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리뷰] 챗GPT를 활용한 시창작 방안 연구 - AI시대의 창작이란?

2025-05-13     오솔미
△ 일러스트= 오솔미 편집위원

 

  학부 시절, ‘시창작 입문’이라는 전공필수 과목은 내게 유난히 버겁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겐 자유로운 상상의 놀이터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시창작은 언어의 감옥 같았다. 단어 하나를 고르고, 한 행을 만들어내기까지 수없이 머뭇거려야 했고, 그 결과물 앞에서 매번 자신 없음을 확인해야 했다. 오죽하면 10줄짜리 시를 쓰는 것보다 1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 창작’을 타고난 언어 감각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부생에서 대학원생으로 신분이 바뀌는 몇 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에게는 산업혁명과도 같은 거대 신문물인 챗GPT가 학계로 흘러들어왔다. 시를 창작하는 감각이 부족한 나도 챗GPT를 이용해 뚝딱 시를 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누군가 대신 써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말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행해 주는 도구가 생긴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민지의 『챗GPT를 활용한 시창작 방안 연구』는 내게 시를 잘 써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나만의 언어를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이제는 감정과 상상력의 영역인 ‘시’에까지 손을 뻗는 이 시점에, 인간 창작자와 생성형 AI는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정면으로 응답한 논문이 바로 『챗GPT를 활용한 시창작 방안 연구』다. 이 논문은 단순히 AI의 창작 능력을 평가하거나 시생성의 품질을 판별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논문은 시라는 문학 장르의 본질은 무엇인지, 인간 창작자의 고유한 역할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탐색하면서, 챗GPT와의 협업을 통해 창작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고 있다.

  논문은 시라는 장르가 언어의 형식뿐 아니라 감정과 관점, 존재론적 성찰을 수반하는 고차원의 활동이라는 점을 전제로 삼는다. 챗GPT는 이러한 시의 형식적 측면을 놀라울 만큼 모방해 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이나 ‘정체성’은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때 발생하는 공백, 즉 의미의 비어 있는 자리들을 저자는 독일의 문학이론가 볼프강 이저의 개념을 빌려 ‘빈자리’라 부른다. 이 논문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챗GPT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비판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작자의 개입을 가능하게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 고유의 창조성이 발현된다는 논리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시라는 장르에서 ‘빈자리’는 단점이 아니라 참여와 해석의 공간이 되고, 인간은 바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존재로서 AI와의 협업을 주도하게 된다.

  논문은 이러한 이론적 전개를 바탕으로 챗GPT를 활용한 실제 시창작 방안도 제안한다.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한 명령이 아닌 ‘좋은 관점’이 담긴 프롬프트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생성된 시는 한 번의 출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감정과 판단, 미적 선택을 통해 여러 차례의 퇴고와 수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온전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챗GPT는 ‘쓴다’기보다는 ‘써볼 수 있게 만든다’는 데에 그 역할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논문은 AI와 인간 사이에 벽을 세우지 않고, 그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챗GPT는 단지 창작의 적도, 대체자도 아니다. 오히려 이 논문을 읽고 챗GPT를 창작자 자신과의 대화를 유도하는 일종의 거울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나 분위기를 설정하고, 감정을 투입하고, 관점을 부여하며, AI가 만든 언어를 다시 가공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자아 탐색의 기회가 되며, 창작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또한 이 논문은 시를 종이 위의 정형화된 텍스트에 가두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매체로 확장할 수 있는 유연한 콘텐츠로 바라본다. 챗GPT가 생성한 시가 영상화되고, 음악으로 편곡되며, 웹툰이나 드라마로 변주되는 과정을 상상하는 이 마지막 장면은,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창작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이는 시를 ‘쓰기’에서 ‘만들기’로 전환시키는 시도이자, 디지털 시대의 창작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이 모든 논의는 깊은 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하지만, 동시에 무겁지 않게 읽힌다. 언어의 온도와 구조, 그리고 창작 행위 자체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가 느껴진다. 이 논문은 단지 AI 시대의 창작 방안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인공지능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되묻는 거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귀한 작업이다. 기술의 시대에도 예술과 인간의 상상력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김민지(2023), 챗GPT를 활용한 시창작 방안 연구』한국문학연구, -(72), 289-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