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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보기] [2025 제31회 동대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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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회
등록일
2025-11-18 16:25:39
조회수
226
이번 동대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는 어려웠다. 총 28편이 투고되었는데 작품들 수준이 대학문학상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반적으로 우수했다. 오랜 시간 치열한 논의 끝에 「조안에게 손톱을 박아 넣었다」, 「걸어가다」, 「미식의 밤」, 「뱀에게 사랑받기」 네 편의 소설을 가까스로 논의 대상으로 선정할 수 있었다.

「뱀에게 사랑받기」는 언니가 가출한 후 형부와 단둘이 지내는 처제의 시선으로 형부가 도시 마스코트 디자인 일을 하면서 뱀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고 결국 썩은 장판 문제를 해결하려다 실패하는 과정을 그린다. 뱀과 썩은 장판이라는 상징은 관계의 부재와 내면의 불안정성을 구축한다. 과장된 수사 없이 담담하게 서술되는 문체는 고요한 파국 직전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상징과 현실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어 복합적 해석의 여지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미식의 밤」은 출판사 계약직 디자이너 재경이 성차별적 발언이 오간 미팅을 마치고 귀가하여 만성적인 허기와 우울 불안을 폭식과 구토로 해소하는 과정을 다룬다. 지하철에서의 폭력적 경험과 직장 내 무시가 재경의 허기를 심화시킨다. 꿈속에서 거인이 되어 거래처 직원을 찢어 먹는 폭력적 판타지를 경험하는 장면은 내재된 분노와 자기 혐오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고통의 발현 과정이 스트레스에서 섭식 장애로 이어지는 예측 가능한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후반부의 서술이 주제를 전달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복합적 해석의 여지가 제한되는 측면이 없지 아니하나 현대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개인의 신체적 증상으로 연결하는 주제 의식과 표현력만큼은 고평할 만하다.

「걸어가다」는 명품 렌탈샵에서 일하는 유영이 동료 지히 언니를 만나면서 재연(再演)하게 되는 상실과 부재의 트라우마의 반복에 관한 소설이다. 지히 언니가 과거에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버린 경험을 고백하고 그 아이가 갔을 길을 상상하며 살아낸다고 말하는 대목은 버린 것과 잃어버린 것 사이의 경계를 질문하며 상실의 의미를 조명한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겪었던 기다림과 배신을 지히 언니를 통해 다시 경험하면서도 결국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순환적 비극이 수미상관적 구조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점은 특별하다. 유영이 언니가 놓고 간 가압류 걸린 집을 인수받고 이염이 있는 옷을 입고 거리를 걷는 낯선 여자를 보며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결말은 출구 없는 비극의 재귀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는 주인공 자신의 무망한 선택을 간단치 않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조안에게 손톱을 박아 넣었다」는 일란성 쌍둥이 자매 안나와 조안의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투쟁을 다룬다. 평범함을 추구하는 언니 안나는 동사무소 직원으로 일하며 예측 불가능한 동생 조안을 혐오하고 통제하려 한다. 번역 일을 하는 조안은 안나를 소화할 수 없어서 발바닥에서 손톱이 자란다고 믿으며 안나가 깎거나 물어뜯은 손톱 조각을 주워 먹으며 안나를 소화하려 한다. 이 작품은 타자를 내재화하려는 시도와 그것이 초래하는 고통을 신체적 공포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정체성의 혼란과 통제 불가능한 타자 혹은 자아의 이면을 소화하려는 욕망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조안의 번역가적 시점은 언어와 해석의 문제를 통해 자매 사이의 소통 불가능성을 심화시킨다. 서로를 구분할 수 없지만 분리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상대를 통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는 모순은 오늘날 개개인의 관계 맺기 방식에 내포되어 있는 기이한 불구성에 관한 통찰을 제공한다. 긴장감과 독창적인 상징 체계는 심리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기이한 소재를 통해 보편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방식이 탁월하다.

이들 소설은 관계의 파열과 신체의 은유를 통해 개인의 내면을 형상화하면서 가족이나 동료와의 관계 속 균열을 단순히 심리적 차원에서만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두 작품에 대한 오래 격론 끝에 상실과 기다림의 순환 구조를 섬세하게 직조하며 현대인의 실존적 고독을 포착한 「걸어가다」보다는 신체적 공포를 통해 정체성의 문제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조안에게 손톱을 박아 넣었다」가 젊은 작가에게 요구되는 독창적 상상력과 패기에 좀 더 부합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조안에게 손톱을 박아넣었다」를 대상으로, 「걸어가다」를 최우수상으로, 「미식의 밤」을 우수상으로 각각 선정했다.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작들이 보여준 문학적 성취는 한국소설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울러 아쉽게 수상이 불발된 「뱀에게 사랑받기」 외에도 「지금은 금지된 모든 것」, 「천등의 몸」, 「내장으로부터, 캐니」, 「나폴리탄에서는 케첩 맛이 나고」와 같은 투고작 또한 심사위원 각자의 예사롭지 않은 지지를 획득했다는 사실도 부기해둔다. 이들 소설 또한 한국소설이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데 기여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작성일:2025-11-18 16:25:39 210.94.177.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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