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무더운 날씨입니다. 실수로 ‘핫’커피를 시켰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보면서 묘하게 마음의 여유를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MBTI 이야기를 하자니 부끄럽지만, 저는 마지막이 J로 끝나는 나름의 계획형 사람으로 판명됐습니다. 스스로 지독한 계획주의자가 아니라고 믿기에, 신빙성에 의심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비교적 계획적인 사람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리게 된 것은 이동할 때 제 평소 습관을 통해서입니다. 저는 길을 걸을 때 대부분 도착지를 정했고 그 목적으로 향하는 최단거리와 최소시간을 머릿속으로 항상 계산했습니다. 

  “좋은 예술가가 되려면 좋은 관찰자가 되어라” 

  학부 입학 후 첫 강의에서 들은 교수님의 말씀입니다. 좋은 관찰자가 되는 방법은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 확실한 것은 산책자는 관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찰자와 산책자는 결국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보들레르가 말한 목적 없이 배회하며 관찰하는 사람들, 즉 산책자는 근대에 이르러 탄생합니다. 하지만 현대에서 그 존재는 점차 빛을 잃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의 사회는 정해진 목적을 위해 매우 효율적인 작업을 요구합니다. 뚜렷한 목적지를 가져야만 하며, 우리는 그 곳을 향해 전력질주 해야 하는 여정을 강요받습니다. 저 또한 목적지향적인 전력질주를 하는 사람이었을 테지요.

  “사회가 정해놓은 숫자에 얽매이지 말자” 

  어느 날 동행인이 말했습니다. 산책자가 되지 못했던 저에게 동행과의 첫 산책은 이색적인 경험이 었습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일단 걸어보는 것. 정해진 목적지가 없는, 희미하게나마 있는 도착지를 정해두고 동행하는 이와 걷는 이 산책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도 닮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 니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우리는 어디로든 향할 수 있습니다. 틀린 길이란 없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우리만의 도착지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이상적인 말들을 늘어놓으니,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동행을 통해 알게 된 교훈은 결국 인생은 정해지지 않는 길을 나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동행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각자가 바라고자 하는 곳까지 잘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 이 긴 여정, 산책 그리고 삶의 미학일 것입니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합니다. 저는 마라톤 대신 산책을 인생이라 생각하고자 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자만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산책은 우리 인생과 더욱 닮아 있을테니까요. 

  최근에도 산책을 떠났습니다. 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거리를 함께 걸으면서 동행인과 대화를 나눕니다. ‘어디로 향할까’ 뚜렷한 목적지는 없습니다. 대신 어디까지 가보자 그리고 괜찮으면 다시 여기로 향하자. 저희는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정해지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산책해 나가는 우리들에게는 언제나 길을 멈춰 돌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소위 정해진 틀 안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편하게 다가갑니다. 그러나 그 틀을 깨뜨리는  순간, 불편함이 엄습해옵니다. 새로움은 항상 두려운 존재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목적지향적인 세상에서, 틀을 깨고자 우리는 산책을 떠납니다. 그리고 동행하는 이 산책은 계속될 것입니다.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이러한 구절이 나옵니다. 

  “인간에게서 훌륭한 점은 그가 다리이지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며 내려가는 존재라는데 있다.” 우리는 어딘가로 건너가고 내려가지만 목표와 목적을  정하지 않고 단지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사견을 더해,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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