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수습기] 경험의 초대
미국의 한 수필가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좌우명으로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있던 작은 모험 이후로, 그때까지 본능적으로 물리쳤던 초대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동국대에 입학한 작년은 내 삶의 변수가 될 경험을 찾는 시간이었다.
어떤 일은 의미가 채 파악되기도 전에 나의 일부가 된다. 나의 경우 시가 그러했다. 섬세하게 직조된 시인들의 언어를 동경하며 시인을 꿈꿨고 그들처럼 타인의 마음에 공명하는 시를 쓰고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무슨 바람이었을까. 무심코 지원한 학보사에서, 나는 어느 순간 수습기자가 돼 있었다.
호기롭게 들어간 학보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다름 아닌 데스킹이었다. 나는 항상 내가 쓴 문장을 버리는 것을 어려워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가차 없이 지우고 나아가야 진척이 보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행엔 다소 소극적이었다. 밤늦게 조판을 하다 보면 잠시 퓨즈가 끊긴 사람처럼 공허한 눈을 뜨고 있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노트북 화면을 가득 채운 빨간 줄은 흡사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단언하는 듯했다.
지난 한 학기 동안 동대신문에서 확실히 깨달은 점은, 기사는 다 같이 쓰는 글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타인의 손이 닿지 않은 글은 미완성인 글이나 다름없다. 수십 번의 눈과 손을 거쳐야 비로소 봐줄 만한 글이 완성된다. 나는 마치 처음 시를 배우기 시작한 열일곱 무렵처럼, 내가 몰랐던 글의 영역을 하나하나 다시 체득해 나갔다. 장황한 말은 간결하게, 불필요한 미사여구는 삭제하며 기사는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춰 갔다. 문학과 저널리즘의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던 초반과 달리, 미디어센터에서 기자들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있노라면 친구들과 둘러앉아 원고지를 채워 나가던 백일장의 순간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새 학기,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는 변곡점에 서 있다. 기자라는 직함에 확신이 서지 않는 지금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선뜻 꺼려지기도 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이 무용하지 않도록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의 변화를 지켜보고자 한다.
경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함으로써 펼쳐질 또 다른 세계를 기대하며.