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수습기] 붕괴의 나날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이 깨지거나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때 ‘내 세상이 무너졌어’라고 말하곤 한다. 동대신문 면접을 보러 이 학교에 처음 온 날, 그날부터 내 세상이 정말 끊임없이 무너졌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동국대학교 합격생은 신공학관 엘리베이터의 존재도 모른 채 108 계단을 타고 미디어센터에 도착했다. 광활한 캠퍼스, 사무실처럼 생긴 사무실, 소위 ‘대학생’스러운 질문들. 내가 살아온 세상에 여러 줄의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운 좋게 동대신문에 합격하고 수습 교육을 받으러 다시 미디어센터를 찾았을 때, 개강호 교열을 하고 있던 선배 기자분들을 처음 봤을 때, 그 교열을 얼떨결에 도우며 사무실 곳곳을 둘러봤을 때.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과 부딪혀 첫 붕괴가 일었다.
나의 지난 학기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붕괴의 연속’이다. 처음 마주한 대학사회는 모든 게 새로웠고 학보사 기자로서의 생활은 특히 낯설었다. 취재 현장은 늘 내가 머릿속으로 구상해둔 상황과 달랐고, 인터뷰이의 답변은 항상 내가 지레짐작한 틀을 벗어났다. 동대신문 고유의 보도 관행과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조판주는 고등학교 생활에 길들어져 있었던 삶의 리듬을 크게 바꿔놓기도 했다. 또한 완성도 높은 기사를 직조하기 위해 문장을 수도 없이 곱씹다 보니, 단어 하나에도 무게가 있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꼈다. 그렇게 어절 단위로 경중을 따져가며 적어낸 문장들이 피드백과 교열 과정에서 수차례 무너져내리면서 내 문장력에 대한 확신도 무너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붕괴가 나에게 충격과 좌절만 안겨준 것은 아니다. 그 잔해들이 쌓이고 쌓여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냈다. 내가 겪은 모든 무너짐은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잔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하게 뭉쳐 내가 일어설 곳이 되며, 더 높고 넓은 곳에 선 나를 마주한다. 어느덧 나는 수습 딱지를 떼고 내게 다가올 수많은 붕괴를 맞이할 준비가 됐다. 정기자가 된 이번 학기에도 새로운 붕괴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단단한 세상이 부서지고 다시 쌓이는 과정이 나를 더 견고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고결(固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