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선배님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원우들에게 간단한 소개 및 인사 부탁드립니다.

이영재(이하 '이') : 이렇게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정치이론 및 정치사상을 전공하면서, 2000년 16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을 했던 이영재라고 합니다.

신정민(이하 '신') : 오랜만에 학교에 오니 감회가 새롭군요. 저는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면서, 2003년 19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을 했던 신정민이라고 합니다.

Q:  현재 이영재 선배님은 정치외교학과에서 강의를, 그리고 신정민 선배님은 출판사에 재직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에 대학원 학생회 생활이 영향을 끼쳤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 : 아시다시피 대학원 생활은 무척 개인적입니다. 특히 전공이 다른 원우들과의 교류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전공이 다른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어서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생각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학생회장을 할 당시 이 개인주의적인 대학원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내었던 경험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원우들과 느슨한 연결 고리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나와는 다른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며 일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신 : 저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생회장을 할 때, 교학과와 작은 협상, 협의들을 하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작은 부분부터 바뀌기 시작하면, 노력하면 바뀌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협상력이 길러져서 그런 부분들이 사회생활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회장을 했을 당시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같은 일이 있었던 어수선한 시국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 덕에, 자연스레 사회 내에 다양한 관점을 체득한 것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Q: 요새는 등록금 문제, 연구공간 문제 등이 우리 대학원의 현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선배님들의 시절 때는 어떤 큼직한 현안들이 있었나요?

신 : 제가 학생회장을 했던 2004년에 학부 총학생회에서 등록금 문제로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했었어요. 그걸 보고 대학원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성명서를 발표했죠. 많은 원우들이 관심을 보이진 않았죠. 그래서 우리는 등록금 문제를 제대로 보자고 했죠. 등록금이 인상 될 이유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학부 총학생회를 뒤에서 지지하는 역할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학생회 결산을 그때그때 공개하자는 정책을 추진했죠. 대학원 신문을 통해 분기별로 결산 내역을 공개했고, 세부적인 건 내용은 신문사와 감사에게 제출하는 형태였죠. 스스로 떳떳해지자, 이것이 우리가 내걸었던 최고의 목표였거든요.

이 : 저희 때는 대학원 신문을 언론사로 승격하여 독립시키는 문제를 나서서 추진했습니다. 인원도 확충하고 신문 내용을 대학원에 맞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예전에 대학원에 인사연이라고 인문사회공부를 하는 상당히 활발한 스터디 모임이 있었어요. 2000년까지는 남아계신 분들을 중심으로 학술행사 준비를 추진하면서 인사연을 다시 재건해 보려는 시도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2000년도에 가장 큰 사안은 조교문제였어요. 학과 조교는 학비면제 외에 받는 급여가 따로 있었고, 조교가 되는 몇몇 원우들은 대학원 생활이 직장처럼 되었죠. 다른 학교의 조교제도를 조사해보니 여러 형태의 조교가 있더군요. 그래서 조교 예산 총액과 수요 인원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기획예산처와 협의했고, 조교제도가 그때 바꾸어냈죠. 당시에 조교문제로 학생대표자회의를 하면 문화관 덕암세미나실이 꽉 찼었어요. 신문사를 대동하여 협상 내용을 바로바로 대자보와 신문으로 공개했죠. 결국 교육조교 제도를 만들었고, 조교 총 인원수를 2.5배 늘렸습니다. 당연히 조교 예산 총액도 늘어났죠. 당시에는 많은 대학원생들의 혜택을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 진학률이 워낙 떨어진 요즘은 그때 분위기랑 다른 것 같긴 해요. 대학원생이 많은 몇몇과를 제외하고는 조교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Q: 총학생회 사업을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으시다면?

이 : 많은 현안들이 있어서 사업하기에 많이 분주했죠. 그래도 학술제와 체육대회는 꼭 개최했었는데, 그 때 예술대 원우들이 많이 참가하면 공대 원우들이 대거 몰려오곤 했었죠.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행사를 진행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어요.(웃음)

Q: 올해 대학원 총학생회가 27대를 맞이하였습니다. 현재 학생회를 이끌고 있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 : 대학원 학생회가 학교 문제에 대해 참여하고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 꼭 있습니다. 그럴 때 대학원다웠으면 좋겠어요. 의견을 내세우기 이전에 학교에 양보할 부분도 있고 도리를 지켜야 할 부분도 있는 거죠. 대학원답게 성숙하게 대응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2000년도에 한창 조교 협상을 할 때, 협상기간 동안은 고성이 오고가고 치열하게 싸웠지만, 스승의 날에는 총학생회 대표자와 집행부 20여명이 본관에 올라가 대학원장님과 총장님께 꽃을 달아 드렸죠. 많이 좋아하시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이는 무엇보다 연구자의 본분과 원칙에 관한 문제입니다. 연구자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고, 학교 측과 협상할 때 연구자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요즘 같은 시대에는 대학원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으로 생각되기 쉽죠. 학부보다 인원 적고 다루기 쉬운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 이미지를 깨야해요. 어떤 상황이라도 연구자라는 자존심을 갖고 일을 전개해 나가면 학교 측을 대할 대 학부하고는 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힘을 바탕으로 학교 측에게 원우들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해야합니다.

신 : 보통 대학원생은 연구가 목적이니까 다른 일엔 거의 관심이 없죠. 그래서 더욱 개인적이게 됩니다. 그래서 학생회는 겉돌고, 집행부 위주로 행사가 진행되는 상황이 반복되죠. 그러나 학생회의 존립 근거는 원우들이잖아요. 학생회가 원우들의 연구 환경개선에 최선을 다애야 합니다. 그들이 무관심하더라도 말이죠. 정말 대학원생들이 꼭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교수 임용정보라던가, 교수신문과 연계해서 책자를 만든다던가 하는 사업들을 펼쳐야 합니다. 다른 어떤 사업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좀 더 학생회의 입지를 차차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

이 : 대학원의 원우 개인은 굉장히 학교에 대해 무력합니다. 개개인의 원우들은 학교의 행정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원우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총학생회가 되어야 합니다. 원우들은 우리들을 대표할 발언권을 총학생회에 위임한거죠. 그래서 총학생회는 소모적인 사업을 진행하기 보다는, 원우 개개인의 어려움들을 근본적으로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개인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 학교와 소통하는거죠. 바로 그런 활동들이 원우들에게 실질적인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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