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권력은 공간을 선택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1979년 10월 26일, 한 발의 총탄이 대통령을 향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김규평)가 대통령 박정희(박통)에게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그 한 발의 총탄을 중심으로 한 시대의 권력 구조를 해부한다. 다만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총알보단 ‘공간’이다. 영화는 단순한 역사 재현에 머물지 않고 공간이라는 매개를 통해 권력의 작동 방식과 위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각 공간은 그 자체로 권력의 위계를 내포하며, 인물들의 심리와 운명을 결정짓는 무대가 된다.
사유화된 권력, 붕괴를 자초하다
영화는 검은 선글라스를 쓴 한 남자가 미국 청문회에서 박통의 부패를 고발하는 장면으로 출발한다. 그의 이름은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 1979년, 그의 폭로를 계기로 대한민국 권력의 닫힌 내부는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른다. 폭로의 배경이 되는 대한민국 권력 심장부에는 팽팽한 긴장과 이해관계가 뒤엉켜 있다. 그 정점에 선 인물이 바로 국가 권력의 핵심, 박통이다. 박통은 마치 벽 안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처럼, 충성스러운 소수의 의견만을 기준으로 삼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묵살한다. 경호실장 곽상천은 그의 수하를 자처하는 인물로 박통의 손발이 돼 조직을 투쟁의 무대로 바꿔 놓는다. 그는 박통의 신뢰를 등에 업어 비판은 차단하고 반론은 억누른다. 그러면서 오직 박통에게 ‘충성’하는 이들만 살아남도록 만든다. 그렇게 균형 잃은 권력은 점차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듣지 않고, 감시하지 않고, 소수의 충성만이 진실을 대체한 이곳. 그 끝에 남은 것은 그날의 공허한 총성이었다. 그것은 제어되지 않는 권력, 스스로를 고립시킨 체제에 대한 고발이자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였다.
닫힌 공간에 갇힌 권력
그러나 이 영화에서 권력의 내밀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보다 공간이다. 청와대, 남산, 궁정동. 이 세 장소는 권력의 위계를 시각화한다. 어떠한 질문도, 요구도 들어갈 수 없는 대통령이 머무는 이 공간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돼 있으며, 이로써 권력의 봉쇄성과 고립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남산 중앙정보부는 언뜻 보면 권력 실무의 중심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또한 청와대의 지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화에서 남산이 청와대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면서, 지형이 곧 위계가 됐기 때문이다. 곽상천이 남산을 거리낌 없이 드나드는 모습은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자 제도적 권위가 무력화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궁정동 안가에 이르면, 영화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침묵과 시선, 벽과 문이 모든 것을 말한다. 권력이 오직 공간을 점령하는 방식으로 남은 것이다. 하지만 닫힌 권력은 이 밀폐된 공간에서 스스로 붕괴된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한 시대의 권력이 남긴 교훈을 본다. 닫힌 공간에서 열린 사회는 태어날 수 없다.
남겨진 공간, 사라진 권력
영화가 끝나고 나면, 사람보다 빈 공간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궁정동 안가, 남산 부장실, 불 꺼진 청와대. 권력이 머물렀던 이 장소들은 침묵과 공허만을 남긴 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2022년 청와대는 시민에게 개방됐다. 한때 권력의 상징이자 성역이었던 공간이 국민의 공간으로 전환됐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하지만 공간이 열렸다고 권력의 구조까지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눈 앞의 담장은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권력을 바꾸고 있는가, 아니면 또 다른 밀실을 만들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단지 그 방의 문을 여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열린 공간 위에 감시와 책임, 투명성과 참여의 구조가 함께 놓여야 한다. 오늘 우리의 권력은 어디에 앉아 있는가. 그리고, 열려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