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악로에서]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들을 바쳤는가
최근 잇달아 군대 내 자살이 보도됐다. 누군가를 지키고자 총을 쥔 그들이, 그 총구로 자신의 턱밑을 죄게 된 경위는 몇 글자가 담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비단 자살뿐이 아니다. 회전하는 포신에 깔려 얼굴뼈가 으스러진 조종수.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해병대원. 무리한 체력 단련 중 사망한 훈련병. 훈련 도중 실족, 대처 미흡으로 사망한 일병. 모두 수십 년 전 시간 속에 머무르던 일이 아닌, 23년 5월 23일, 7월 19일, 24년 5월 23일, 11월 25일 속 우리 또래들이 겪은 일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우리 또래가 국방부의 시계 속에 파묻혀, 언론의 사각지대에서 덮이고 희미해졌다.
각종 인명 사고는 군 내부를 동요하게 한다. 이를 타개하고 내부에 쌓인 여러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군은 정훈을 이용한다. 정훈(政訓)은 군대 내에서 실시하는 이념적, 사상적 교육을 뜻한다. 현재 우리 국군이 행하는 정훈 교육은 선배 전우들의 민족과 국가를 위한 희생, 애국심 등 거국적이고 당위적인 희생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정훈은 옆 부대의 사건 사고를 지휘관이 아닌 티비 속 뉴스를 통해 접한 개개인의 의문까지 잠재우지는 못한다. 애국심, 임전무퇴의 군인정신은 각종 실책과 부주의로 헛되게 사망한 장병들의 미명이다.
군대가 ‘군인다움’을 기계적으로 복창하는 동안, ‘군인’의 사회적 인식은 바닥을 찍었다. 전역하는 병사들이 가장 질색하는 일은 ‘말뚝 박기’다. 직업 군인들은 종종 자조 섞인 농담을 병사들에게 던진다. 지난 몇 년간 육군사관학교의 인식은 선망의 대상에서 ‘인서울 측정기’ 신세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적으로부터 국가를 지켰다. 돈 주고 사 먹는 전투식량, 늘어나는 빈자리와 업무강도에도 자기 자리를 지키던 그들을, 국군은 제 발로 쫓아내고 있다. 사진 구도를 염두에 둔 형식적인 훈련 시나리오, 진급을 위해 아랫사람을 갈아 넣는 몇몇 지휘관, 성희롱·추행, 군을 정치 도구로 사용한 정치 세력은 이 나라에 전례 없는 국군 위상 추락을 불러왔다. 국경선을 지키는 무장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조국을 지키는 ‘자긍심’과 이를 가능케 하는 ‘존경심’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불편한 이웃들과 맞닿아 있는 우리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조직 문화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국군의 방향성은 거창한 이념적 가치가 아닌 장병 개개인의 안위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