커다란 피해를 주고 있다.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 사태도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 동물과의 접촉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변화와 각종 재난으로 인류 사회는 막대한 인명 피해와 경제 활동의 제한을 받으며 회복하기 어려운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산불과 태풍, 홍수로 피해 받는 아프리카나 유럽 등과 달리 우리는 기후위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월 초 발생한 울진, 삼척 산불의 피해 영향 구역은 20,923ha로 최근 10년 내 산불 중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소위 ‘대장동비리’와 관련된 회사에서 30대 초반의 청년이 6년도 안 되는 기간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젊은 사람의 퇴직금이 50억이라는 것은 모든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회사측에서 산재로 인한 위로금 성격과 문화재 업무를 효과적으로 처리한 대가 등이 포함되어 그 금액이 책정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문화재를 법으로 보호하는 것은 어지간한 틀을 갖춘 국가라면 모두 시행하는 제도이기에 개발행위 과정에서 문화재가 나
관계를 면대면의 익숙함으로 배운 나로서는 비대면 수업이 다소 곤혹스럽다. off된 채 이름만 보이는 화면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요것 봐라! 라면서. 얼굴을 봐야 수업 리듬을 더 잘 찾을 수 있을 듯 싶어, 은근슬쩍 얼굴을 보여주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에게 꽤나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화면을 켜라고 강요하지도, 그걸 포기하지도 못한 애매한 시도다. 어떤 이는 나의 ‘느슨함’에 경고를 주기도 하지만, 아직 나는 모두가 얼굴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저 소망으로만 남긴다. 여성학전공자로서 디지털 폭력과 유포의 현
사회라는 개념은 늘 모호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같은 사건 앞에서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까를 궁금해한다. 지금도 어떤 모습인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서도 앞으로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에 관한 많은 담론은 그런 질문과 상상을 담고 있다. 다만 사회를 들여다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는, 현실의 좌절과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여러 지표와 비대면, 온택트, 디지털, 혁신, 뉴노멀 등등 새로운 상상을 자극하는 미래지향적인 말 사이에서 섣불리 코로나 이후를 상상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사회는 결국 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고통의 크기를 감히 비교할 수 있겠냐마는, 그 누구보다 연극, 무용, 뮤지컬, 오페라 등의 예술가들은 유독 어지럽고 지난했던 한 해를 보냈다. 공연장은 문을 닫았거나 열었다 해도 거리두기로 인해 객석의 절반도 채울 수 없는 생존 위기를 겪었고, 더욱이 절박한 생존 문제도 아닌 공연을 포기하지 않음이 예술가로서의 알량한 이기심처럼 비치며 생업활동에 죄책감마저 스미게 하였다. 특히 작년 4월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및 영역별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았던 탓에 이러한 혼란과 우울은 더욱 가중됐었다. 전염병
11월 3일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미 대선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행사이다. 위스콘신과 미시간에서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면서 큰 이변이 없는 한 바이든이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측이 우편투표 무효소송 등 소송전략을 선택할 경우 공식적인 미 대선의 최종결과는 12월이 돼야 나올 가능성이 남아있다. 한국은 미 대선의 결과에 크게 영향을 받는 국가 중 하나인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국제정치 이슈인 북·미관계, 한·미관계, 미·중관계를 중심으로 이번 미 대선의
박사과정일 때, 우연히 1970년대 석사학위 논문을 몇 편 본 적이 있었다. 왜 그런 ‘옛날’ 논문을 보게 되었고 그 논문들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물론 잊어버렸지만, 그때 받은 인상은 의외로 지금도 남아 있다. 물론 여러 인상과 느낌이 들었는데, 무엇보다도 참고문헌의 간소한 양이 여태 지워지지 않고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때는 “이건 뭐지! 겨우 이 정도?”하는 느낌마저 들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너무 쉽사리 판단하고 우쭐해 한 듯하지만! 어쨌든, 그러한 반응은 당시나 지금의 학위논문을 살펴보면 쉽사리 이해 가능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현재와 같은 삶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전염병의 습격으로 달라진 전 세계적 풍경 속에 나의 삶 역시 많은 부분 변화가 있었다. 주로 낮에는 강의와 연구를 밤에는 극장을 찾는 일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나는,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된 강의와 줄줄이 취소된 공연들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에 충실히 동참하며 무척 단조로워진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삶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낮에는 온라인 강의를 소화하고 밤이면
21대 총선은 ‘3연승’과 ‘3연패’의 맞대결이다. 한국 정치에 없었던 4연승과 4연패의 총선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3연승’과 ‘3연패’는 10년 사이로 반복되는데 ‘2006 지방선거-2007년 대선-2008년 총선’과 ‘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다. 총선 승부의 절반은 공천에서 갈린다. 희생과 헌신의 통합 그리고 공동체 우선의 자세가 되어 있는지 국민이 판단한다. 총선 1라운드 공천 승부는 여당의 근소 우세. 특히 ‘문 세습, 김 투기 그리고 정 미투’의 공천 고비를 잘 넘겼다. 물론 권력의 오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