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KOBIS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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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시부야의 공중 화장실 청소부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며칠을 보여준다. 묵묵히 그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담아내는 시선은 마치 화장실 청소부의 브이로그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그는 과묵하다. 또 유튜브가 아니라 흑백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취향을 갖고 있다. 이렇듯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의 세계를 보여준다.

  해가 뜨기 전 새벽, 푸르스름한 색감이 도시 전체에 내려앉았을 때 집 앞 길가를 쓰는 빗자루 소리가  들린다. 히라야마에겐 잠을 깨우는 알람소리이다. 화분에 물을 주고, 열쇠를 챙겨 외출을 준비한다. 손목시계는 굳이 챙기지 않는다. 히라야마는 시간에 종속되기보다, 본인만의 시간을 본인의 지휘 하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그가 향한 곳은 도시의 공중화장실이다. 카메라는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청소를 수행하는 그의 모습을 비춰준다. 동료가 말을 건내도 대답을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가 과묵함을 넘어 고지식한 사람은 아닐지 묻게 된다. 하지만 이후 보여지는 그의 며칠간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화장실 청소부로써 노동을 하고, 퇴근 후 본인 만의 여가를 보내는 것까지 그는 자신만의 완벽히 갖춰진 세계를 반복적으로 영위한다. 어느 날 되풀이되는 자신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외부인들이 들어온다. 동료 타카시는 다짜고짜 차를 빌려달라 하고, 카세트 테이프를 팔자며 히라야마 하루의  주도권을 앗아간다. 조카 니코 역시 갑작스레 문뜩 찾아와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 그는 외부세계의 침투에 수용적이다. 자신만의 세계가 오롯이 구축되어 있음에도 그 변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어느 세계는 결코 섞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자신의 여동생 즉, 니코 엄마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는 연결될 수 없다고 말하듯이.

△ 사진= KOBIS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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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에서 제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영화는 왜 <퍼펙트 데이즈> 완벽한 날들이라고 제목을 지었을까. 동료의 갑작스런 퇴사로 밤늦게까지 일을 마치지 못한 날, 목욕 후 비가 쏟아져 다 젖은 날, 이 같은 날들을 어떻게 완벽한 날들로 볼 수 있을까. 그건 아마 히라야마가 코모레비(こもれび)를 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단어는 ‘나무 사이사이 잠깐씩 비치는 햇빛’을 뜻한다. 그가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도 미소 짓게 만드는 존재가 코모레비다. 코모레비는 결코 한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일상이 매일 똑같은 날들의 반복 같아도, 코모레비처럼 매순간  그만의 고유성을 갖고 있다. 히라야마는 자신 주변의 다양한 코모레비들을 본다. 어제와 같은 화장실 이지만 누군가 놓고 간 빙고 종이에 답을 하고, 어제 공원 옆자리에 앉아있던 회사원에게 오늘은 인사를 건내본다. 코모레비는 나뭇잎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히라야마는 자신의 흑백 카메라로 코모레비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사진을 인화해 자신만의 베스트컷을 남기는 그는 작고 미세한 순간들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다. 그가 카메라를 들고 코모레비를 담는 행위는 그가 우리 주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연결된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도시의 수많은 소음에 묻혀 무심히 지나갈 존재들이다. 거리의 노숙인, 공원에서 홀로 점심을 해결하는 회사원. 모두 히라야마의 시선엔 포착된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온 자신의 엄마보다 몇 년만에 본 히라야마 삼촌이 더 편하다는 조카 니코는 이런 삼촌의 시선을 닮고자 한다. 히라야마가 흑백 카메라로 순간을 기록하듯, 니코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삼촌의 순간을 기록한다. 니코에겐 히라야마의 청소 행위가 코모레비와 같이  기록해 기억하고픈 순간이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전사를 다루지 않아,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한층 더 자극한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플래시백 하여 보여주지 않는 것은 이 영화와 닮았다. 히라야마가 말했듯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지금이다. 굳이 과거로 되돌아가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재로만 보여지는 그의 과거는 흔적으로 느껴질 뿐, 직접적인 실체는 모른다. 관객은 그의 과거를 특별하게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과거는 우리의 것과 닮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며칠과 우리 각자의 지난 며칠을 같이 떠올려보자. 히라야마처럼 우리도 각자의 코모레비적 순간들과 함께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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