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기획] 대학이 놓친 '마음 챙김', 방황하는 청춘들

우울증·번아웃 경험한 청년, 2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 재학생 13,559명에 상담사 5명, 교육부 권고에 한참 모자라 유학생 심리 지원도 어려움 보여, 대학본부의 관심 필요해

2025-05-12     오승리·이준형 기자
▲사진=오승리 기자.

푸를 청(靑)에 봄 춘(春). 사회의 문턱에 처음 선 이들을 상징하는 단어, 청춘(靑春)이다. 잎사귀가 푸르게 돋아나는 5월은 여느 때보다 생동감을 자랑하지만, 이 시기 청년들의 실상은 사뭇 다르다. 청춘의 푸른빛은 어느덧 잿빛으로 바래고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은 저 자신도 모를 감정에 이름도 붙이지 못한 채 조용히 삼킨다. 쉽게 꺼낼 수 없는 쓰린 아픔은 혀끝을 맴돌다 끝내 마음속 멍울로 남는다. 무엇이 그들을 옥죄고 있을까. 대학가에 감기처럼 번진 마음의 병, 우울증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적신호 켜진 대학생 정신건강 

청년들의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지난 3월 11일 발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9세에서 34세 사이 청년 중 고립·은둔 상태에 놓인 비율은 5.2%에 달한다. 2년 전 2.4%에서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우울증과 번아웃을 경험한 비율도 각각 8.8%, 32.2%로 조사됐다. 

우리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동대신문이 서울캠퍼스 학우 5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우리대학 학우 우울 및 정신적 위기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이하 동대신문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중 약 56.6%가 ‘대학생활 중 우울감이나 정신적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약 20.8%는 정신적 위기를 자주 느낀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8명 중 1명꼴로 정신적 위기 속에 생활하는 것이다. 응답자들은 우울감과 정신적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학업 문제(약 45.3%) ▲인간관계(약 47.2%) ▲진로 걱정(약 34.0%)을 꼽았다. 익명의 A학우(사회 22)는 “시험 기간에 우울감을 가장 심하게 느낀다”며 “공부 결과가 학점으로 환산되고, 곧 취업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무형의 압박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양정모(에너지신소재공학 19) 학우는 “코로나19로 외부와 단절된 이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졌고, 결국 중증 우울증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좌)대학생활 중 우울감 및 정신위기 경험 비율, (우)그 원인으로 응답자들이 꼽은 주요 요인(복수응답) (일러스트=김소현 기자.)

 

마음 돌봄 위기 속 우리대학 학우들은

동대신문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우 7명 중 4명꼴로 대학생활 중 우울감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적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는 ▲가족·친구와의 대화 ▲글쓰기 ▲인공지능(AI) 활용 등이 있었다. 

응답자의 약 75%는 ▲가족·친구와의 대화를 우울감 해소에 활용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한 응답자는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주변 사람과 대화하며 생각의 오류를 점검하려 한다”고 밝혔다. 같은 선택지를 고른 다른 응답자는“현재 처한 상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공감을 받을 수 있어 해당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고 전했다.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는 학우들도 있었다. 한 응답자는“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를 성찰해 볼 수 있어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정경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글쓰기가 우울증의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순 없지만, 일상에서 발생하는 우울감을 해소할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을 말벗 삼아 감정을 털어놓는 학우들도 있었다. 양 학우는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지만 고민이 생기면 종종 대화형 AI를 활용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우울감을 크게 겪고 있다면,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정밀한 진단보다는 즉각적인 공감과 응원”이라고 생각한다며 “AI는 지치지 않고 일관된 답변을 해주기에 정서적 위안을 크게 받는다”고 전했다. A학우 또한 “ChatGPT의 다정한 말투와 응원이 따뜻하게 다가와 우울감이 개선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또한 이러한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좌교수는 “해외에서도 사람보다 AI를 이용한 상담에서 내담자가 감정을 더 쉽게 털어놓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AI나 디지털을 이용한 상담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무대응을 택한 학우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사라질 것 같아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  “시간적·금전적 여유가 없다” 등의 이유가 주를 이뤘다. 대응하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하거나 노력해도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회의감도 드러났다. 

 

정신위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 

우리대학은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학우들의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카운슬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울증 증상에 대한 치료와 상담을 꺼려 이곳을 방문하지 않는 학우들이 존재한다. 동대신문 설문조사에서 ‘학교에서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꺼린다’고 응답한 학우는 약 37%에 달했다. ‘상담 이력이 남아 낙인이 찍힐까 걱정된다’ ‘형식적인 상담으로 흘러갈 것 같아 현실적인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 ‘초면인 타인과 대화하기가 꺼려진다’ 등이 그 이유였다. 권 석좌교수는 “정신질환을 단지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병’이라거나 ‘성격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이 문제”라며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으로 병원에 오지 않거나 병을 숨겨 조기 치료를 가로막는다”고 기피 현상의 원인을 설명했다. 

카운슬링센터는 상담 수기 제공, 유피어스(또래 상담자 프로그램) 제도를 통해 학우들이 가진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고자 한 바 있다. 그러나 상담 수기는 9년 동안 단 6개의 수기가 올라올 뿐이었다. 유피어스 제도는 작년 이후로 부원 모집 글이 올라오지 않아 현재 활동이 정지됐다. 상담 제도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 운용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다.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대한 인지 부족 

여전히 많은 학우가 대학 심리상담 프로그램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그 원인 중 하나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대학 심리상담센터의 문턱도 함께 높아졌다. 전면 비대면 강의 전환으로 심리상담센터 접근이 제한되면서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상담을 받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우리대학과 성균관대학교의 대학자체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양교 모두 2020년 학내 상담센터 개인 상담 이용률이 감소했다. 성균관대학교는 재학생 18,578.5명 대비 참여 학생 수 2,787명으로 참여율은 약 15.0%였다. 그러나 우리대학은 재학생 13,476.5명 대비 참여 학생 수 1,145명으로 참여율이 약 8.5%에 머물렀다. 

포스트 코로나인 현재, 많은 학우가 학교로 돌아왔지만 상담 프로그램 인식률은 여전히 높지 않은 상태다. 동대신문 설문조사 결과, ‘학교에서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에 대한 인지 정도’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85%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반면 상담 프로그램에 대한 잠재적 수요는 적지 않았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 참가 용의’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약 64.2%는“해당 프로그램을 알게 된다면 참여해 볼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주된 이유로는 ‘전문적인 상담을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등이 꼽혔다. 

한편 ‘우울감 및 정신적 위기를 자주 느낀다’고 답한 학우 중 75%가 학교 상담 프로그램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이 중 약 44%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에 참가할 의향이 있다’고 답하며 심리 지원에 적극적인 의사를 보였다. 

 

부족한 인원, 적체된 상담 

상담 프로그램 인지 부족과 함께 구조적인 인력 부족도 우리대학 정신건강 지원의 한계를 드러낸다. 우리대학 카운슬링 센터에는 현재 5명의 심리상담 인력이 배치돼 있다. 그러나 재학 중인 학생 수에 비해 상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2024년 상반기 기준 재학 중인 학부생 수는 13,559명이다. 2022년 교육부는 대학이 전문 상담 인력을 재학생 1,000명당 1명 수준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이 기준과 비교해 보면 우리대학 상담 인력 규모는 상담사 1인당 약 2,711명꼴로 현저히 부족하다. 주요 대학들과 비교했을 때도 우리대학 상담 인력 상황은 열악하다. 같은 시기 서강대학교는 27명의 상담사로 1인당 약 303명의 재학생을 감당해야 하는 수준이고, 한양대학교는 18명의 상담사가 1인당 약 881명을, 성균관대학교는 25명의 상담사가 1인당 약 765명을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상담 인력은 상담 기회의 저하로 이어진다. 양 학우는“학생 1인당 상담 횟수에 제한이 있어 충분한 상담 시간을 가지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위기 상황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도 예약하고 기다려야 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심적 위기 속 유학생들, 심리상담 공백 

정신적 위기에 취약한 또 다른 집단은 유학생이다. 이들은 문화적 차이, 언어 장벽, 향수병 등으로 인해 정신건강 문제에 더 쉽게 노출된다. 지난해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유학생 한 명이 학업 스트레스와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가까운 사회적 관계망이 제한된 유학생들은 심리적 고립감이 장기화되며 극단적인 상황에 놓일 위험이 크다. 

언어 문제 역시 유학생 상담의 벽을 높인다. 상담 윤리 원칙상 내담자 외 제삼자의 개입은 제한된다. 이에 따라 상담자와 내담자를 이어줄 통역 인력 투입이 어렵고, 상담사가 내담자의 고충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큰 장벽이 된다. 

우리대학에도 유학생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이 존재하긴 하지만 행정적인 조언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글로벌학생팀에서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은 학사일정, 학교생활, 출입국 업무, 재정 상담, 진로 상담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심리·정신 건강에 관한 직접적인 상담은 마련돼 있지 않다. 유학생 엔도 슈이(미컴 24) 학우는 유학생 상담에 대해 “해당 프로그램의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주변에선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적다”며 “유학생 전용 정보 제공이나 안내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양대학교 국제처의 경우 영어, 한국어, 중국어 세 가지 언어로 1:1 개인 상담 및 심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곳은 위기관리, 예방, 사후 대처의 3단계로 구분된 체계적 프로세스를 운영하며 유학생 정신건강 문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꿈을 좇고 내일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우울은 때때로 그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는 건 결국 학생들의 몫이지만, 그 손을 잡아줄 대학은 지나치게 냉정하고 무심하다. 학생들이 서로의 손을 붙들고 버텨내는 청춘의 모습은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는 대학이 책임의 자리를 비운 채 방임해서는 안 된다. 대학이 진정 미래 인재 육성의 요람이 되고자 한다면, 학생들의 말에 응답하는 구조와 제도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