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성곽 따라 걷는 시간 여행, 오늘의 서울을 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배경지로 핫플레이스 된 낙산 성곽길 이화마을, ‘낙산프로젝트’통해 도시 예술 공간으로 변모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관광 육성과 운영 관리 필요해”
서울 도심 한복판, 낙산 성곽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선시대 축조 당시의 성곽이 그대로 이어져 있어, 돌마다 남아 있는 오랜 풍화와 거친 질감이 옛 시간의 깊이를 전한다. 낙산 성곽길은 드라마틱한 서사와 맞닿은 풍경 덕분에 SNS 인생샷 명소로 꼽히기도 한다.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주인공 루미와 진우가 진솔한 대화를 나눈 곳도 바로 이곳이다. 서울의 명동과 북촌한옥마을을 잇는 관문이자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공간, 낙산 성곽길을 걸어봤다.
옛 도성길이 들려주는 역사와 흔적
흥인지문 맞은편의 흥인지문공원에서 발걸음을 떼면 낙산 성곽길이 시작된다. ‘낙타의 등처럼 볼록하다’는 뜻의 낙산은 조선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내사산 능선을 따라 축조한 한양도성의 동쪽 구간이다. 한양도성은 1396년(태조 5년) 백악(북악산)-낙타(낙산)-목멱(남산)-인왕산을 따라 축성됐다. 이후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여러 차례 개축과 보수를 거치며 500여 년 동안 도성을 지켜온 세계 최장수 성곽으로 자리하고 있다. 평균 높이 5~8m, 전체 길이 18.6km에 달하는 성벽은 외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 시설일 뿐 아니라 도성 안팎을 체계적으로 통제하는 군사적·행정적 장치로도 기능했다.
성곽은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축물이기도 했다. 높은 성벽과 성문, 촘촘하게 배치된 문과 성루는 왕권의 힘과 질서를 드러내며 백성들에게 왕조의 존재와 권위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양도성에는 동·서·남·북 네 곳의 큰 문(사대문)과 이를 보조하는 네 개의 작은 문(사소문)이 있었는데, 근대 도시화 과정에서 서쪽 돈의문과 남쪽 소의문은 철거돼 사라졌다. 현재 돈의문과 소의문 일대에는 옛 자리를 알리는 표지와 표석이 세워지면서 사라진 흔적을 대신하고 있다.
성곽 축성 흔적과 각자성석
성곽길에 오르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손길이 깃든 성돌이 시야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성벽 곳곳에는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과 정교하게 각을 맞춘 돌이 섞여 있어, 시대별 기술과 축성 방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낙산 성곽은 태조 때 처음 토성(土城)으로 축조된 뒤, 평지 구간의 토성을 석성(石城)으로 고쳐 쌓으며 점차 정형화됐다. 이후 여러 차례 개축과 보수를 거치면서 성돌의 크기와 모양, 쌓는 방식에는 시대별 기술적 특징이 층층이 반영됐다. 태조 집권 시기에는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산지는 석성, 평지는 토성으로 쌓았다. 세종 집권 시기에는 옥수수알 모양의 돌로 평지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했고, 숙종 시기에는 가로·세로 40~45cm 내외 방형 돌로 무너진 구간을 새로 쌓아 견고함을 높였다. 순조 때는 60cm 내외의 정방형 돌을 사용해 성벽을 정교하게 완성하며 지금의 한양도성을 이뤘다.
정상에 올라 조망지점에 들어서면 탁 트인 전경과 함께 일몰 풍경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그 사이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각자성석(刻字城石)이다. 각자성석은 성곽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돌로, 이곳에 남아 있는 돌들은 충청도 단양현(현 충북 단양군) 백성들이 맡은 공사 구간과 시점을 표시한 것이다. 돌마다 새겨진 군현명, 연도, 담당자의 이름은 성곽이 체계적인 행정 관리 아래 축조됐음을 보여준다. 세종 집권 시기에는 성벽을 쌓은 지방의 이름을 새겨 뒀다가 성벽이 무너지면 해당 지역의 인력이 서울로 올라와 다시 쌓기도 했다. 한양도성에 남아 있는 각자성석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14세기 천자문으로 축성 구간을 표시한 돌, 15세기 지방 이름을 새긴 돌, 18세기 이후 축성 책임자와 석수의 이름을 새긴 돌이다. 이처럼 다양한 시기와 유형의 각자성석은 현재 290개 이상 남아 있다. 한양도성이 단순한 성벽이 아니라 사람들의 고된 노동과 체계적인 행정으로 세워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곽길과 벽화마을, 시간과 문화가 만나다
낙산 성곽길은 과거의 시간을 품으면서도 현대 서울 풍경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배경지로 알려진 이 길은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지가 됐다. 저녁 늦은 시간,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사이로 카메라를 든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에서 온 한 가족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푹 빠진 아이들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며 “영화 속 장면을 직접 걸어보니 서울이 한층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성곽길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오른편 골목에 숨어 있던 이화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낙산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도시 예술 공간이다. 당시 벽화 프로젝트는 소외된 지역을 외부에 알리고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 사회적 관심과 투자를 이끌어내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후 마을 곳곳에 해바라기, 잉어계단 등 16점의 벽화가 그려졌고 마을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특히 2010년에는 TV 프로그램 <1박2일> 팀이 마을을 방문해 벽화 앞에서 촬영하는 회차가 방영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또한 드라마 <도깨비>와 <힘쎈여자 도봉순>의 배경지로도 등장하며 이화마을은 일상의 공간을 넘어 대중문화와 관광이 만나는 서울의 또 다른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좁은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면 담장마다 그려진 화사한 벽화들이 눈길을 끈다. 바닷속 물고기 그림과 해질녘의 남산타워 그림 등 다양한 벽화들이 도시 풍경과 어우러져 마을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과 생동감을 한층 높인다. 모퉁이를 돌면 파란 배경의 천사 날개 앞에서 사진을 찍는 여행객이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면 작은 세탁소와 오래된 상점들이 늘어선 골목길이 이어진다. 주민들이 저녁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목에는 노을빛 아래 사람들의 발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낮 동안의 활기와는 다른 잔잔한 여운이 골목을 감싼다.
K-콘텐츠 명소, 지속 가능한 관광지 되려면
문화콘텐츠를 통해 높아진 관심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역사적 맥락과 현대적 해석 속에서 정체성과 문화적 균형을 유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김광훈 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교수는 “성곽길을 단순한 K-콘텐츠의 배경 장소로 존치하기보다는 조선 한양과 현재의 서울을 잇는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융복합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며 “정책적인 지원과 데이터 기반의 콘텐츠 개발 및 통합적인 마케팅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김 교수는 “문화유산과 공간을 모티브로 한 창작과 향유가 지역 예술인과 문화 기획자의 협력 및 참여 속에서 이뤄질 때, 살아 있는 문화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화마을에는 관광객이 몰리면서 일시적인 부동산 가치 상승과 임대료 인상으로 기존 주민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를 차단하기 위한 방안으로 김 교수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과 주요 콘텐츠를 주민과 지역 예술인이 함께 제작하고 관리하는 주민주도형 거버넌스(Governance) 협의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김 교수는 “지역 관광은 방문객에게는 다른 곳과 차별화된 문화 체험과 관광 경험을 제공해야 하고, 동시에 지역민에게는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자부심을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관광 육성과 운영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관광 개발은 외부의 관심을 넘어 장기적인 계획과 체계적인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관광 명소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주민들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때 비로소 온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흥인지문공원에서 시작된 길은 성곽을 따라 이어지며, 과거의 흔적과 오늘의 풍경을 한데 품는다.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달리는 서울이지만, 낙산 성곽길에 서면 그 변화를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 느껴진다. 돌 하나, 골목 하나, 길을 걷는 발걸음마다 서울이 품어온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는 곳, 낙산공원. 이번 가을, 낙산 성곽길 산책이 선사하는 옛 서울의 낭만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