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 여성으로서 학문하기
대학원신문(이하 대)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 이야기 꽃을 피운 장은숙 원우(왼쪽)과 신미숙 원우(오른쪽)
장은숙 (연극학과 석사과정, 이하 장) : 본교 국문학과 출신이고 현재 일반대학원에서 연극이론을 전공하고 있다. 작년엔 1년동안 휴학했고 올해 복학해서 현재 석사 3학기 과정이다. 결혼한 지 11년 차이며 딸은 초등학교 4학년. 방송국에서 성우로 15년 차다.
신미숙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이하 신) : 현재 국어국문학과 석사 1학기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다. 결혼 20년 차이고 재수생인 큰 아들과 고등학교 1학년인 작은 딸이 있다.
대 : 대학원 입학 계기는 무엇인가?
장 : 원래 전공은 국문학인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성우이다. 성우 일을 한 지 10여 년 정도 된다. 현재 성우 학원에서 강의도 하고 있는데, 성우 강의는 아직 체계화가 되어 있지 않다. 연기의 뿌리가 연극학이니까 대학원에서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또 전공 분야에 관련된 책도 쓰고 싶고, 후학양성 커리큘럼과 이론도 체계화시키고 싶은 생각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본교 학부 졸업생이면 입학금이 면제인데,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서 입학금을 냈다(웃음).
신 : 방송대를 졸업한 뒤 막연하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습지 교사를 시작했는데 성향과 맞지 않아서 1년 동안 많이 고민했다. 그러던 중 소설창작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혼자 하다 보니 부족함을 느끼게 됐고,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다.
대 : 이번 학기 수업 일정은 어떻게 되나?
장 : 지금 대학원 3과목, 선수과목 2과목, 총 15학점을 듣고 있다. 학부 때보다 더 바쁘다(웃음).
신 : 장은숙 원우님과 똑같이 전공 3과목과 선수과목 2과목을 듣고 있다(웃음).
대 : 대학원생, 주부,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에 대해 말해 달라.
장 : 수요일, 금요일에는 오전 10시, 12시에 녹음이 있다. 때론 내레이션이나 TV 광고와 관련된 일을 할 때도 있다. 녹음이 없는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에는 학교에 온다. 보통 2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아이가 학교에서 귀가 한 것을 확인한다. 아이에게 숙제를 시키고, 빨리 재운다(웃음). 과제는 보통 밤을 새서 하거나 주말에 몰아서 한다. 녹음을 하는 중간 중간에 과제를 하기도 한다. 다행히 집, 학교, 방송국이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수업 중간에도 바쁜 일이 생기면 다녀올 수 있다.
신 : 5시 50분에 일어나서 남편을 출근시키고 큰 아들 재수 학원에 보내고, 작은 애 를 학교에 보내면 아침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시간표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모두 차 있어서 매일 학교에 온다. 오늘(화요일) 같은 경우는 오전 10시 30분에 대학원 수업을 듣고 오후 2시에 학부 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연속으로 있지 않은 날에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저녁에는 보통 집에 가서 장을 보고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준다. 그 다음에야 책상에 앉아서 내 할 일을 할 수 있다. 작은 애가 엄마는 자기보다 바쁘다고, 자기한테 관심을 안 갖는다고 뭐라고 한다(웃음).
대 :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이 여성이신 두 분에게 전적으로 부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정 내에서의 가사 분담은 어떠한가?
장 : 다행히 신랑은 나를 이해해주는 편이다. 청소와 식사준비는 남편이 하고 나는 아이를 키우는 쪽에 더 신경을 쓴다. 외식도 좀 하는 편이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밑반찬도 해 주신다.
신 : 아침식사의 경우 간단하게 준비를 하는데, 아무래도 학교를 병행하다보니까 성실하게 준비하기는 어렵다. 결혼을 한 지 오래돼서 그런지 남편이 도와주는 건 별로 없다. 주말에는 가끔 도와주긴 하는데 몇 번밖에 안 도와주었다(웃음).
장 : 우리도 원래 안 도와줬는데, 먹을 게 없어지니까 도와주더라(웃음).
대 : 대학원에서 공부하기 힘들지 않은가?(웃음)
신 : 방송대에서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무리는 없다. 체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정말 재미있어서 잘 이겨내고 있다.
대 : 남성 원우에게는 “연구주제는 무엇이냐”, “논문은 잘 되가냐”라고 묻는 반면에 여성 원우에게는 연구와 관련해서 질문하기 보다는 “결혼은 언제하냐”고 묻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여성으로서 대학원 생활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는 없는지?
장 : 생소한 얘기다. 우리는 박사과정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하시면서 공부하기 힘드시겠어요”라는 말은 하지만 나이 가 많다고 봐주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하도록 한다. “아줌마라서 대충 한다”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밤을 새서라도 페이퍼를 열심히 써온다. 질문처럼 여자라서 겪는 문제는 없었다. 차별은 없다. 또 회사나 가정에 대한 배려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만약에 그런 점들을 고려해서 학교를 다니려면 야간수업을 듣던지, 특수대학원을 다녀라”라는 말씀을 하신 적은 있다. 일반대학원은 오로지 학문을 위한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수업에 한 번 빠지면 무조건 점수가 깎이고, 두 번 빠지면 F학점을 주실 정도로 수업이 빡빡하다.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연극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공부를 무섭게 시킨다고 다들 알고 있다.
신 : 차별은 당연히 없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처음에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위축됐다. 강의실을 찾는 것조차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학부에서 선수 과목을 수강하는 두 달 동안 누구하나 말을 안 걸어주니까 힘들고 외로웠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낸다.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지금은 대학원 생활에도 많이 적응이 되어서 잘 견디고 있다. 그리고 장은숙 원우가 말한 것처럼 나이가 많으니까 설렁설렁 해도 된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 :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으면, 현재 “누구누구의 엄마”라고 불렸을 가능성이 클 것 같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개인으로서 호명되는 점에 대해 느낀점은 없는지?
신 : 젊은 친구들과 공부한다는 기쁨이 일단 제일 크다. 또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은 국문학이나 소설 쓰는 사람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인데,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면접 때 정말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3대 1 면접이었다. 너무 긴장을 해서 질문에 대답을 잘 하지 못했다. 내가 그런 장소에 있다는 자체가 떨렸다. 어찌되었든 내가 면접을 잘 마치고 이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그것에 만족하고 있다.장 : 인생이라는 건 결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살다보면서 느낀 것이다. 사실 20대 때는 결과가 중요했다. 어느 회사에 가고, 누구와 결혼하는지. 그런데 살다 보면서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젊었을 때는 성취하고 뽐내기 바빴는데, 40대에 가까워지니까 내가 진짜 행복한지 자꾸 반문하게 된다. 그래서 요새는 남들이 우습게 알아도 내가 행복하고 뿌듯할 때를 찾게 되더라. 유명세를 떨치는 것보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대 : 대학원 생활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지?
신 : 자아실현? 글쎄,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대학원 공부도 그렇고.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소설이라는 죽을 때까지 할 일을 찾은 것 같다.
대 : 대학원 입학을 결정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신 : 가족이 협조를 해주었다. 오래 전부터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연막탄을 뿌려놓았다(웃음). 공부라는 것은 더 젊을 때 할수록 좋으니까 항상 고민했다. 어느 날 호수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남편이 대학원에 입학하라고 넌지시 말했다. 갑자기 일이 풀려서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고 대학원에 입학해서 너무 신기했다. 자아실현이라기보다는 꿈의 실현이었다. 가족이라는 건 어떤 때는 적이다(웃음). 자기들이 불편할 때는 나에게 자꾸 압력을 준다. 작은 애가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한테 관심을 안 가져준다고 투정을 부린 적도 있었다. 투쟁하고 이겨내고 있다(웃음).
장 : 원래 일을 하고 있어서 대학원에 입학하자 아이가 “엄마 이제는 학교도 다니네?” 라고 했다(웃음). 또 엄마가 “집에서 쉴 때는 영화보고 놀고 그러더니 이제 집에서 공부를 하네?” 라고 말하는 정도였다. 오히려 뭔가 하겠다고 하니까 가족들이 좋게 봐주었다. 숙제해야 한다고 하면 제사도 빼주고(웃음), 그래서 불편하지 않다. 그래도 대학원에 다니는 주부들은 대부분 집에서 도움을 주지 않을까?
대 : 이미 자녀분들이 성장해서 해당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지난 학기 원우들의 일상생활 인터뷰에서 다음과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공대 연구실 소속 박사과정 남성 분은 자녀분이 갓 돌을 지났는데, 휴일이 없어 자녀분 얼굴 보기가 힘들다는 얘기였다. 현재 우리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육아 관련 시스템은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장 : 러시아 유학을 다녀 온 친구가 만삭이다. 무척 힘들어하고 있다. 공부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혜택을 준다기보다 자기가 알아서 조절하고 병행을 해야 할 것 같다. 질의자께서 말하신 연구원의 예는 직업과도 약간 결부돼 있으니까 나와 다른 케이스 같다. 연구원의 경우 부인이 화가 많이 났을 것 같다. 남편이 애도 좀 봐줘야 하는데(웃음). 근데 말을 하다보니 우리대학에 왜 육아 시스템이 없나 궁금하긴 하다. 육아 시스템이 있다면 더욱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을 텐데…….
대 : 서강대학교는 보육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대부분의 미국 대학에도 연구자들을 위한 보육시설이 학교 안에 있다고 들었다. 우리대학에서도 원우들의 육아문제는 해마다 언급되곤 한다. 이제 갓 육아를 시작한 대학원 동료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신 : 은행을 다니다가 둘째는 친정엄마에게 맡길 수 없어서 일을 그만 두었다. 고학력 여성의 자아실현이 사회적으로 자리를 아직 못 잡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완전히 자리잡으려면 아직 조금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육아 때문에 여성들이 자기의 길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는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희생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다. 남편이 항상 돈을 벌어오는 걸 볼 때마다 나도 예전에 은행 일을 그만 두지 않았으면 남편과 똑같은 직급에, 똑같은 돈을 벌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가끔 남편한테 “왜 이렇게 잘난 척하냐”고 하기도 한다(웃음).
대 : 마지막으로 대학원 수업에서 얻으신 것이 있다면?
장 : 나는 연기자 출신도 아니고 학부 전공은 국문학이고 타과를 기웃거리며 시나리오 극작을 배우던 사람이다. 근데 어느 날 방송국에서 성우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연기의 연자도 몰랐는데, 어느 순간 몸으로 체득하게 됐다. 성우이다 보니까 연기가 거의 대부분인데, 몸으로 부딪혀서 이해했던 연기를 지금은 대학원에서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아무래도 경험했던 부분이기 때문에 이해가 더 잘 된다.
내가 지금 배우는 건 연기법 연구이다, 연기법 연구는 연기 기술이 아니라 연기에 대한 역사 과목이다. 미국, 러시아, 유럽 등지에서 출간된 온갖 서적들을 번역해 놓은 책들을 보게 되는데, 내가 방송국에서 고민하던 것들이 그 책에 다 있었다. 그래서 신기하고도 충격적이었다. 예를 들면, 연기를 할 때 캐릭터에 몰입해야 하나, 아니면 이성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연기해야 하나 등등의 고민들. 17년 동안 몸으로 체득한 것들이 책에 이미 나와 있다는 것 때문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내 고민이 이론적으로 체계화되니까 정말 재미있다. 공부하면서 흥분되고 너무 좋았다. 글자들이 살아 있는 채로 내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일을 했다면 더 잘했겠지만(웃음).
신 : 선수 과목을 수강하면서 고전들을 일주일에 한 권 씩 읽는데, 몰랐던 것들을 알게 돼서 너무 재미있다. 전에는 고전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대학원 수업은 아직 1학기 째라 그런지 아직 잘 모르겠다.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른지만, 아직은 더 지나봐야 할 것 같다. 지난 주에는 작가론 수업에서 발표를 처음 해봤는데, 소중한 경험이었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런 것들이 내 일상을 바꾸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것들이 너무 기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