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동대문학상 시 부문에는 56명이 138편을 응모하였다. 문학에 관심 있는 이라면 근래의 동국 문학의 탁월한 성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번 시 부문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동국 문학인들의 시문학적 역량과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수상작을 비롯, 이에 근접한 다수 응모작이 보여준 기재(器才)는 교내 경쟁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많은 응모작들이 나름의 미덕을 갖추고 있었으나, 시적 언어의 세련과 단단함의 토대 위에 개성적인 이미지를 축조하는 데 성공하였던 작품들이 특히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었다. 그중에서도 「생을 다해 모래시계를」, 「하이쿠를 쓰자」, 「밀봉」, 「복」, 「코코의 산책」, 「직유」, 「키위」, 「우리는」, 「짐노페디」 등이 수상권에 들 만한 작품으로 거론되었다. 「생을 다해 모래시계를」, 「하이쿠를 쓰자」는 기복 없이 탄탄한 시작(詩作) 능력이 고평되었으나, 제목의 진부함과 강한 서술성의 처리 문제가 지적되었다. 「밀봉」은 일상 경험을 재발견하는 시선이 장점이었으나, 그러한 경험의 정련과 도약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복」은 재치 있는 언어로 풀어낸 세태에 대한 풍자가 개성적이었지만, 그러한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깊이의 얕음과 도식성의 문제를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키위」는 선명한 이미지와 안정적인 시상 전개가 돋보였지만, 역으로 그러한 미덕의 진부함이 지적되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코코의 산책」과 「직유」, 「우리는」과 「짐노페디」가 가장 경쟁력 있는 작품으로 논의되었다.
최종적으로 논의된 작품들은 모두 수상작으로서 부족함이 없었지만, 심사위원들은 치열한 논박의 과정을 거쳐 「우리는」과 「짐노페디」를 시 부문 최우수작으로 선정하였다. 각각 송창식의 노래(「우리는」)와 에릭 사티의 피아노 악곡(「짐노페디」)의 시선을 전유함으로써 현상을 바라보는 복합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시선을 창출하는 데 성공하였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다만 부유하는 젊음의 불안을 형상화하였던 시적 작업 자체가 기시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점, 타자의 시선을 경유하지 않았을 때의 작가 고유의 시선 확보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는 점에서 현재보다는 미래의 시작(詩作)에 대한 기대감이 최우수작 선정의 주요 이유였음을 부기해 둘 필요가 있겠다.
시 부문 우수작으로는 「코코의 산책」과 「직유」를 선정하였지만, 최우수작과 근소한 차이였다. 세련되고 화려한 언어를 구사하기보다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그리하여 사어(死語)처럼 인식되는 ‘풍경’, ‘고향’, ‘오두막’ 등(「코코의 산책」)이나 ‘고백’, ‘사랑’, ‘목숨’, ‘별도 달도’ 등(「직유」)을 과감하게 활용하여 생경하고 신선한 시적 이미지를 만드는 직조의 기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개성적인 언어 감수성을 더 깊이 있게 현시할 수 있게 만들 개성적 세계와 사물 혹은 사유의 발견이 아쉬웠으며, 이 점이 곧 우수작의 앞으로의 과제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응모작 전체에서 확인되는 경향성에 대한 우려를 언급해 둔다. 응모작의 대부분에서 산문성과 서술성이 ‘유행처럼’ 부각되어 있었다. 지금, 여기에서 장르의 고유성을 논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시적 언어로 성취할 수 있는 고유 지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문단의 흐름에 조응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러한 조응이 ‘유행’에로의 전락일 수는 없다. 산문성과 서술성은 언어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고유의 ‘스타일’로서 작가의 언어 안에 습윤되어 있을 때에만 개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작성일:2025-11-18 16:25:05 210.94.177.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