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위기의 언론, 어디로 가야 하는가
과거의 언론, 시민과 함께 불의 맞서 현대 언론인 평가 점수 5년째 하락세 “객관적 보도가 신뢰 회복 위한 첫걸음”
진실을 좇는 기록자, 권력을 감시하는 파수꾼으로 불렸던 언론은 오랫동안 사회의 눈과 입이 돼 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은 언론을 더 이상 진실의 창으로 보지 않는다. 조회수 경쟁에 매몰된 자극적인 헤드라인, 진영 논리에 치우친 편파 보도, 검증 없이 확산되는 정보의 홍수. 이러한 문제들로 언론에 대한 신뢰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금, 언론은 어디에 서 있는가.
민주주의의 나침반, 언론
대한민국이 역사적 기로에 서 있을 때마다 언론은 시민의 곁에 있었다. 권력의 억압과 검열 속에서도 언론은 진실을 향해 나아갔다. 일제강점기, 독립신문을 비롯한 항일 언론은 식민 통치에 저항하며 조국의 자주와 독립을 외쳤다. 독립신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알렸고, 문화통치의 모순성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며 국권 회복을 위해 힘썼다. 1980년대, 전두환의 신군부는 계엄령과 긴급조치, 보도지침 등 전방위적 통제를 언론에 가했다. 이로 인해 정권을 비판한 기자는 해직됐고 지시를 따르지 않은 언론사는 폐간당했다. 하지만 언론은 침묵하지 않았다.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 일동은 군부정권의 폭력 진압과 시민 희생을 보도하지 못했던 자신들이 부끄러워 집단 사표를 냈다. 1987년 6월 항쟁, 군부의 검열이 지속되던 와중에도 일부 기자들은 진실을 기록했다.
오늘날 ‘문제 투성이’인 언론
그러나 현재 한국 언론은 위기에 직면했다. 대중은 언론이 과연 유효한 공공재인지, 그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언론의 문제점을 오보·허위정보·받아쓰기식 보도·자사 이기주의·어뷰징·낚시성·편파성·광고성 기사 등 8개 항목으로 나눠 조사한 결과 모든 항목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응답이 과반을 넘겼다. 특히 ‘낚시성 기사’(64.3%)와 ‘편파적 보도’(58.8%)는 언론의 신뢰를 해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꼽혔다. 김은솔(국문문창 25) 학우는 “한쪽 입장에 치우친 기사를 볼 때면 언론이 중립성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0년 이후 언론인의 도덕성과 전문성, 사회적 영향력, 기여도에 대한 평가는 해마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임종섭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재 인터넷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뉴스가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한국의 언론 자유도는 높아졌지만 신뢰도는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언론의 위기, 그 원인은
언론 신뢰도 하락의 배경에는 기사의 질 저하, 그리고 무책임한 보도 관행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속보 경쟁의 과열 ▲따옴표 저널리즘 ▲정파적 보도 ▲뉴미디어의 급부상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 가운데 속보 경쟁은 언론 보도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문제로 꼽힌다. 최근 온라인 뉴스 환경에서는 ‘누가 더 빨리 보도했는가’가 언론사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 이 때문에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허위 정보가 보도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속보’라는 이름 아래 정확성과 심층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자극적인 기사만이 넘쳐나는 실정이다.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 구조는 속보 경쟁을 더욱 부추긴다. 네이버 등 주요 플랫폼에 입점한 언론사들은 포털 메인 화면에 노출되기 위해 ‘클릭 수’ 경쟁에 집중하며, ‘단독’ ‘속보’라는 문구를 남용해 조회수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의 보도 행태는 이러한 속보 경쟁의 폐해를 여실히 드러냈다. 사고 직후 MBN은 세월호 승객 전원이 구출됐다는 오보를 최초로 보도했다. 이후 MBC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들이 사실 확인 없이 이를 인용·확산시키며 오보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처럼 속보에만 매몰된 보도 관행은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 정확성을 훼손하고 이는 곧 언론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언론의 신뢰도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고질적 문제는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이다. 이는 특정 인물의 발언을 큰따옴표 안에 그대로 옮겨 싣는 보도 방식으로, 사실 확인 없이 일방적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허위 정보가 여과 없이 확산되는 결과를 낳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일부 언론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을 인용해 ‘아스트라제네카 치명적 부작용? 발기부전 사례 제보돼’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무관한 허위 정보로 드러났고, 백신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처럼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는 무책임한 인용은 정보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왜곡된 인식과 불안을 조장한다.
▲정파적 보도 역시 오늘날 언론이 직면한 중대한 위기 중 하나다. 특정 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사실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하는 보도는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정치·경제 권력과의 유착에서 자유롭지 못한 구조는 언론 본연의 ‘워치독(감시자)’ 역할을 약화시킨다.
▲정파적 보도의 특징은 흔히 익명을 인용해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출처가 불명확한 ‘관계자’ 등의 표현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전달하고 특정 정치적 프레임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2023년 1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관계자’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기사에서 ‘윤석열’ ‘정당’ ‘공무원’ 등 정치와 관련된 인물들이 주요 연관어로 나타났다.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서 사실 여부가 불투명한 정보가 보도되고, 독자들은 정치적 메시지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임 교수는 “정파적 보도는 정보를 왜곡하거나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며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보도가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유튜브, 페이스북 등 ▲뉴미디어의 급부상은 언론 생태계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뉴스 유통 구조가 온라인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면서 전통 언론의 영향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기간행물 등록 현황에 따르면, 2015년 6,370개였던 인터넷 신문은 2023년 11,997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언론중재위원회가 2023년부터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의 분석대상에 유튜브를 포함시킨 것 역시 뉴미디어의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다.
하지만 뉴미디어의 부상과 함께 자극적인 콘텐츠를 통해 조회수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사이버 렉카’들이 등장하면서 ‘가짜뉴스’ 확산이라는 심각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대구지방법원은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사이버 렉카 유튜버 ‘판슥’(김민석)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뉴스를 소비할 때, 의제 설정의 영향력을 살펴야 한다”며 “국가의 주요 의제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전통 언론”이라고 전했다.
다시 공론장의 중심으로 거듭나려면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분별한 속보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단순히 기존의 보도 준칙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언론사가 ‘단독’ 보도에 대한 명확한 내부 기준을 마련하는 자정 노력이 요구된다. KBS는 2022년부터 자체적인 ‘단독’ 보도 기준(독점성·독창성·중대성·명확성)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사 제목에 ‘단독’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기 위해선 명확성을 전부 충족하고, 독점성과 중대성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특히 명확성 항목의 경우 출처 명시·사실 확인 여부·취재원 확인 등을 엄격히 검토해야 한다. 또한 SBS ‘사실은’, 오마이뉴스 ‘오마이팩트’, JTBC ‘팩트체크’ 등의 자사 팩트체크 코너는 허위 정보나 과장된 주장 등에 대해 별도의 검증 절차를 거쳐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언론사 내부 자정 능력을 강화하고 보도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기능을 한다.
아울러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자극적 보도를 부추기는 ‘타블로이드 저널리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이란 사건·사고를 과장하고 선정적인 내용을 강조함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보도 행태를 의미한다. 2022년 한국언론학회 세미나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2021년 14개 주요 언론사의 1,317개 기사를 분석한 결과 모바일 포털 뉴스 전반에서 타블로이드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중앙일보는 기사 제목에서 타블로이드적 요소가 79.8%나 포함돼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한국경제, 머니투데이, 헤럴드경제, 매일경제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박기묵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는 “기성 언론의 분야에 오락성과 대중성이 침투했다”며 “타블로이드화가 지속될 경우 언론 전반의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언론이 진정성 있는 보도를 위해 경계해야 할 또 하나의 요소는 ‘기계적 중립’이라는 착시다. 특정 사건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중립을 취하는 이 태도는 오히려 공정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이에 관해 미국 기자협회는 1996년, 언론의 제1사명을 ‘객관성’에서 ‘진실의 추구’로 개정했다. 이는 언론이 ‘모두의 입장을 똑같이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실과 허위, 옳고 그름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전환의 신호였다. 기계적 중립은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허위 정보와 극단적 주장에까지 똑같은 무게를 실어줄 경우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박 교수는 “단순히 기계적 중립을 고수하기보다 진실에 기반한 가치를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며 언론의 핵심 책무는 중립이 아닌 진실의 편에 서는 것임을 강조했다.
언론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과연 독자의 신뢰 위에 언론 환경을 조성했는가. 사실과 책임, 그리고 공익이라는 언론의 본령을 소홀히 하진 않았는가. 기자에겐 무엇보다 실수를 바로잡는 용기, 진실을 향해 멈추지 않는 의지가 필요하다. 잘못된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 본질을 우선할 때 비로소 언론은 사회의 중심에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